UPDATED. 2024-03-28 18:49 (목)
[인터뷰] 쓰임새 많은 여배우 조여정
상태바
[인터뷰] 쓰임새 많은 여배우 조여정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5.26 1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표적' '인간중독' 조역으로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발산

[300자 Tip] 예쁜 마스크와 볼륨 있는 몸매의 여배우 조여정이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흥행작 ‘표적’과 ‘인간중독’에서 이유 있는 조연을 맡아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기나긴 슬럼프의 20대를 보내고, 30대가 되면서부터 눈부신 만개를 이루는 중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히트작을 연이어 제출하는 그의 성공 비결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선이다. 사극과 현대물, 온갖 장르를 똑 소리나게 소화하는 ‘쓰임새 많은 여배우’로 자리매김한 조여정은 섹시 코미디 영화 ‘워킹걸’의 결혼 5년차 주부로 변신해 관객을 찾을 예정이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5월의 극장가를 점령한 액션 추적극 ‘표적’의 납치된 아내 정희주, 멜로영화 ‘인간중독’의 야망 가득한 아내 이숙진. 두 여자를 연기한 조여정(33)을 바라보는 관객의 눈빛이 깊어졌다.

◆ 이숙진 vs 정희주...정제된 지성미, 탐욕스러운 속물근성 ‘극단 캐릭터’ 연기

“제의해주신 분들에게 고맙죠. ‘표적’의 제작자 오빠는 만삭 캐릭터라 여배우라면 꺼릴 거라 미리 걱정하시더라. 전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오빠가 관객이면 만삭의 나를 구할 거 같아? 그러면 해볼만하네’라고 대답했어요. 영화에서 희주가 중요한 역할을 하잖아요. 두 남자 주인공이 달려가는 힘에 동력을 제대로 부여할 수 있을까를 집중적으로 고민했죠.”

지난 14일 개봉한 ‘인간중독’에서 조여정은 장군 진급을 눈앞에 둔 김진평 대령(송승헌)의 부인 숙진으로 분했다. 잘나가는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장군감’ 남편을 골라 결혼한 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살아가는 그에겐 사랑 대신 남편을 장군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만이 가득하다. 이를 위해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고, 사조직을 운영한다.

▲ '인간중독'의 이숙진(왼쪽)과 '표적'의 정희주

‘방자전’으로 인연을 맺은 김대우 감독의 ‘인간중독’ 출연제의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믿고 출연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숙진 캐릭터는 “이거 언제 해봐” 싶은 인물이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 남편 눈엔 매력 없는 여자다.

영화를 본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조여정에게 저런 코믹감각이 있었어?”라고 감탄한다. 시원시원 유쾌한가 하면 푼수기를 날린다. 아랫사람이 분수 모른채 치고 올라치면 싸늘하게 짖밟아 버린다. 특히 임신이라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남편과의 베드신에서 “나 너무 느꼈잖아” “오늘 좋았어, 아이고 잘했어 여보”라며 송승헌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 객석을 초토화시켰다. 영혼 없는 잠자리 멘트를 천연덕스레 구사한 조여정의 노련함이 빛을 발한 대목이었다.

“남편과 나누는 대화의 끝에 늘 ‘당신을 위해서’란 말이 붙잖아요. 그런 아내, 너무 숨 막히지 않을까요. 남편 입장에서 부부의 정을 공유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숙진으로 몰입하는 데 표독스러운 느낌의 잠자리 안경이 8할을 차지했다. 안경을 착용하면서부터 눈빛과 액션이 만들어졌다. 배우로부터 연기를 잘 뽑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김 감독은 ‘애교 섞인 현대말투에서 톤만 조금 내려주세요“라는 정밀한 디렉션을 줬다. 여기에 조여정은 결혼 5~6년차 아줌마들의 말투를 복기해냈다.

숙진이 주도하는 군관사 내 봉사모임 나이팅게일회의 2인자 최중령네(전혜진)와의 불꽃 튀는 케미스트리 역시 화제다. “혜진 언니의 연극을 본 뒤부터 팬이 됐다”는 조여정은 막상 촬영해보니 호흡이 너무 좋아 여자들끼리의 서열 정리, 복닥복닥 싸우는 장면을 신나게 찍어나갔다.

