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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의 경계 탐구하는 이호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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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의 경계 탐구하는 이호인 작가
  • 박미례 객원기자
  • 승인 2014.06.0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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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박미례 객원기자] 5월의 끝자락, 담벼락 위로 푸른 이끼가 무성하게 낀 오래 된 상가건물 안 작업실에서 이호인(34) 작가를 만났다. 단정한 외모와 깍듯한 모습의 이 작가는 인터뷰를 나누는 동안에도 계속 붓을 놓지 않았다. 시인은 시로 말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말 한다고 했다. 그는 좋은 그림으로 말하기 위해 성실함을 체내화한 듯 보였다.

▲ 노인 2012 oil on acrylic board

“우주, 지구, 자연, 사람, 사랑, 생기, 정의, 자유 등 이런 단어(개념)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소 크고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문장으로 바꾸면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나는 누구이며 인생에서 어떠한 것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인지’로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라면 한 번쯤 궁금해 했을, 정답 없는 숙명적인 궁금함이겠죠.”

그는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작업의 모티프로 삼는다. 스스로를 자연과 분리해버린 우리의 모습이 이질적이지만 여전히 인간은 자연의 한 갈래라고 믿으며, 어떻게 살아가는 모습이 이질성으로부터 다시 자연스러움으로 회복하는 일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 방랑자 2011 oil on acrylic board

이 둘 사이의 접점을 표현하려다 보니 자연과 인공이 병치되고, 그것을 관조하는 형태의 도상이 두드러진다. 또한 작가의 그림에선 사생의 풍경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본 것 그대로의 재현이 아닌 감정적 재현으로 옮겨진다. 특히 이호인 작가는 이를 "연민이 느껴지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연민이란 늘 중요한 화두다. 그 단어 안에는 슬픔, 좌절, 안타까움, 불쾌감, 희망 등이 다 포함돼 있다고 한다.

“작업은 작가의 목소리를 담고 있기에 이를 늘 염두에 두긴 하지만 그림 안에서 드러나게 하는 일이 어렵죠. 하지만 제 작업의 정서를 한 문장으로 축약하면 아마도 ‘세상을 대하며 느끼게 되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다른 이에게도 전하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호인 작가

그의 작업실엔 이제 막 절반쯤 그려진 그림들이 여러 점 펼쳐져 있다. 그중 작가가 겨울 제주 한라산 행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미와 노루새끼를 그린 그림이 눈에 밟힌다. 두려운 듯 정면을 응시하는 노루 얼굴과 얼어붙은 설원의 노루 터전 뒤로 등산객들의 줄지어선 행렬이 어리석도록 일사 분란하게 그려져 있다. 주객이 전도된 자연 안에서 공존이 아닌 서늘함이 배어난다. 하얀 여백이 혹독하고 외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제주에 내려간 것은 작업 때문이라기보다 작업보다 더 중요한 제 삶을 위해서였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자연을 늘 그리워하던 저를 위해 1년의 시간을 자연 속에서 머무는데 투자했어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요즘 들어 외국자본에 의한 개발이 급속화되면서 예전의 제주 모습을 많이 잃은 게 아쉽더라고요. 자연 훼손도 심하고요. 참으로 속상한 일입니다.”

▲ 비행기 별 2011 oil on acrylic board

그의 새 작업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기존 작가의 작업들과 달리 대담한 붓질과 우연적인 요소, 과감한 색상이 인상적이다. 과거 개인전 'Surrounded’ '아무도 없는 곳으로'에서 보여줬던 치밀하고 능숙한 붓질을 버리고 더욱 즉흥적이며 감정적인 본인만의 기법을 찾고자 분투하고 있는 모습이다.

재능 있는 그림과 좋은 그림이 다르듯 잘 그리는 재능을 타고난 그가 보고 그리기의 습관성보다 본인만의 직관성을 찾으려 고민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림 안에서 반복과 수정의 과정은 정답이 없기에 늘 헷갈리고 상실감을 가져다주곤 한다. 그럼에도 그림은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유희라고 한다.

“그리기의 즐거움은 너무나 소중하죠. 어려서부터 즐겨하던 것이 그리기와 노래 부르는 일이었는데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없기에 자연스레 미술가의 길을 걷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가끔 노래 부르는 게 더 즐겁기도 하더라고요. 하하.”

▲ 이호인 작가가 작업실에서 캔버스에 붓칠을 하고 있다

작업실에서 그는 삼색 슬리퍼와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채 흘러간 음악에 맞춰 내내 흥얼거린다. 아직도 멜랑콜리하고 오래된 우울한 노래만 고집스레 좋아한다는 이호인 작가. 자신에게는 드라마틱한 사건도 커다란 욕망도 없었다고 말한다. 도시에 있을수록 황폐해지는 느낌이기에 어서 빨리 자연의 한가운데로 찾아가는, 귀농을 원한다고 소박하게 말한다.

다시 작가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자연 앞에 무기력하며 고독한 개인이 작가의 모습처럼 서 있다. 이 풍경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혼돈과 좌절, 이기심으로 가득한 도시가 아닌 평온한 자연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인터뷰 내내 그가 말하던 연민은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껴안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들렸다. 그는 영원토록 자연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을 것 같다며 해맑게 웃어 보였다.

 

■ 이호인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과정 졸업.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 갤러리 현대 윈도우 갤러리, 16번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갤러리 로얄, 하이트 컬렉션, 대안공간 루프 등 다수의 전시와 해외 그룹전에 활발히 참여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이질적인 상황에 관심이 많으며 자신이 바라본 풍경을 관조하고 이를 본인의 정서를 통해 그림으로 표현한다.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으나 언젠가 나무, 바다, 새, 물고기가 곁에 있는 귀농의 삶을 꿈꾸고 있다.

redfootb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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