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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천재타자' 이치로에게 배워야 할 성공 DNA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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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천재타자' 이치로에게 배워야 할 성공 DNA 두 가지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5.10.21 10: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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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의 대기록 비결은 ‘루틴’ & ‘超목표’

[스포츠Q 류수근 편집국장] <본명 스즈키 이치로(鈴木一朗), 우투좌타, 외야수(주로 우익수), 1973년 10월 22일 일본 중부 지역인 아이치현 니시카스가이군 도요야마에서 출생. 1991년 드래프트 4위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입단. 2000년 11월 시애틀 매리너스와 3년간 1400만 달러 계약. 뉴욕 양키스를 거쳐 올해부터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활약. 2015년 메이저리그(MLB) 40인 로스터 최고령 야수로 등록. 별명 ‘천재타자’ ‘안타제조기’, '시계추 타법' 구사, 수비 별명 ‘레이저 빔’. 1999년 8년 연상의 아나운서 후쿠시마 유미코와 결혼. 일본프로야구(NPB) 9년간 1278안타-199도루-타율 0.353-출루율 0.421, 메이저리그 15년간 2935안타-498도루-타율 0.314-출루율 0.356. 2013년 8월 22일 토론토 블루제이스 전에서 미일 통산 4000안타 달성, MLB 3000안타 –65개…. >

일본인 메이저리거 이치로의 간단한 약력이다.

이치로가 일본프로야구(NPB)와 메이저리그(MLB)에서 쌓아올린 각종 기록은 A4 용지 몇 장으로도 모자랄 만큼 엄청난 분량을 자랑한다. 일본 출신 메이저리거이지만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정신과 식을 줄 모르는 기록 행진은 가히 경이적이다.

만 42세, 프로 24년, 미일통산 4213안타‘전인미답’의 기록 

전인미답(前人未踏)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이나 그 누구도 손 대 본 적이 없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치로의 행보는 ‘전인미답’ 그 자체다.

필자는 이치로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인 1999년과 2000년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유니폼을 입고 뛰던 그의 모습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스포츠서울 일본특파원 시절이었다. 구대성이 오릭스 유니폼을 입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이따금씩 접한 그의 플레이와 인상은 강렬했다. 언제 봐도 한결같은 표정과 모습이었다. 메이저리그에 가기 전, 그리고 간 이후에도 몇 년 간 오프시즌에 오릭스 숙소와 훈련장을 떠나지 않고 매일 동일한 일정을 묵묵히 소화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당시 퍼시픽리그팀인 오릭스는 비인기 구단이었지만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는 일본 언론에 생중계 되다시피 했다. 그가 서는 타석마다 기록이 됐고, 1999년 가을에 발표된 후쿠시마 유미코 아나운서와의 결혼 과정은 연일 핫이슈가 됐다. 2000년 가을 진행된 포스팅시스템 입찰 결과는 일본은 물론 전세계 프로야구계를 들끓게 한 빅뉴스였다.

이치로는 당시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바람의 아들’이라고 불리며 활약 중이던 이종범과 국내 언론에서 자주 비교대상이 되곤 했다. 이종범이 팔꿈치 골절상을 입은 후 예전의 기량을 되찾지 못해 저울추가 점차 이치로 쪽으로 기울었지만 한일 프로야구에서 천재성을 띈 대표적인 ‘호타준족’이라는 점에서 한일 프로야구 기자 사이에서도 줄곧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후 15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이치로는 메이저리그라는 꿈의 무대에서 여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이치로는 올 시즌 마지막 경기인 지난 4일(한국시간 5일) 필라델피아 필리스 전 8회에는 마운드에 깜짝 등장해 자신의 MLB 아카이브에 ‘투수’ 경력도 추가했다.

‘만 42세, 프로 24년, 미일 통산 4213안타’. 이치로가 세운 기록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이 세 가지 숫자를 꼽고 싶다. 현재의 이치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동양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만 42세까지 활약하고 24년간 프로선수로 쉼 없이 뛰어왔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체력, 인내력을 갖췄음을 대변한다. 그리고 미일 통산 4213안타라는 숫자는 노력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천재적 재능’의 소유자임을 의미한다.

운동과 행동의 ‘루틴’화 통해 경기에 맞춰 생체리듬 최적화

▲ 이치로는 어릴적부터 삼시세끼를 차려먹 듯 매일 자신만의 메뉴를 소화했다. '루틴'화다. 마이애미 말린스 유니폼으로 바꿔 입은 뒤 처음 맞이한 올해 스프링캠프 때도 웨이트트레이닝 장비를 현지로 공수해 훈련하는 등 자신의 '루틴'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은 올해 이치로의 스프링캠프 소식을 전한 신문 기사(가운데)와 예전 시애틀 매리너스와 뉴욕 양키스 시절의 유니폼을 입은 신문 보도들이다.

