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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스크린 무대 위풍당당 워킹하는 '퀴어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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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스크린 무대 위풍당당 워킹하는 '퀴어코드'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5.31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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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 '헤드윅' 'M.버터플라이' 등 영화 뮤지컬 연극 '동성애 소재' 작품들 쏟아져

[스포츠Q 용원중기자]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 트랜스젠더(성전환자). 영어로 약칭 ‘LGBT’로 불리는 성적 소수자들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와 뮤지컬, 연극이 대거 벽장 속에서 나오고 있다. 사회적 규범을 탈피하려는 예술의 속성상 대중문화계에서 동성애 코드가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최근 더욱 강세다.

◆‘도희야’ 좌천된 동성애 파출소장 vs ‘하이힐’ 여자 되고픈 강력계 형사

지난 22일 개봉된 ‘도희야’(정주리 감독)는 사생활 문제로 인해 바닷가 마을 파출소장으로 좌천돼 내려온 영남(배두나)과 폭력에 노출된 14세 소녀 도희(김새론) 사이에 이뤄지는 교감을 담았다. 영남의 ‘사생활 문제’는 바로 동성애다. 액션 누아르 ‘하이힐’(6월 4일 개봉)의 지욱(차승원)은 치명적 비밀을 감춘 채 살아가는 강력계 형사다. 범인을 제압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상남자다. 그런데 지욱의 치명적 비밀은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다.

▲ '도희야'의 배두나(왼쪽)와 '하이힐'의 차승원

그간 파격적 소재와 자유로운 표현이 특징인 독립영화계에서 성적 소수자를 다룬 퀴어 (Queer)영화들은 심심치 않게 선보여 왔다. 커밍아웃한 이송희일 감독,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가 꾸준히 만들어온 작품들은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에서 대중성을 넓혀가는 추세다.

상업영화에서는 2001년 이병헌 주연의 ‘번지점프를 하다’를 기점으로 동성애가 소비되기 시작했다. 2005년 ‘왕의 남자’는 무려 1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하지만 광대 공길(이준기)- 장생(감우성)의 동성애가 소구력을 보였다기보다 새로운 사극 스타일 제시와 광대라는 비주류 집단 이야기를 통한 통찰이 당시 시대상황과 통했기 때문이다. 이후 ‘천하장사 마돈나’ ‘쌍화점’ 등이 비슷한 감성을 건드렸다.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해야 이윤을 창출하는 상업영화에서 동성애를 전면에 내걸기는 여전히 힘겹다. 특히 퀴어영화를 표방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대중의 포비아적 시선과 부담스러워하는 감성 탓이다.

◆ 금기의 사랑 벗어나 내면심리, 인간의 존엄 파고드는 소재 역할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코드 영화들은 잇따른다. 이는 젊은 감독들을 중심으로 보다 깊이 있거나 확장된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반영한다. 말초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금기의 사랑을 뛰어넘어 내밀한 욕망과 관계, 소외된 삶과 인간의 존엄을 파고드는 훌륭한 소재 역할을 하는 셈이다.

▲ '엄마와 나 그리고 나의 커밍아웃'의 기욤(왼쪽)

외화 ‘탐앳더팜’이 상영 중인 한 극장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정현석(30)씨는 “남녀의 사랑이냐 남남의 사랑이냐는 개의치 않는다. 작품의 메시지와 완성도가 중요한 게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나 역시 사회로부터 소외된 마이너리티란 생각이 들기에 성적 마이너리티들의 심정이 충분히 공감간다”고 말했다.

‘하이힐’은 한국 대중영화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MTF(Male to Female·성전환)에 대한 서사를 장진 감독식 유머와 비정한 누아르 장르에 녹여낸다. ‘도희야’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들(성정체성, 가정환경)로 인해 지독한 고립감에 휩싸인 두 여성의 소통과 연대를 속삭인다. 장진 감독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 했던 건 아니다. 보편적 가치관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성애 포용 2007년 18%서 2013년 39% 대폭 증가...2040세대 60% 육박

시대적 변화상도 주목할 만하다. 국제 여론조사 연구기관 '퓨 리서치 센터‘ 보고서 '동성애에 대한 국제적 인식차'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3년까지 6년 동안 "사회가 동성애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대답한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했다. 2007년 18%에서 2013년 39%로 21%나 올랐다. 특히 30~40대는 48%, 20대(18~29세)는 무려 71%가 동성애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대답했다.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포용도가 급증했다는 방증이다.

▲ 영화 '원나잇 온리'의 한 장면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포용도가 높은 서구사회의 수준 높은 퀴어영화들은 빈번하게 극장가에 간판을 내건다. 다양성 영화관과 각종 영화제가 주요 창구 역할을 한다. 저변 확대 요인이다.

◆해외 수준작들 다양성영화관, 각종 영화제 통해 소개...저변 확대

마니아들의 격찬을 받고 있는 ‘탐앳더팜’은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자비에 돌란 감독의 신작이다. 탐(자비에 돌란)이 동성애인 기욤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기욤의 형과 벌이는 그리움과 집착, 파국을 그렸다. 프랑스 코미디영화 ‘엄마와 나 그리고 나의 커밍아웃’(6월 5일 개봉)은 게이인줄 알았던 고교생 기욤이 뒤늦게 “나는 게이가 아니다”고 역 커밍아웃하는 포복절도할 상황을 담았다.

