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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6) '울보 권투부' 이일하 감독 "그저 권투가 좋아서 열심히 하는 아이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죠"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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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6) '울보 권투부' 이일하 감독 "그저 권투가 좋아서 열심히 하는 아이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죠" (上)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5.10.24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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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원호성 기자·사진 최대성 기자] ‘울보’와 ‘권투’,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치열하고, 가장 남성적인 스포츠 ‘권투’와 그런 남성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울보’라는 단어가 조합된 영화, 서로 충돌하는 두 개념이 어우러진 영화 ‘울보 권투부’는 여기에 재일동포들의 이야기라는 조합까지 곁들여진다. 그러니까 울보와 권투와 재일동포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이야기다.

2014년 열린 제6회 DMZ 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이후, 1년 만에 한국 극장가에서 개봉하게 된 이일하 감독의 ‘울보 권투부’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를 다니는 재일동포 학생들이 권투부를 통해 청춘을 발산하는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동안 재일동포를 소재로 했던 많은 영화들처럼 재일동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 그리고 ‘울보’라는 제목으로 인해 자칫 재일동포의 한(恨)과 설움을 그린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울보 권투부’는 그런 칙칙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영화의 제목에 들어가는 ‘울보’라는 말은 그저 권투에 열정을 불사르며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한 뒤 흘리는 소년들의 값진 눈물을 의미하는 단어일 뿐이다.

▲ '울보 권투부' 이일하 감독

◆ 소재 찾기, “처음에는 재일동포의 한(恨)을 그려내려고 했어요”

보통 재일동포를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들이 일본인의 시선에서 재일동포들을 바라보거나, 재일동포의 시선에서 재일동포를 바라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고’나 이츠즈 카즈유키 감독의 ‘박치기’와 같은 영화가 전자의 예라면,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나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와 같은 작품은 후자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울보 권투부’를 연출한 이일하 감독은 이 중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순수한 한국인으로, 2000년 영화를 배우기 위해 일본에 유학을 가서 현재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이다. 그렇기에 이일하 감독은 ‘재일동포’라는 소재에 대해서 일본인이나 재일동포 출신 영화인에 비해 어느 정도는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간 이후 계속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었는데, 언젠가는 꼭 한 번 재일동포라는 소재를 가지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재일동포라는 문제가 역사적인 문제부터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적 상황까지 얽혀있는 풀기 쉽지 않은 문제여서 처음에는 큰 산처럼 보여서 고민을 많이 하다가, 그래도 한 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그 때부터 소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재일동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에 적합한 소재를 찾던 이일하 감독에게 어느 날 ‘리건태’라는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오사카조선고급학교에서 권투를 하던 리건태 선수는 일본 국민체육대회 소년부 라이트급 우승을 차지하는 등 일본에서 권투로 6관왕에 62연승이라는 놀라운 연승행진을 달리고 있던 선수였다.

“리건태 선수의 이야기를 접하고 오사카조선학교를 취재하고, 결국 도쿄조선학교 권투부를 취재하게 됐습니다. 사실 이 소재를 정하고 처음에는 재일동포의 한(恨)과 같은 것을 권투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표현을 하려고 했어요.”

영화는 감독이나 작가가 먼저 시나리오를 쓰고, 전문 배우를 고용해 완성된 시나리오대로 촬영을 진행한다. 그렇기에 최종적으로 완성된 영화는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영화를 촬영하고 편집하는 감독의 목적이나 시선이 반영될 수는 있어도, 정해진 시나리오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에 감독이 의도한 대로 영화가 완성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울보 권투부’가 바로 그런 영화였다.

“권투가 원래 헝그리 스포츠잖아요. 그래서 재일동포의 한(恨)과 접목시켜보면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을 하고 촬영을 시작했죠. 그런데 막상 찍다보니 아이들의 모습은 제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어요. 제가 촬영을 하며 만난 아이들은 재일동포의 한(恨)을 간직하고 사는 아이들이 아니라, 너무나 순진하고 천진난만하고 권투 그 자체가 좋아서 열심히 권투를 하는 친구들이었던 거죠. 그래서 아이들을 가지고 한(恨)을 표현한다거나 그런 생각은 일찌감치 접고, 그냥 이 아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재일동포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졌어요.”