이치로의 전인미답 대기록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일본 특파원 시절부터 이치로를 직·간접적으로 지켜보면서 어떤 점이 그를 보통 선수들과 다르게 만들었을 지에 대해 궁금했다. 그래서 틈틈이 생각하고 일본 기자들과 전문가들에게 물어 봤다. 이 과정에서 두 단어가 가장 또렷하게 남았다. 바로 ‘루틴’과 ‘超목표’다.

‘루틴(routine)’은 간단히 ‘판에 박힌 일’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 용어이기도 한 이 단어는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을 일컫는다. 일상에서는 매일 같은 일을 습관처럼 반복하는 행위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치로는 타석에 들어서면 오른 팔을 뻗고 배트를 곧추 세우며 뭔가를 조준하듯이 응시하며 옷소매를 쭉 당기는 특유의 준비동작을 반복한다. 흡사 어떤 의식을 치르는 듯하다.

이치로의 대기록 비결을 분석할 때 일본 언론들이 빼놓지 않는 분석 분야가 바로 이같은 ‘루틴’ 행위다. 이치로에게 루틴은 반복적으로 행하는 훈련과 행동, 버릇과 습관을 모두 함축한다.

이치로는 프로 24년 동안은 물론 어릴 적부터 특정 방식의 훈련과 행동을 되풀이해 왔다. 그동안 일본 언론에 소개된 ‘루틴’의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한다.

  * 매일 같은 메뉴를 소화한다. (경기 전의 준비, 연습 메뉴, 경기 중 신체 움직이는 방법 등)

  * 스타디움에 들어갈 때 미리 정한 다리로 밟는다.

  * 결정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는다.

  * 경기시작 5시간 전에는 경기장에 들어간다.

  * 타인의 배트는 절대로 잡지 않는다.

  * 원정경기에는 발마사지기, 애용하는 베개를 지참한다.

  * 가능한 한 집과 동일한 환경을 만들고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

  * 매일 아침 동일한 식사를 한다. (‘카레’에서 2010년부터 ‘식빵과 국수’로 바꿨다고 함)

  * 새해 첫 타격 장소는 반드시 배팅센터(나고야)에서 행한다.

  * 자신을 선택해준 오릭스 스카우트의 성묘를 거르지 않는다.

이치로의 ‘루틴’은 어떤 면에서는 결벽증 환자가 행하는 행동과 흡사할 정도다. 하지만 이치로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동일한 패턴의 훈련과 행동을 매일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생체리듬을 야구 경기에 맞춰 항상 일정하게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이치로의 행동은 단순히 반복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 어떤 때도 대충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이치로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언제나 유사한 훈련 강도와 양을 유지한다.

이같은 ‘루틴’화는 자신을 통제하는 강한 자제심과 인내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치로는 ‘루틴’을 어릴 적부터 일상화했다. 이치로는 “꿈을 낚는 것은 단번에 할 수 없다. 작은 일을 거듭 쌓아나감으로써, 언젠가 믿기 어려운 힘을 낼 수 있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치로는 올해도 루틴을 실천했다. 일례로 마이애미 말린스 스프링캠프에 처음 참가한 올해 3월에는 ‘루틴’의 웨이트트레이닝을 위해 캠프지인 플로리다 주피터에 웨이트트레이닝 장비를 컨테이너로 공수해 설치한 뒤 활용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 운동 장비는 일본 돗토리의 스포츠짐 ‘월드윙’이 개발한 상반신용과 하반신용 전용 머신들이었다.

어릴 적부터 ‘超목표’ 세우고 일 년에 360일 운동, ‘자신감’ 무장

▲ "나는 일류 프로야구선수가 되겠다" "난 연습에 자신있다. 그래서 훌륭한 선수가 될 자신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365일 중 360일을 훈련한다""계약금 1억엔 플레이어가 되겠다" 이치로는 초등학교 6학년 글짓기에서 이같은 비범한 '꿈'을 상세히 적었다. 필자가 일본 특파원 시절 구입했던 ‘베이스볼 앨범-이치로’에는 이치로가 썼던 '꿈' 전문이 실려 있다. 이 특별판은 프로 3년차인 이치로(당시 오릭스 블루웨이브 소속)가 시즌 210안타를 치며 첫 타격왕 타이틀을 거머쥐었을 때 기념호로 발행된 것이다.

이치로는 어린 나이 때부터 당돌하고, 어쩌면 황당할 정도의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그 목표는 많은 배우들이 연기의 바이블처럼 여기는 ‘메소드 연기’에 등장하는 ‘超목표’와도 닮아 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캐릭터의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부단히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이때 강한 자신감과 자존감도 요구된다.

이치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꿈’이라는 제목의 작문에서는 그가 일찍부터 비범한 성격의 존재임을 잘 입증해 주고 있다. 1999년 베이스볼 매거진사에서 발행한 ‘베이스볼 앨범-이치로’ 편에 소개된 내용의 주요 부분을 발췌해 본다.

