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5:33 (금)
한국의 '로봇 볼링', 그 누가 막을쏘냐
상태바
한국의 '로봇 볼링', 그 누가 막을쏘냐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6.05 0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시아 최강 한국볼링 대표팀, 홈 이점 살려 아시안게임 제패 도전장

[300자 Tip!] 볼링이라는 종목은 일반인들에게 스포츠라기보다는 하나의 레저오락으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엄연히 볼링도 스포츠다. 대한체육회 가맹단체 스포츠 종목인데다 올림픽에는 없지만 아시안게임 종목에 당당히 들어가 있다. 프로볼링은 미국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또 볼링은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전략 종목이기도 하다. 볼링 대표팀은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내기 위해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한국 볼링은 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 최강을 자랑한다. 그러나 미묘한 레인의 변화에 빨리 적응해야 하는 등 당일 경기 변수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국 볼링은 세계 최고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로봇 볼링'으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제패를 노리고 있다.

[태릉=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에서 삼육대학교 방향으로 버스 한 정거장을 더 가면 태릉빙상장과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들어가는 또 다른 문이 있다. 이 문으로 들어가 조금만 걷다보면 간혹 둔탁한 공이 마루바닥을 굴러가고 핀이 '와장창' 쓰러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선수들이 힘든 훈련 도중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볼링을 치는구나'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소리는 볼링 국가대표 선수들이 필승관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볼링 실전 훈련을 하는 것이다.

볼링은 올림픽 종목으로는 채택되지 못했다. 아니 딱 한번 시행된 적은 있다. 정식 종목은 아니고 시범 종목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한번 열렸으며 당시 남자 개인전에서 권종율이 금메달을 딴 기록이 남아 있다.

볼링은 주로 아시안게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 볼링은 적지 않은 메달을 가져왔다. 2010년 광저우 대회는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둔 아시안게임으로 기록됐다. 남자 3인조와 5인조, 마스터스를 비롯해 여자 1인조, 2인조, 5인조, 올이벤트, 마스터스 등까지 8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 박창해 볼링 국가대표팀 총감독이 필승관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던 중 잠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창해 총감독은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선수들은 실업팀에 소속돼 과학적인 지도를 받으며 탄탄한 기본기를 구축, 세계 최고 실력을 자랑한다고 말한다.

◆ 한국 볼링, 세계 최정상인 이유는

한국 볼링은 세계선수권에서도 종주국 미국과 아시아 강국 일본과도 경쟁을 벌인다. 이미 아시아권에서는 일본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 볼링이 강한 이유는 바로 '로봇 볼링'이다. 미국의 한 TV 해설자가 한국 선수들이 볼링을 치는 모습을 보고 정확도와 일관성에 혀를 내두르며 한 말이다.

사실 정확성을 요하는 스포츠 종목에서 한국을 따라올 수 있는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다. 양궁과 사격에서 한국이 늘 상위권을 유지하듯 볼링 역시 정확성이 요구되는 종목이어서 언제나 강세다.

한국 볼링이 또 강한 이유는 일반 엘리트 체육처럼 초,중,고교, 대학교, 일반(실업)으로 이어지는 체계가 잘 잡혀있다는 점이다. 볼링은 다른 나라에서는 레저 스포츠 또는 생활체육 개념으로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프로 선수를 제외하면 아마추어 전문 선수층이 우리나라처럼 두껍지 못하다.

박창해(62) 볼링 국가대표 총감독은 "다른 나라에는 볼링 종목에 실업팀이라는 개념이 없다"며 "우리나라는 실업팀이라고 흔히 부르는 직장운동경기부가 있어 기본기를 구축하는데 용이하고 지도자들의 조직적이고 과학적인 지도가 접목돼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양성된다"고 설명했다.

▲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제패를 노리는 '세계 최강' 한국 볼링 대표팀 선수들이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훈련에 전념하고 있다. 볼링 대표팀 선수들은 제각기 다른 레인에 적응하고 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훈련에 임하고 있다.

