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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발레리나 이용정 '지젤'로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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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발레리나 이용정 '지젤'로 비상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6.07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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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 발레단 '지젤' 통해 드라마틱한 연기력 발산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동윤(플로어1 스튜디오)] 눈부시게 화창한 6일 오후, 논현동의 천장 높은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널찍한 공간을 가득 메운 생기발랄한 향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긴 생머리에 네이비블루 재킷, 흰색 반팔 티셔츠와 화이트 숏팬츠를 입은 발레 신성 이용정(26)이 그 진원지였다. 카메라 앞에서 컷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포즈를 척척 잡아내고 있던 그는 지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지젤을 연기하기엔 너무나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 낭만발레 대표작 ‘지젤’에서 비극의 여주인공 맡아 드라마틱한 연기

차세대 프리마 발레리나 이용정은 유니버설발레단(이하 UBC)이 6년 만에 국내 정기 공연으로 올리는 낭만발레의 대표작 ‘지젤’(13~1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이승현(알브레히트)와 짝을 이뤄 지젤을 연기한다.

‘지젤’은 클래식 발레 중에서도 드라마가 강한 작품으로 1막과 2막이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특히 여주인공 지젤의 심리 변화가 두드러진다. 1막 전반부까지는 사랑에 빠진 순박하고 발랄한 시골 소녀, 1막 후반부에는 연인의 배신으로 오열하며 광란으로 치닫는 비극적 여인으로, 2막에서는 죽은 영혼이 돼 애인을 향한 숭고한 사랑을 지키는 가련한 윌리(숲속의 요정)로서 캐릭터의 3단 변화를 한다. 고난도 테크닉은 물론 깊은 내면 변화까지 드러내는 연기력이 요구되기에 발레리나라면 반드시 도전하고 싶은 배역이기도 하다.

“이 역이 제게 왔다는 게 너무 놀라웠어요. 제가 ‘섬세하고 아름다운’이랑은 거리가 멀거든요. ‘돈키호테’의 여주인공 키트리처럼 활발한 역이 어울린다고 여겨서 ‘과연 내가 지젤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란 고민에 빠졌어요. 하지만 무용수로써 발전하고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거라 확신해요. 드라마 요소가 워낙 강한 작품이니까 관객에게 스토리가 잘 전달되도록 중점을 두려고요.”

 

듣다보니 자기 ‘디스’가 심하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자학이나 자신 없음은 분명 아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몸에 밴 습관과 솔직함 때문인 듯 보인다. 당돌하게 여겨질 만큼 쿨하기도 하다. 모든 걸 툭툭 털어버리는.

◆ 남자 못지않은 파워와 표현력 일품... '반전매력' 발레리나 평가

“솔직히 지젤 성격은 저와 안 어울려요. 지고지순한 지젤은 자존심마저 버리면서까지 남자에게 헌신하잖아요. 남자가 바람피우는데 충격을 받고 죽을 정도로 실연에 상처받진 않을 거 같아요. 이용정의 지젤요? 작품 속 캐릭터와 똑같기보다는 제 성격에 맞게 지젤을 표출하는 게 중요하겠죠. 저 다우면서도 지젤의 스토리를 잘 표현하는 게 숙제예요.”

남자를 능가할 정도로 파워와 표현력이 좋은 이용정에 대해 UBC 문훈숙 단장은 “내면에 감춰진 그만의 감수성이 있기에 지젤을 훌륭히 소화해낼 것이다”고 말했다. 평단은 “소녀의 청순함뿐만 아니라 여인의 도도함을 표현할 줄 아는 반전매력의 발레리나” “다양한 변신을 이루는 카멜레온의 매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매긴다.

 

“중학생 때 김주원 선배님의 ‘지젤’을 봤을 때는 상큼하고 신선한 느낌이 즐거웠어요. 6년 전 황혜민-엄재용 커플의 ‘지젤’ 공연 커튼콜을 지켜보면서는 먹먹함 때문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2012년 제가 군무로 출연했을 당시 서희 선배님의 지젤은 연기 면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고요. 감정 표현과 호흡이 제가 해보고 싶은 스타일 그대로였죠.”

