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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 머라이어 캐리 "오바마 부부는 내게 특별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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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 머라이어 캐리 "오바마 부부는 내게 특별한 존재"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5.26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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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현존하는 최고의 '팝 디바' 머라이어 캐리(44)가 14집으로 위풍당당하게 귀환했다.

1990년 발매된 데뷔 앨범 'Mariah Carey'는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4곡이 연속으로 1위에 올랐다. 그렇게 스타는 탄생했다. 머라이어 캐리는 2억2000만장이 넘는 앨범 판매량을 자랑한다. 지금까지 빌보드 1위 곡을 무려 18개나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17곡이 자작곡이다. 이는 음악 역사상 솔로 가수로서는 최고 기록으로 엘비스 프레슬리보다도 많은 기록이다.

▲ 머라이어 캐리[사진=유니버설뮤직]

그는 90년대 고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팝계를 양분했다. 휴스턴이 묵직한 감성과 호소력 짙은 고음을 어필했다면 캐리는 컴퓨터같이 정교한 창법과 4옥타브를 넘나드는 신들린 고음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캐리는 당시까지만 해도 흑인들의 전유물에 불과했던 R&B와 힙합을 주류문화로 끌어 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4년 만에 발표한 신보 'Me. I Am Mariah...The Elusive Chanteuse'는 캐리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앨범이다. 강한 그루브에 풍성한 스트링 사운드를 덧입힌 복고풍 R&B ‘You Don’t Know What To Do'를 비롯해 총 14곡이 담겼다. 세월이 흐르며 더욱 깊어진 감성과 여전히 반짝이는 감각이 트랙마다 윤기를 더한다.

지난 1일 유튜브에 팬을 위한 특별 영상을 통해 앨범 타이틀과 발매 일을 발표한 머라이어 캐리의 프로덕션 인터뷰를 게재한다.

Q: 이번 앨범은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오게 되었나?

A: 지난번 멈춰 섰던 그 이후 경험한 내 인생을 담았다. 여러 개의 점들이 이어지다가 이렇게 앨범으로 나왔다. 이미 3개의 싱글이 앨범에 앞서 발매됐다. 'You’re Mine (Eternal)'는 빌보드 댄스클럽 차트 1위에 오르며 순항했고 그 전에 '#Beautiful'(피처링 미구엘)과 'The Art of Letting Go(내려놓음의 미학)'가 발매됐다.

Q: ‘The Art Of Letting Go(내려놓음의 미학)'처럼 당신은 내려놓는 방법을 터득했는지.

A: 아직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 트랙이 중요한 이유는 나의 잠재력을 완성시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두려움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은 스스로를 되찾아가는 과정과 엄마가 된 후 좀더 강해진 모습을 담아낸 결과물이다.

 

Q: 엄마가 된다는 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나.

A: 물론이다. 많은 점에서 내 삶이 변했다. 지난해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세살배기 쌍둥이 모로칸, 먼로와 좀더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애들이 너무 빨리 자라서 아직도 아기라고 부르기가 좀 묘하다. 얼마 전 애들의 생일파티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렇게 멋지고 작은 두 존재가 내 인생에 등장해 많은 것을 바꾸어놓을 줄 예상하지 못했다. 하하. 그래서 앨범에 두 아이를 담고 싶었고 무엇보다 내가 지금 느끼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다.

Q: 아이들이 노래에 참여하기도 했는지.

A: 그렇다. ‘Supernatural’이라는 곡에서 1~2소절 정도 불렀다. 사실 아이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걸 아주 좋아한다. 특히 딸아이 먼로가 적극적이라 ‘Goo goo goo’라고 시작되는 노래의 첫 소절을 불렀다. 세 살치고는 안정된 비브라토를 구사했다. 재미있는 건 나도 네 살때 집에서 엄마(오페라 가수 파트리샤 히키)와 처음 노래를 시작했고, 엄마의 영향력에 대해 평생 이야기해왔다는 점이다.