◆ "레인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 12가지 패턴 파악·적응 중점

영화 '최종병기 활'에는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라는 명대사가 나온다. 이를 볼링에 대입하면 '레인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레인 위에 그냥 공을 제대로 굴리면 되는 것 아니냐는 '초보적인' 얘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볼링에서 레인은 크나큰 '변수'다.

그 이유는 바로 레인 위에 덧칠하는 기름이다. 기름이 얼마나 레인 위에 덧칠되는지, 그리고 어느 위치에 칠해지는지에 따라 공의 회전이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선수들은 레인 특성을 달리하며 훈련한다. 기름이 얼마나, 어느 위치에 칠해져 있는지 등 각 상황을 달리하며 레인의 특성을 연구하고 계산한다.

박창해 총감독은 "레인의 전체 길이 60피트 가운데 33피트에서 47피트 사이에 12가지 패턴으로 기름이 칠해지기 때문에 이 패턴에 맞춰 훈련이 이어진다"며 "결국 누가 레인의 특성을 빨리 읽고 적응하느냐가 관건이다. 홈 이점을 안고 있는 우리가 유리한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 남자 볼링대표팀의 '에이스' 최복음이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힘차게 공을 굴리고 있다. 볼링계에서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최복음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에 이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레인을 마냥 계산만 할 수는 없다. 경기를 하면서 생각하기도 복잡한 변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볼링공이 굴러가면서 레인 위에 하나의 길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기름이 엉뚱한 곳으로 묻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같은 레인 바닥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특성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선수들은 훈련을 하면서 레인을 계산한다기보다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한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이에 대해 박 총감독은 "앞사람이 어떤 식으로 경기하느냐에 따라 레인의 긁힘이 달라진다. 그만큼 레인 변화는 예측불허"라고 귀띔한다.

◆ 역대 최고 성적 관건은 개인전과 2인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따낸 금메달은 모두 8개. 이 때문에 지금 볼링 대표팀은 기본 목표를 5~6개의 금메달로 잡는다. 오히려 낮춰 잡은 것은 그만큼 볼링이라는 종목이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얼마'가 아니라 '얼마 이상'이라는 목표만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관건은 개인전과 2인조 경기다. 개인전과 2인조 경기는 첫날 벌어지기 때문에 레인 적응이 얼마나 빨리 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훈련하고 있는 남자 볼링 대표팀 선수들이 각자 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준영(윗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홍해솔, 김경민, 박근우, 강희원, 최복음, 박종우, 신승현.

게다가 여태껏 남자부에서 개인전과 2인조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낸 적이 없었다. 남자 개인전의 경우 1978년과 2006년 대회에서 은메달, 남자 2인조는 1994년 은메달, 1998년과 2002년 동메달 정도다.

이춘수(52) 감독이 이끄는 남자 대표팀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선수는 최복음(27·광양시청)이다. 2004년부터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터줏대감'으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3인조, 5인조, 마스터스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박 감독의 최복음에 대한 신뢰는 엄청나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볼링계에서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선수'다.

그러나 최복음의 답은 '볼링 몰라요'다.

최복음은 "이제 세번째 아시안게임이다. 아직까지 대표 선발전이 열리지 않아 긴장감을 느끼진 못한다"며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은 내 개인의 영광보다는 다른 선수들을 많이 도와주고 싶다. 개인적인 욕심은 버렸다"고 말한다.

또 최복음은 "개인전은 우리 대표 선수 가운데 누구라도 노려볼 수 있는 종목"이라며 "역시 개인전의 변수는 당일 컨디션과 레인 적응이다. 그것만 잘된다면 사상 첫 개인전 금메달을 우리 선수들 가운데 따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손연희는 지난해 세계볼링선수권에서 3인조, 5인조, 마스터스를 모두 제패한 세계 여자볼링의 최강자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2, 3, 5인조 등 3관왕에 오른 손연희는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강력한 다관왕 후보다.