▲ '울보 권투부' 이일하 감독

◆ 촬영, 그리고 새로운 주제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울보 권투부’는 권투 영화만큼 박진감 넘치는 권투장면이 그려지지는 않지만, 너무나 권투를 하는 것이 좋아 열심히 권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숨김없이 그려낸다.

‘울보 권투부’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이일하 감독이 들고 있는 카메라와 아이들의 너무나 가까운 거리감이다. 이일하 감독은 간단한 권투 연습 장면부터 경기에 승리하거나 패배한 아이들의 뒷모습까지 카메라를 아이들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 들이대고, 아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낸다. 이일하 감독은 이처럼 아이들의 모습을 숨결 하나까지 카메라에 담기 위해 2학년 여름부터 3학년 졸업까지 1년 6개월 동안을 ‘울보 권투부’의 아이들과 함께 하며 카메라를 통한 물리적 거리감을 없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울보 권투부’ 역시 이일하 감독이 1년 6개월 동안 아이들을 지켜보고 관찰하며 가장 이 아이들을 설명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한 제목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을 졸업시키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한 마디로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울보”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하지만, 이일하 감독 역시 아이들이 흘리는 땀과 눈물을 지켜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아이들이 정말 많이 울었어요. 권투 경기에 이겨도 울고, 져도 울고. 그런데 이 눈물을 정말 한 단어로 표현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권투 경기에 이겼을 때는 기쁨의 눈물에 말로 설명하기 힘든 한 가지가 더해진 느낌이고, 졌을 때도 분해서 울기도 하지만 역시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감정들이 담겨 있었어요. 슬프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영화에서 저는 아이들의 눈물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고시엔(甲子圓)이나 인터하이(Inter High)가 등장하는 일본의 청춘물을 봤던 관객이라면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일본의 고등학교 동아리 문화는 한국보다 훨씬 활발하고 자유롭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에서는 오직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만을 집요하게 강요하고, 운동과 같은 것은 어린 시절부터 실력을 인정받은 ‘운동부’라 불리는 특정 아이들의 전유물이 되는 전형적인 ‘엘리트 스포츠’가 중심이다. 일본에도 물론 한국처럼 ‘엘리트 스포츠’로 운동부를 만드는 학교도 존재하지만, 많은 일본의 고등학교는 ‘엘리트 스포츠’가 아닌 ‘생활체육’과 ‘자기계발’의 목적으로 고등학생들이 야구, 축구 등 운동부터 다양한 문화활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

▲ 영화 '울보 권투부' [사진 = 인디스토리 제공]

이는 ‘울보 권투부’의 주무대인 도쿄조선학교 권투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일하 감독이 ‘울보 권투부’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된 오사카조선학교의 리건태 선수도 권투는 중학생 시절 동아리 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시작했던 선수이고, 영화에 등장하는 도쿄조선학교 권투부 아이들 역시 권투만 배우는 전문 권투선수가 아니라 학교생활과 함께 동아리 활동으로 단지 권투가 좋아서 하는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에게 동아리 활동은 학교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공부보다도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어서 온다고도 말해요. 전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국은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고 경쟁도 심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안 하고도 이렇게 천진난만하게 즐기면서 최선을 다해서 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거죠.”

실제로 ‘울보 권투부’가 2014년 DMZ 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을 당시에도 관객들이 가장 주목한 부분은 ‘재일동포’가 아닌 권투를 진정 즐기면서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공부와 입시에 찌든 한국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이처럼 즐기면서 권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을까?

“DMZ 국제다큐영화제 상영 때도 분단이나 정치적 그런 문제보다도 아이들이 너무 밝고 순진하고 저렇게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어린 아이들을 둔 어머님들이 많이 좋아하셨어요. 학생들의 경우에는 상영이 끝난 후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애들이 너무 보기 좋고, 나도 저 애들처럼 저렇게 열심히 한 번 해보고 싶다고. 감독으로서 제 의도를 관객들이 잘 이해해줬다는 생각에 저도 굉장히 기뻤어요.”

☞ '울보 권투부' 이일하 감독(下)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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