◆ UBC 군무 입단 후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주역 맡으며 승승장구

초등학생 시절 통통한 게 싫어 살을 뺄 목적으로 집 앞 발레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며 춤과 인연을 맺었다. 프로 무용수로서 살기로 결심한 건 한국예술종합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UBC의 정련되고 아름다운 스타일을 좋아하는 부모님의 권유로 2011년 입단했다. 코르 드 발레(군무)를 거쳐 드미 솔리스트, 솔리스트까지 빠른 속도로 승급했다. 이용정의 표현에 따르면 “힘들었던 군무 생활 당시 눈물 콧물을 다 흘렸다”고 한다.

 

“그동안 배워왔던 춤 스타일을 바꿔야했던 게 가장 힘들었어요. 제가 원래 힘이 좋은 무용수인데 UBC는 손끝, 발끝마저 숨 쉬는 듯 아름다운 스타일을 추구하거든요. 아름다운 백조와 같은 친구들은 발레단에 수없이 많았으니까. UBC에서 원치 않는 ‘미운 오리 새끼’라고 생각한 거죠. 좋은 선생님과 선배님들의 조언으로 버거웠던 상황을 잘 넘긴 것 같아요.”

2011년 입단하자마자 군무진임에도 ‘호두까기 인형’의 주역 클라라를 맡아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해 3월 ‘백조의 호수’를 통해 라인이 좋아졌다는 평과 더불어 아름다운 백조 오데트와 강렬한 흑조 오딜의 1인2역을 멋지게 소화했다는 칭찬에 그간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 눈물을 펑펑 쏟았다. 올해 들어 ‘UBC 30주년 갈라 콘서트’에 이어 창작발레 ‘인어공주’에서 인어공주 역을 맡아 한예종 무용원 선배인 발레리노 김현웅과 함께 무대를 꾸몄다.

◆ “‘발레돌’ 이승현, 최고의 파트너이나 여자보다 더 얼굴 작아 짜증”

이번 ‘지젤’에서는 총7회 공연 동안 여섯 커플이 주역을 맡는다. 황혜민-엄재용, 강미선-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김나은-이고르 콜브, 김채리-이동탁 , 이용정-이승현(13일 오후 8시), 김주원-이승현이 그들이다. 귀족청년 알브레히트를 맡은 ‘발레돌’ 이승현에 대해 “발레리나를 너무 편하게 들어주고, 날라주고, 보내주고 해서 파트너십은 최고예요”라고 눈을 반짝였다. 이어 날아온 추가 평가, 디스의 달인답다.

▲ '지젤'의 알브레히트(이승현)와 지젤(이용정)[사진=유니버설발레단]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는 힘과 유연함, 테크닉이 뛰어난데 여주인공보다 더 예쁘고 보호본능을 유발해요. 함께 무대에 오르거나 사진촬영을 할 때 저희 얼굴이 작아 보이도록 분장에 엄청 신경써야 해요. 짜증나요. 하하. 오빠랑은 드라마 발레 대표작인 ‘오네긴’에서 엇갈린 사랑에 절규하는 타티아나와 오네긴으로 공연해보고 싶어요.”

‘지젤’ 1막에서 알브레히트와 지젤이 처음만나 ‘밀당’하는 느낌을 잘 살려내고 싶다는 이용정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젊으니까 후회 없이 모든 작품을 해보고 싶다”며 단단한 의지를 드러냈다.

[취재후기] 발레는 희로애락의 인생사가 담겨 있기에 발레에 갇혀서 지내기보다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사랑과 이별뿐만 아니라 음악, 영화, 책 그리고 술 마시며 놀기와 같은 것들이 모두 소중하다. 대학시절 부상으로 인해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고통의 시간을 알기 때문에 무용수 재활을 위해 고안된 자이로토닉을 빼놓지 않는다. 인터뷰 노트를 접은 뒤 그가 말했다. “난 타고난 신체조건이 좋은 무용수가 아니다. 고쳐나갈 부분이 많으니까 오히려 욕심이 난다. 내 자신과의 싸움이다”. 당찬 발레리나 이용정의 힘찬 도약이 예견됐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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