  * "나의 꿈은 일류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전국대회(고시엔 대회를 일컬음)에 나가 활약해야 한다. 활약할 수 있도록 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연습에는 자신있다. 나는 3살 때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3~7세까지는 반년정도 했지만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는 365일 중 360일을 강도 높게 연습하고 있다. 따라서 일주일 중 친구와 놀 수 있는 시간은 5~6시간 사이다. 그렇게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중학교와 고교에서 활약하고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입단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 구단은 주니치 드래건스나 세이부 라이온스가 꿈이다. 드래프트 입단 계약금은 1억 엔 이상이 목표다. 내가 자신 있는 것은 투수와 타격이다."

  * "내가 일류 선수가 되어 경기에 나갈 수 있게 되면, 신세진 사람들에게 초대권을 배부해 응원 오도록 할 것이다. 어쨌든 가장 큰 꿈은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이 글짓기 내용을 보면 이치로의 대기록이 어릴 적부터 착실히 준비되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6학년생이 쓴 글이라고 믿기 어려운 면면들이 눈에 띈다.

고교 졸업 후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계약금 1억 엔’이라는 구체적인 몸값 목표도 정했다. 1억 엔은 얼마 전까지도 일본 프로야구에서 고교생이나 대학생이 프로야구에 입단할 때 최고 대우의 조건으로 여겨지던 금액이다.

작문에서는 또 이치로의 강한 자신감과 꿋꿋한 인내심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초등힉교 3학년 때부터 일 년에 단 5일만 쉬고 360일을 훈련한다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매일 강도 높은 훈련이 이어지지만 힘들다거나 포기하고 싶다는 뉘앙스의 단어는 하나도 없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곳곳에 배어 있다.

팬 서비스에 대한 생각도 흥미롭다. 이치로는 글짓기 내용처럼 프로선수가 된 이후 자신이 신세진 사람들을 구장으로 꾸준히 초대해 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이치로의 글짓기 내용이 다 이뤄진 건 아니다. 출생지의 프랜차이즈 팀인 주니치 드래건스는 물론 세이부 라이온스로부터도 러브콜을 받지 못해 고베의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했다. 주니치는 왜소한 체격 때문에 이치로를 투수로서 저평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향팀 주니치가 선택하지 않은 이치로를 오릭스로 부른 인물이 스카우트 미와타 가쓰토시였다. 오릭스 입단 후 명장 오기 아키라 감독과 아라이 히로마사 타격코치를 만나면서 이치로는 투수가 아닌 타자로서 개화하며 잠재력을 맘껏 폭발시키게 된다. 이치로는 자신을 알아 준 미와타가 지난 1998년 11월에 자살한 이후 매년 그의 성묘를 가고 있다.

이치로의 ‘루틴’과 ‘超목표’는 장차 스타플레이어와 대기록을 꿈꾸는 프로선수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꽤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다.

이치로의 대기록 행진은 내년 시즌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을까? ‘루틴’과 ‘超목표’라는 그만의 DNA로 창조해 가는 이치로의 대기록 종착점이 어디일지 궁금하다.

이치로 역대 주요 기록

◇ 일본프로야구(NPB)

   ▲주요 수상기록= 타격왕 7회, 타점왕 1회, 도루왕 1회, 최다안타 5회, 최고출루율 5회, 시즌 MVP 3회, 베스트나인 7회, 골든글러브 7회.

   ▲주요 경기기록= 시즌연속경기출루 69, 연속 타석 무삼진 216, 시즌 타율 0.380이상 2회, 풀이닝 출장 타격왕 1회, 5년 연속 전경기 출장 타격왕. 7년 연속 타율 0.340이상 타격왕. 7년 연속 출루율 4할 이상, 퍼시픽리그 시즌 최고 타율 0.387(NPB 2위).

 ◇ 메이저리그(MLB)

   ▲주요 수상기록= 타격왕 2회, 도루왕 1회, 신인왕, 시즌 MVP 1회, 실버슬러거 3회, 골드글러브 10회.

  ▲주요 경기기록= 시즌 최고 안타 262(2004년), 시즌 최다 단타 225(2004년), 10년 연속 시즌 200안타(기네스 세계기록 인정), 연속 4시즌 최다안타, 우익수 최다 자살(刺殺) 7회.

<편집자주> 필자는 스포츠서울에서 체육부 기자, 야구부 차장, 연예부장을, 스포츠서울닷컴에서 편집국장을 거치면서 스포츠와 대중문화를 두루두루 취재했다. 특히 두 차례에 걸쳐 4년간 근무한 일본특파원 시절에는 주니치의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 요미우리의 조성민 정민태 정민철, 오릭스의 구대성, 지바롯데의 이승엽 등을 전담 마크하며 한국 선수들의 성공과 좌절은 물론, 일본 야구의 겉과 속을 찬찬히 지켜봤다. 현재 스포츠Q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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