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7:11 (금)
분주한 세상에 멈춰 선 '나'를 찾다
상태바
분주한 세상에 멈춰 선 '나'를 찾다
  • 박길명 편집위원
  • 승인 2014.05.27 1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년작가 정연홍의 첫 개인전 '포즈(pause)'

[스포츠Q 박길명 편집위원]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세상, 그럼 나는?’ 가끔은 내게 던지는 물음. 청년작가 정연홍(35)은 스스로를 ‘일시정지’라고 했다.

▲ 정연홍 작가

“얼마 전, 어머니께서 컴퓨터로 모양 맞추는 게임을 하시는 게 생각났습니다. 전화가 오거나 집안 일 때문에 타임아웃으로 끝나는 걸 보고 제가 이어 하려고 보니 화면상단에 조그만 아이콘이 있더라고요. ‘일시정지.’ 그걸 보는 순간, 몇 년간 정체되고 의욕 없이 살았던 제 자신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작가의 첫 개인전 콘셉트는 ‘포즈(pause)’다. 정체됐다지만 그의 삶은 멈춰 있지 않았다. 편의점 알바, 식당주방 설거지, 막노동, 빌딩 전기기사, 그리고 면 티셔츠에 손 그림을 그려 팔기까지.

의욕이 없었지만 매너리즘에 빠져 사는 것이 싫었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으름 역시 싫었다. 그렇게 작가는 세상을 대했고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그것은 거친 세상에 대한 그의 초상이다.

▲ '하늘을 걷다'

그래서 캔버스는 더 이상 작가 자신을 표현하는 공간이 되지 못했다. 버려진 담뱃갑, 빈병, 천 조각, 널빤지…. 무엇이든 그는 그 위에 자신을 옮기려 했다.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테트리스’의 정지상황도 담뱃갑을 모아 붙여 그린 작품이다.

“지갑이 얇은 이유가 첫째이겠고, 그러다보니 그림은 그려야겠는데 그릴 곳이 마땅치 않아 닥치는 대로 그렸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느끼는 것들 아니면 감정표현의 즉흥적인 도구로 그린 거죠. 그림은 제 일기와도 같은 겁니다. 그래서 화가, 작가, 작품 세계란 말이 저한테는 약간 이질적으로 다가옵니다.”

작가에게 그림은 살면서 느끼는 것을 그림일기 쓰듯 그 생각의 흔적을 남기는 것뿐이란다. ‘소주 한 잔’은 일상이고, ‘잃어버린 기억’에는 일기가 있다. 거리에 나뒹구는 다듬어지지 않은 것들이 캔버스가 됐듯 작가의 터치는 거침없고 거칠기까지 하다.

▲ '잃어버린 기억'

거슬러 올라가면 그가 어릴 적 들었던 음악과 영화에 영향을 받았다. 분노의 표현 수단이 그림이었다. 거기에 날것의 느낌이 좋아서 원색의 대비를 많이 활용하다보니 때론 거칠다는 평을 듣는다고 한다.

‘테트리스’의 경우 한편으론 부드럽게 느껴진다. 작가가 일부러 깔끔하게 작업한 덕분이다. 그렇지만 작품 내용을 곱씹어보면 쓰라린 기억이 떠오르는 사람도 있으리라.

“작은 카페 한켠에 마련된 제 생애 첫 개인전입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하지만 솔직히 별다른 소회는 없어요. 단지 일시정지인 상태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소주 한잔'

일시정지를 벗어나는 계기라 역설적이다. 하지만 ‘포즈’에는 분주한 세상에 멈춰 선 자신,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삶이 스며있다. 그것이 삶인지라. 커다란 벽이나 그만한 사물에 미친 듯이 그려보고 싶다는 작가의 진화가 자못 궁금하다.

한편 작가 정연홍의 전시회는 경복궁 서촌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070-89870408)에서 6월1일까지 이어진다.

myung6565@naver.com

▲ 전시 'Pause' 포스터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