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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역전' 김인숙, 나이는 숫자에 불과! 60세에 미국 변호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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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역전' 김인숙, 나이는 숫자에 불과! 60세에 미국 변호사 되다
  • 박정근 편집위원
  • 승인 2014.06.1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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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포츠 여행 (17)

[휴스턴=박정근 호서대 교수(인터내셔널스포츠그룹: ISG 대표이사)] 안식년 중 6개월을 해외에 머물기 위해 적절한 곳을 찾던 중 휴스턴에 거주하는 동갑내기 외사촌 여동생(김인숙 씨)이 생각났다. 그는 기꺼이 머물 장소를 제공해줬다.

지난 3월 1일 휴스턴 공항에 도착할 때 동생은 캘리포니아에서 사흘 동안 변호사 시험을 치르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오랜만에 공항에서 만나 안부 인사를 나누며 시험 결과에 관해 물었다. 그는 시험은 나름대로 잘 봤다는 말과 함께 5월 중순경 발표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몇 개월이 흘렀다.

지난달 16일 내가 댈러스에서 일을 보고 휴스턴으로 왔을 때 동생이 변호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60세를 바라보는 그가 어려운 과정을 모두 이겨내고 시험을 통과한 이야기를 기사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60년이란 세월 동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한국에서 20년, 일본에서 16년, 미국 20년을 보냈다.

이로 인해 그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과 미국에서 항상 약자에 속했고 한국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졌다. 그래서 자식들에게는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줘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김인숙 씨(오른쪽에서 3번째)는 변호사 시험 합격 후 가족들과 함께 축하파티를 했다. [사진제공=인터내셔널스포츠그룹(ISG)]

김인숙 씨는 법치 사회인 미국에서 법조인이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치권이든 어떤 분야에 있든 항상 꼭대기에는 변호사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법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까지 온 이상 돌아갈 때가 없었고 밑바닥에 사는 것도 싫었다.

그는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학교에 다녔다. 교육만이 유일하게 자신을 이끌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법대에 욕심이 있었지만 법대에서 공부할 여건이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잠시 공부를 멈춘 그는 막내딸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자신을 위해 시간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7년 전부터 로스쿨 인터넷 수업을 통해 변호사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60세의 나이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는 결실을 보게 됐다.

■ 김인숙 씨와의 일문일답.

- 60세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변호사 공부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는 타이틀이 필요했다. 누구의 엄마나 아내라는 이름보다 김인숙으로 살기 위한 타이틀이 필요했다. 물론 사업가 김인숙이란 명함도 갖고 있지만 사업가는 먹고 살기 위해서는 충분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시쳇말로 폼을 좀 재고 싶었다.

두 번째 이유는 딸들에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주 사는 곳을 옮겨 다니면서 힘든 모습들을 보여줬더니 자식들이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나이에도 변호사에 도전해 합격했으니 딸들도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다.

▲ 김인숙 씨는 로스쿨 졸업식에서 남편 보쿠마 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제공=인터내셔널스포츠그룹(ISG)]

- 변호사 시험을 위해 얼마나 준비했나?

▲ 7년 정도 책을 봤던 것 같다. 처음에는 휴스턴대를 포함해 몇몇 대학 로스쿨에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로스쿨이 변호사 양성소라기보다 정치가를 양성하는 곳에 가깝다. 정계에 입문할 의사가 없으면 로스쿨에 지원하지 말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로스쿨에 전념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수업하는 로스쿨을 선택했다. 내가 입학한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학교는 설립한 지 11년밖에 안 됐고 인터넷으로만 수업을 진행했다. 4년 동안 인터넷만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운이 좋았다.

- 왜 캘리포니아주에서 시험을 치렀나?

