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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면을 훔치는' 배우 김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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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면을 훔치는' 배우 김대명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6.08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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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신 스틸러(Scene Stealer). ‘장면을 훔치는 사람’인 이 말은 영화, 드라마 등에서 훌륭한 연기력이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해서 주연 이상으로 주목받는 조역을 의미한다. 연극과 뮤지컬을 통해 연기력을 연마한 배우들이 드라마, 영화로 속속 유입되는 추세에서 신 스틸러의 등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작품 속 연기파 배우들 층이 두터워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최근들어 낯선 얼굴의 신 스틸러가 관객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흥행작 ‘역린’ ‘방황하는 칼날’ ‘표적’에 연달아 출연한 배우 김대명(34). 평범하고 넉넉한 동네 주민 외모인데 목소리 톤은 얇고 높은 독특한 조합의 남자를 5월의 끝자락, 광화문의 한 노천카페에서 마주했다.

◆ 올 상반기 ‘방황하는 칼날’ ‘역린’ ‘표적’ 연이어 출연, 스크린 압도

“세 작품의 캐릭터 색깔이 너무 달랐다. 모두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다. 이야기 중간에 (뭔가를)해줘야하는 역할이다. 그러려면 제대로 연기해야 한다. ‘신 스틸러가 되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영화 전체적으로 거스르지 않게, 튀지 않게 만들려고 했다. 조화가 가장 중요한 거니까.”

'방황하는 칼날'에서는 불법 동영상 유통업자이자 성매매를 알선하는 양태섭으로 출연했다. 무참하게 딸을 잃고 살인자가 된 상현(정재영)과 허름한 사무실에서 격돌했다. 분노에 가득찬 상현이 “쓰레기”라고 말하자마자 능구렁이 같던 모습을 일순 거두고 살기를 품은채 달려드는 모습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뒤이어 4월 30일 동시 개봉한 ‘역린’에서는 정조의 반대 세력에 서 암살음모를 꾸미는 궁중 호위청 무관 강용휘 역으로, ‘표적’에서는 여훈(류승룡)과 태준(이진욱)을 쫓는 어리바리한 강력계 형사 규호로 등장했다.

▲ '방황하는 칼날' '표적' '역린'(사진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태섭은 그야말로 악역이고, 실존 인물인 강용휘는 수양딸마저 야심을 채우기 위해 궁의 나인으로 보내는 인물이다. 목적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한 캐릭터다. 흔히 보는 사극에서의 악역이 아니라 흥미로웠다. 규호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출연하며 자기 위치를 지키는 역할이라 수위를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다.”

김대명을 주목하는 이유는 말투부터 표정, 손짓 하나까지도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 생활연기를 구현하기 때문이다. ‘역린’에서는 전형적인 사극 말투에서 벗어난 대사체로 눈길을 끌었다. ‘표적’의 경우 류승룡과 펼친 병원 복도에서의 침대 액션신은 ‘각’과 ‘합’의 액션연기가 아니라 빈틈 많고 자연스러운 연기력을 한 순간에 보여준 대목이다. 숨 막히게 펼쳐지는 추격전 가운데 관객에게 숨 쉴 틈을 만들어주고 싶었다던 그의 전략이 제대로 통한 장면이기도 하다.

“세 작품 모두 시나리오와 다르게 해석해 보려고 노력했다. 감독님과 논의하며 제안을 하면 대부분 받아들여주셨다. 배우인 내게 여지와 공간을 주셔서 감사한다.”

 

지난해 개봉작인 하정우 주연의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얼굴은 드러내지 않은 채 목소리로만 등장했다. 나이와 성격을 가늠하기 힘든 모호한 목소리 연기로 폭탄 테러범 박노규의 디테일한 심리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캐릭터 자체를 악역으로 접근하진 않는다. 태초에 악인은 없지 않나.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인물의 성격에 주목한다. 그렇게 하질 않으면 ‘강렬하게 악역을 만들어내야지’ 하는 욕심만 커져간다. 그리고나선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라 이유들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양태섭이 입은 의상의 경우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 사는 남자이므로 편하고 때 타지 않는 후리스 소재에 성인 손님을 주로 만나므로 티셔츠가 아닌 남방으로 설정하고 준비했다.”

줄곧 주인공을 떠받쳐주는 조연으로, 극의 감초로 살아가고 있다. 1등만을 기억하는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배우 김대명에게 아쉬움은 없을까. 간결한 답변이 돌아왔다. “조연이라기 보다는 구성원으로 생각한다. 작가와 감독이 필요해서 넣은 역할이니 해야 하는 롤(Role)이 있다고 여긴다.”

◆ 시인 꿈꾸던 소년 배우되다...성대 졸업 후 연극·뮤지컬에서 연기력 연마

소년은 시인을 꿈꿨다. 시와 소설, 교과서를 탐독했다. 그러다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본 뒤 배우로 과녁을 바꿨다. 정형화되지 않은 감정을 만들어내는 작업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출신인 그는 2006년 연극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로 데뷔했다. 연극 ‘강풀의 바보’,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어쌔신’ 등 대학로 무대를 지키며 연기력을 벼려왔다. 그가 영화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작품은 2012년 영화 ‘개들의 전쟁’이다. 대학 동창인 김무열과 함께 출연한 이 작품에서 시골동네 건달패거리 중 교회 다니는 두창 역을 맛깔스레 살려내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대학에 늦은 나이에 입학했고, 영화 데뷔도 서른둘에 했다. 늦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공연도 적기에 차근차근 해왔다. 무대를 통해 근성과 책임감을 익혔다. 공연은 일단 시작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내야 하니까. 캐릭터 구축에서도 큰 도움을 줬다. 무대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연기를 하고 있기 힘들었을 것 같다. 영화 데뷔 후에는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과분하게 여긴다.”

한때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콤플렉스였다. 무대에 서던 무렵 다른 배우들의 굵직한 목소리를 따라해보기도 했는데 어색했다. 그러자 한 연출가가 “니 목소리는 객석 끝에서도 다 들려. 바꾸려하지 마”라고 일갈했다.

김대명은 “다음엔 내게서 어떤 소리가 나올까, 관객이 궁금해하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풍부한 독서량 덕분인지 그는 사색적이고 분석력이 강하다. 허투루 수용하는 법 없이 꼼꼼히 이유를 따지고 논리 구조를 구축한다.

 

“연기를 할 때 물음표를 띄우고 싶다. 관객으로 하여금 호기심을 느끼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긴다. ‘나와서 무슨 얘길 할까’ 궁금해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일상성을 띈 연기가 가장 어렵다. 연쇄살인범, 악당은 일상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캐릭터라 연기하기에 오히려 편하다. 반면 카페나 편의점 사장, 세탁소 주인처럼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스크린에 그려내는 건 매우 힘들다. 어려운 작업이라 계속 도전하고 싶다.”

[취재후기] 산에 오르고, 혼자 많이 걸어 다니는 걸 즐긴다.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 인터뷰 때도 대답하는 틈틈이 밖에 풍경을 바라보고 행인들을 일별했다. 으레 하는 배우로서 꿈이 뭐냐는 질문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좋은 척 하는 건 쉬운데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정말 힘들다며. 맞다. 좋은 사람이 돼야 좋은 배우가 되는 거겠지. 조용하게 말 많은 김대명, 긴 호흡으로 갈 배우라는 느낌이 왔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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