▲ 영화 '벨벳 골드마인'(위)과 '탐앳더팜'(아래)

국내 최대 규모의 퀴어영화제인 ‘제14회 서울 LGBT 영화제’(6월 4~10일)에서는 14개국 34편의 영화가 소개된다. 영화제 관계자는 “성 소수자뿐만 아니라 억압받는 약자들과 소외계층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연대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KT&G 상상마당 음악영화제’(6월 6~15일)는 개막작으로 ‘벨벳 골드마인’을 선정했다. 1970년대 여장을 즐기던 영국 글램록 최고 스타 브라이언 슬레이드(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를 통해 청춘의 초상을 우려낸 영화는 19일 무삭제판으로 정식 개봉된다.

‘쇼’는 계속된다. 퀴어멜로 ‘후회하지 않아’(2006년)를 통해 김남길, ‘친구사이?’(2009년)를 통해 이제훈 연우진이라는 대형 스타를 발굴한 김조광수 감독은 오는 7월 ‘원나잇 온리’를 꺼내든다. 밤공기처럼 서늘하고 쓸쓸한 게이들의 사랑을 2편의 영화에 담았다.

◆ ‘헤드윅’ ‘프리실라’ ‘킹키부츠’ ‘라카지’ 흥행 뮤지컬 4편 잇따라 무대로

화려한 볼거리와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무대의 속성상 매년 게이나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있어왔으나 올해처럼 관련 소재 뮤지컬, 연극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 경우는 드물다.

▲ 뮤지컬 '헤드윅'에서 트랜스젠더 록가수 헤드윅을 연기하고 있는 조승우

뮤지컬은 무려 4편이 무대를 점령한다. 숱한 폐인을 양산한 록 뮤지컬 ‘헤드윅’(5월 13일부터 백암아트홀)은 동독 출신의 트랜스젠더 록 가수 한셀의 이야기다. 결혼을 위해 이름을 '헤드윅'으로 바꾼 그는 성전환 수술을 받지만 버려지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록스타의 꿈을 키운다. 2004년 한국어 초연 이후 아홉 번째 시즌인 올해 무대에는 조승우, 박건형과 신인 손승원이 올라 매진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시드니의 게이클럽에서 활동하는 트랜스젠더 1명, 게이 2명 등 3명의 드랙퀸(여장 쇼걸)이 버스 '프리실라'를 타고 호주의 오지로 공연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프리실라'는 7월 8일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첫 라이선스 공연된다. 조성하, 김다현, 이지훈, 조권, 김호영 등이 캐스팅됐다. 팝스타 마돈나, 신디 로퍼, 티나 터너 등의 히트넘버 28곡과 495벌에 이르는 화려한 의상이 귀와 눈을 만족시킬 전망이다.

▲ 뮤지컬 '프리실라' 캐릭터 포스터

브로드웨이 뮤지컬 '킹키 부츠'는 파산 위기에 빠진 신사화 공장을 가업으로 물려받은 찰리가 여장남자 롤라를 우연히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여장 남자를 위한 부츠인 '킹키부츠'를 만들어 틈새시장을 개척해 회사를 다시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아냈다. 11월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세계 첫 라이선스 공연으로 선보인다.

▲ 뮤지컬 '킹키부츠'

토니상 작품상에 빛나는 ‘라 카지 오 폴'의 국내 초연인 '라카지'는 2012년에 이은 두 번째 공연이다. 1983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 당시 '게이커플과 그들의 아들 결혼 성사를 위한 대작전'이라는 소재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가족애에 무게중심을 둠으로써 호평을 얻었다. 게이이자 '라 카지 오 폴'의 전설적 여가수 앨빈 역으로 정성화와 김다현이 더블 캐스팅됐다. 12월 역삼동 LG아트센터.

◆ 연극계, 여장남자·동성애 소재 작품들 리바이벌

연극계에서는 여장 남자와 동성애를 소재로 한 작품이 리바이벌되고 있다. 2012년에 이어 올해에도 대학로를 달군 ‘나쁜자석’은 네 남자의 20년에 걸친 우정과 파멸을 그렸다. 고든은 그룹의 리더 프레이저를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빗대 ‘나쁜 자석’ 이야기를 만든다. 결국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망가진 자석이 되기로 하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다. 록 클럽 드바이 전속 밴드 보컬리스트 구본하와 클럽 주인 이우빈이 만들어가는 2인극 ‘트레이스 유’는 두 남자 사이를 흐르는 미묘한 기류와 미스터리가 동성애를 연상케 한다.

▲ 연극 'M.버터플라이' '나쁜자석' '트레이스 유'(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외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와 오페라 ‘나비부인’의 여장 남자배우 송릴링의 관계를 다룬 연극 'M.버터플라이'(6월 1일까지·아트원시어터 1관)는 2년 만에 무대에 올라 관객의 발길을 끌어 들였다. 아르헨티나 소설가 마누엘 푸익의 장편소설을 바탕으로 수감된 동성애자와 혁명가의 사랑을 다룬 '거미여인의 키스'가 올 하반기 중 3년 만에 다시 관객을 찾는다.

이들 작품은 성적 소수자의 애환을 휴머니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관객의 공감을 샀다. 훈남 배우들의 향연이라는 점과 성 소수자에 대해 우호적인 20~30대 여성이 뮤지컬·연극 주 관객층이라는 점도 흥행에 큰 힘이 되는 분위기다.

신 등 뒤의 사랑으로 인해 주홍글씨를 새겨야 했던 ‘이반’들이 다양성 시대를 맞아 대중문화계를 위풍당당 활보한다. 인간의 존엄성, 보편적 인류애라는 가치를 품은 채 창작활동에 영감을 주고 감동을 선사한다. 그러면서 ‘일반’, 그들만의 가치를 전복한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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