◆ 긴 슬럼프 겪은 뒤 객관적 시선 바탕으로 관객 설득할 캐릭터 선택

신경정신과 의사 희주가 느리고 단아한 안단테 빠르기라면, 나이팅게일회 리더 숙진은 쾌속질주하는 알레그로다. 모두 조연이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여주인공을 연기해온 젊은 여배우가 연달아 조연에 출연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조연으로 출연해서 주연 못지않게 혹은 능가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는 더더욱 어렵다.

 

“작품을 선택할 때 주연이냐 조연이냐, 비중이 크냐 작냐, 예쁘게 그려지냐 아니냐에는 그닥 관심이 없어요. ‘관객에게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에요. ‘방자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노래하며 첫 등장하는 춘향이가 예쁘게만 보이는 게 아니라 관객 입장에서 ‘그럴만한 여자애다’란 확신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시점부터 이런 태도가 공고해졌다. 조여정에게 25세에 찾아와 ‘방자전’ 작업에 들어갈 무렵인 30세에야 끝난 슬럼프 시기는 이렇듯 뜻하지 않은 선물을 안겨줬다.

“4~5년이 걸렸죠. 작품할 기회가 안 오는데 어떻게 하나, 내 힘으로 빠져나올 수 있을까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어요. 바닥까지 떨어져봤고. 그러다가 어느 문이라도 향해 걸어가기라도 해보자, 다짐했어요. 그래서 매일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저를 관망했죠. 그러면서 저 자신이나 저를 둘러싼 환경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생겼어요. 나를 성장하게 한 시간이죠.(웃음)”

 

힘겨웠던 20대를 보내고 30대에 접어들자 행운이 연이어 찾아왔다. 영화 ‘방자전’이 기록적인 흥행성과를 거뒀고, tvN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1, 영화 ‘후궁: 제왕의 첩’, 드라마 ‘해운대의 연인들’이 줄줄이 히트했다. 이를 통해 조여정은 ‘미모에 연기도 곧잘 하는 여배우’를 뛰어넘어 사극과 현대물, 멜로·로맨틱 코미디·코미디 등 어떤 장르도 똑 소리나게 소화하는 ‘쓰임새 많은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20대에 나쁜 사람도 만났고, 고통과 막막함을 경험했어요. 억울해 했고 패배감에 사로잡히기도 했어요. 다 맛봐서 후회가 없어요. 아팠던 것일뿐 실패는 아니잖아요. 20대는 예쁜 나이라 초라하지 않아요. 당당할 수 있고 더 노력할 수 있는 시기죠. 20대를 거치며 근육이 붙어서인지 저의 30대는 많이 단단해졌고, 현명해졌어요. 평소엔 저를 많이 채찍질하는 편인데 칭찬을 들을 땐 업되지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속삭여요. 혹평이 쏟아질 땐 오히려 저를 칭찬해줘요. ‘할만큼 했어. 너 노력했잖아, 잘한 거야’라고. 그러질 않으면 배우의 얼굴이 상해지더라고요.”

 

◆ 일하는 여성의 삶과 우정 그린 섹시코미디 ‘워킹걸’ 촬영 중

요즘 조여정은 일하는 여성들의 삶과 사랑을 담은 섹시코미디 영화 ‘워킹걸’ 촬영에 한창이다. 대학(동국대 연극영화과) 선배인 정범식 감독의 신작이다. 장난감 회사의 유능한 직원이었으나 승진을 앞두고 실수로 해고당한 뒤 난희(클라라)와 함께 성인용품 사업에 뛰어드는 5년차 주부 보희 역을 맡았다.

“두 여자의 우정과 각기 다른 삶이 겹쳐지는 내용을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언지를 되돌아보는 작품이에요. 별반 보기 힘들었던 섹시 코미디 장르인데다 학교 때부터 워낙 유명했던 정 감독님과 작업해보고 싶어서 선택한 거죠. 똑 부러지는 워커홀릭 보희를 연기하면서 ‘일과 가정을 다 잘해내는 건 어렵다’는 제 우려가 맞음을 새록새록 확인해요. 하하.”

 

[취재후기] 멜로를 워낙 좋아해 자꾸 하게 된다. 좋아하는 이유를 묻자 “사랑이야기가 가장 큰 관심사 아니냐”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사람마다 이야기가 다르고, 또 어떤 배우가 표현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아니냐는 주장과 함께. 이 아름다운 멜로 지상주의자는 남은 작업을 마친 뒤 당분간 재충전의 동굴로 들어간다. 보고팠던 영화와 책을 몰아보고, 지인들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으며 새롭게 뭔가를 끄집어낼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작정이다.

goolis@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