◆ 3인조 이상 단체전에서 강한 이유, 실력의 평준화

개인전과 2인조 등에서는 다른 종목에 비해 약세이지만 3인조 이상 단체전은 한국의 강세 종목이다. 이유는 모든 선수들의 실력이 고르기 때문이다.

개인전과 2인조 경기에서는 그날 경기에서 누구 하나 '미쳐주는' 선수가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다. 이런 종목에서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선수들이 강세다. 홍콩도 무시할 수 없고 최근에는 한국 감독들의 지도로 전력이 많이 좋아진 중동세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여기에 '헬리콥터 볼링'으로 유명한 대만도 이따금씩 깜짝 놀랄만한 성적을 낸다. 헬리콥터 볼링은 마치 헬리콥터의 프로펠러처럼 공이 회전한다며 붙여진 별명이다.

그러나 불규칙 바운드가 많은데다 요즘 레인에서는 헬리콥터 볼링이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다는 것이 볼링계의 중론이어서 대만 볼링이 두려울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이에 비해 3인조 이상의 경기에서는 호흡과 고른 실력이 중요하다. 실력이 들쭉날쭉하면 높은 기록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최강 한국 볼링을 이끌 여자 대표팀 선수들이 활기찬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귀애(윗줄 왼쪽부터), 이영승, 손연희, 이나영, 전은희(가운데), 정다운(아래줄 왼쪽부터), 백승자, 김진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또 하나 주목할 선수는 바로 여자부 에이스 손연희(30·용인시청)다.

광저우 대회에서도 2인조와 3인조, 5인조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던 손연희는 지난해 세계볼링선수권 3인조, 5인조, 마스터스를 모두 제패하며 지난 2월 대한체육회 체육상 우수상에 선정되는 등 '세계 여자볼링의 최강'으로 꼽히고 있다.

손연희는 "이번 아시안게임은 정말 즐겁게 치고 싶다. 정확성과 세심함이 요구되는 종목이라 스트레스가 많다"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주로 잠으로 많이 푼다"고 웃는다.

또 손연희는 '금메달 기대주'로 꼽히는 것에 대해 "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바로 볼링"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여기에 "내 장점이 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열심히 치다보니 좋은 성적이 나온다"고 웃었다.

볼링 대표팀은 다음달부터 안양 호계볼링장에서 아시안게임에 대비한 본격 훈련에 돌입한다. 호계볼링장은 바로 아시안게임 경기가 열리는 장소다.

박창해 총감독은 "32개 레인 가운데 양 옆 2~3개를 뺀 26~28개 레인 가운데 하나가 경기 당일 추첨을 통해 결정된다"며 "결국 이들 레인의 특성을 조금씩이라도 알아야만 레인의 미묘한 변화를 극복하고 적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인천 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두고 있는 한국 볼링 대표팀 선수들과 박창해 총감독 등 코칭스태프들이 선전을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볼링 대표팀은 최종 선발전을 통해 인천 아시안게임에 나갈 대표 선수를 뽑게 된다.

[취재후기] 볼링이라는 종목은 의외로 심리적인 것에 크게 좌우된다. 32개 레인 가운데 양 옆의 2~3개 레인을 빼는 것 역시 선수들의 심리적인 이유 때문이다. 최복음은 "1번이나 마지막 레인은 바로 옆에 벽이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된다"고 말하고 박창해 총감독도 "양 옆의 레인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성적이 잘 안나온다. 볼링공이 무거워도 바람의 영향은 많이 받는다. 그래서 일반 공식 경기에서도 양 옆의 레인을 쓰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반 사람들이 재미로 치는 볼링에 이처럼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 대표팀 선수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다. 최근 선수촌에서 심리치료상담사가 선수들의 심리치료와 상담을 해주고 있는데 이 가운데 볼링 선수가 적지 않다고 한다.

tankpark@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