Q: 당신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

A: 뉴욕의 롱 아일랜드에서 자랐다. 엄마의 직업 때문에 자주 이사를 다녀 아웃사이더 기분을 느끼며 자랐다. 하지만 음악이 내 인생을 구원해줬다. 진심으로. 재능이 있음을 알았기에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느끼게 됐고, 성공을 향해 노력할 수 있었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라디오를 듣고 다음날 학교에 앉아 뮤지션으로 성공하는 것을 꿈꾸며 자랐다.

Q: 뮤지션이 되겠다는 꿈을 다른 사람과 나눈 적이 있었는지.

A: 아주 오랫동안 나만의 비밀이었다. 12세 때 학교에서 선생님이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어봤다. 대부분 평범한 직업을 이야기했는데 나만 예외였다. "연예인이 되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했는데 선생님이 그건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이셨다. 하지만 난 이뤄냈다. 엄마가 항상 성공에 대한 믿음을 주셨다. 큰 행운이다. 엄마는 나중에 예명을 고려해 처음부터 이름을 ‘머라이어 캐리’라고 지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항상 “만약 가수가 된다면"이라고 하지 말고 "가수가 되었을 때”라고 이야기하라고 지적하셨다.

Q: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당신의 팬이라고 밝힌 바 있다.

A: 그와 나 모두 혼혈이다. 혼혈 대통령이라니! 그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던 그 멋진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마치 꿈과 같았다. 미국의 규정집이 하룻밤 새 다시 쓰여진 것과 같을 거다. 믿을 수가 없었다.

Q: 오바마 대통령 부부를 만났나?

A: 물론이다. 두분 모두 굉장히 예외적이고 경이로운 분들이다. 사실 가족을 제외하고는 쌍둥이의 임신 소식을 처음 알린 분들이 버락과 미셸이었다. 2010년 두 분이 참석한 크리스마스 갈라 콘서트에서 노래했을 때 그 소식을 전했고 그들은 감격했다. 언제나 내 마음 속에 특별한 존재로 남아있다.

 

Q: 배우 겸 TV 호스트 닉 캐논과 결혼한 지 6년째다. 그를 보자마자 '이 사람'이라고 알아챘나?

A: 그런 것 같다. 처음 레스토랑에서 데이트하는데 식사 전에 우리 둘 다 동시에 "그레이스(Grace)"라고 말했다. 순간 영적으로 연결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Q: 아내이자 엄마 동시에 성공적인 엔터테이너로서 지난 수년간 능력 있는 비즈니스 우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향수, 샴페인 브랜드를 이끌었고 홈쇼핑 네트워크에서 신발, 보석, 향수 등을 포함한 라이프 스타일 컬렉션을 론칭했다.

A: 어릴 적에 이것 저것 만들곤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아이디어에 특허를 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시간을 들여 청바지의 윗부분을 잘라낸 적이 있었다. 그냥 그렇게 하니 나하나테 더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몇몇 유명 디자이너들이 같은 해에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선보였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오케이, 그 순간에 무언가 영향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자”.

Q: 25년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예측 불가능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이뤄온 경이로운 성공을 어떻게 설명할 지 궁금하다.

A: 이 분야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강인한 사람이 돼야만 한다. 난 꽤 터프하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사실 간단하다. 음악을 만드는 것을 항상 사랑해왔기 때문이다. 늘 다양한 음악을 듣고 마음에 들면 아티스트들에게 연락한다. 보통 함께 작업하게 되는데 내 강점 중 하나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2개의 다른 사운드를 잘 어우러지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음악에 신선하고 다른 무언가를 더해줄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게 내 목표 중 하나다. 최근엔 위대한 가수들인 메리 제이 블라이즈, 알 켈리, 미구엘 등과 콜라보레이션을 했다.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Q: 당신에게 음악은 무언가?

A: 음악은 영원하다. 음악을 만드는 것 자체가 황홀한 경험이며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일이다.

자료제공/유니버설뮤직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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