▲ 단순하게 생각해서 캘리포니아에 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캘리포니아에서 시험을 봤다. 변호사 시험은 49개 주에서 2월이나 7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일제히 치러진다. 하지만 시험 날짜는 주마다 다르다. 뉴욕은 2일 동안 시험을 치르고, 캘리포니아는 3일간 시험을 본다. 49개 주에서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시험이 제일 어려운 편이다. 왜냐하면 시험과목이 가장 많고 난이도가 어려운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이유는 캘리포니아주가 인터넷으로 수업하는 로스쿨을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 원래 인터넷 로스쿨은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 사실 미국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 ABA)에서는 인터넷으로 수업하는 로스쿨을 인가해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버드 법대 등록금이 10만 달러, 휴스턴대 5만 달러 등 등록금이 굉장히 비싸다. 그런데 등록금이 싼 인터넷 로스쿨을 인정하면 기존 로스쿨과의 형평성이 깨진다고 보기 때문에 인터넷 로스쿨을 인정하는 캘리포니아주는 시험의 난이도를 어렵게 해 합격자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 지금은 위스콘신주도 인정하고 있다.

- 매년 변호사 시험에 몇 명 정도 합격하나?

▲ 첫 번째 관문은 로스쿨 1학년 때 시험이다. 이것을 통과하지 못하면 안 된다. 보통 민법과 형법, 상법 3과목을 평가하는 데 미국변호사협회(ABA)로부터 인정받은 로스쿨은 자체에서 시험을 본다. 법대 입학하면 1년 후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간다. 물론 적성이 맞지 않아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클래스의 40명 중 5명만 합격했다. 전체 동기생 400명 중 50명 정도만 살아남았다. 그중에서 졸업시험까지 치른 사람이 30명에 불과하고 최종합격자는 7명뿐이었다. 캘리포니아 합격률은 평균 45%정도다.

올해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에서 2000명이 합격했다.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다른 주에서 공부했던 학생들도 캘리포니아에서 합격해야 해서 변호사 시험에 다른 주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많은 편이다. 다른 지역의 변호사들도 525명 중 절반 정도가 떨어졌다. 내가 운이 좋았다는 것은 시험 범위가 방대해 시험이 어디에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운도 많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 변호사 시험 합격통지서. [사진제공=인터내셔널스포츠그룹(ISG)]

- 합격을 예상했나?

▲ 법률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모두 영어로 되어 있어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펼치자 이해할 수 없는 영어들이 다가왔다. 도저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포기하고 두 달 후에 책을 팔자라고 결심했다. 꿈에 외할머니가 나타나 ‘너는 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다시 하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4년간 열심히 준비했다. 시험 보는 날 마감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답은 잘 썼지만 이렇게 쉽게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안 될 줄 알았다.

- 합격을 확인했을 때 기분은 어땠나?

▲ 인터넷 수업으로 로스쿨 졸업하자마자 한 번에 변호사 시험 합격해 믿을 수가 없었다.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 있었는데 정신이 멍해지면서 정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것인지 믿어지지 않았고 해석을 잘못했나 의심이 들어 딸에게 전화해 문장을 읽어줬다. 그랬더니 딸이 합격했다고 말해줬고 환호성을 질렀다. 대부분 학생들은 대학교수이고 석·박사 학위가 몇 개씩 있는 사람들이다. 나같이 학사 학위만 가진 사람은 거의 처음일 것이다.

- 변호사 김인숙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들을 찾겠다는 것이다. 주로 중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 그것이 나라 간의 일이든지, 개인, 회사 등 어떤 분야일지 몰라도 제3자의 입장에서 합의점을 찾아주겠다. 또한 돈 없는 사람과 힘없는 여자들을 대변해 주고 싶다.

- 한국과 관계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지?

▲ 한국 사람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한국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 한국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고국을 찾아 그들을 위로하고 싶다. 또 한국 로스쿨에서 미국 변호사 시험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면 내 경험을 바탕으로 도와주고 싶다.

- 젊은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

▲ 사람은 꿈이 가장 중요하다. 꿈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 인생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누구를 탓해서는 안 된다. 어린 나이에 재일교포와 결혼해 이혼한 아픈 경험이 있었지만 이를 잘 극복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힘들고 어려워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기사를 접하는 데 이들에게 가능하면 해외에 나가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라고 권하고 싶다.

▲ 변호사가 된 김인숙 씨를 축하하기 위해 선물한 팬. [사진제공=인터내셔널스포츠그룹(ISG)]

■ 감사의 의미를 담아 선물한 펜

김 변호사의 어린 시절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의 합격소식을 듣고 매우 기뻤다. 3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꿋꿋하게 살아온 여걸인 그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하다가 펜을 골랐다. 변호사가 되면 사인할 일이 많이 생기니까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펜을 주문 제작해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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