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Q스페셜] '일요 빙신(氷神)' 찾는 서울스피드스케이팅클럽, 이상화-박승희와 동반질주 즐거움 아시나요?

창단 20주년 맞는 동호인 빙상클럽 최강...일요일 3시간씩 훈련, 동계체전 출전-입상으로 성취감도

2016-03-11     박상현 기자

[200자 Tip!] 한국 빙상 역사는 무려 90년이나 된다. 동계스포츠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최초로 스케이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1926년 백구구락부라는 동호인클럽 생겨나면서부터다. 한국 스포츠동호인클럽의 선구자 격이다. 또 1948년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을 통해 태극기를 달고 출전한 한국 최초의 올림피언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였다. 지금도 스피드스케이팅을 통해 빙판을 힘차게 활주하고 구슬땀을 흘리며 건강을 지키는 동호인들이 적지 않다.

[태릉=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제97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일반부 500m 경기가 벌어진 지난달 2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는 해외 훈련을 단축한채 귀국해 신생팀의 동계체전 데뷔전을 이끈 '빙속여제' 이상화(27·강릉 스포츠토토)가 시선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탈의실 앞 공간에는 돗자리를 깔아놓고 간식거리를 먹으며 몸을 푸는 스케이터들도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전문 선수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의 얼굴에는 초조함이나 긴장감 같은 것은 없었다. 동계체전에 출전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밝은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이들은 일요일마다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훈련하고 있는 서울스피드스케이팅클럽 소속 동호인들이었다.

그로부터 한달여가 흘렀다. 아직 월드컵 대회 일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2015~2016 시즌 스피드스케이팅도 어느새 마무리가 됐다. 그러나 서울스피드스케이팅클럽 동호인들은 사시사철 스케이트를 탄다. 일요일이면 스피드스케이팅을 통해 건강을 지키고 친목도 도모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 국가대표 이상화-박승희와 당당히 경쟁, 우리는 동호인 선수들이다

전국체전이라고 하면 전문 선수가 출전하는 대회로 생각하지만 동계체전은 하계 종목에 비해 워낙 등록 선수가 적다. 이 때문에 동호인 선수들도 시도 대표로 뽑히기만 하면 동계체전에 출전할 수 있다. 이상화처럼 전문 선수에게 동계체전은 실전이지만 동호인들은 다르다.

건강을 위해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에게 대회는 하나의 축제다. 동계체전은 전문 선수들과 함께 경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출전 선수가 적다보니 동호인 선수들도 동계체전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여자 500m의 경우 이상화와 김유림(26·의정부시청) 등을 제외한 나머지 세 선수 박희원(38), 문소란(41), 송종하(42)씨 등은 서울스피드스케이팅클럽 소속이었다. 동메달의 영광은 56초41을 기록한 입문 4년차에 들어선 박희원 씨에게 돌아갔다. 박 씨는 박승희(24·강릉 스포츠토토), 윤지원(25·동두천시청)과 함께 경쟁을 벌인 여자 1500m에서도 동메달을 따냈다.

"자전거를 오랫동안 탔는데 지인이 자전거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쓰는 근육이 같으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해줘 입문했죠. 2012년 5월에 처음 타기 시작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스케이트화를 처음 봤을 정도로 문외한이었어요. 이듬해 2월 처음으로 동계체전에 나갔어요. 그때 처음으로 이상화 선수를 만났는데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뛴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됐어요. 처음 동계체전에 나갔을 때는 코너링이 안되어서 기록이 좋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금 타는 편'이 됐어요." (박희원 씨)

또 여자 1000m에서는 서울스피드스케이팅클럽의 김미자(52)씨가 2분8초00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따냈다. 50대의 김미자 씨는 1000m뿐 아니라 1500m에서도 박승희와 나란히 레이스를 펼쳤다.

이밖에도 여자 3000m에서는 송종하 씨가 동메달을 따냈으며 박희원, 송종하, 김미자 씨가 함께 출전한 6주 팀추월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6주 팀추월은 경기선발과 서울스피드스케이팅클럽 선수들로 구성된 서울선발 등 단 두 팀밖에 출전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메달을 따냈지만 이들에게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다.

여자 동호인 선수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서울 선발 남자 선수들 역시 서울스피드스케이팅클럽과 아이스러너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최형만(39), 정학재(47), 이주형(42), 우승호(40), 엄부남(53) 씨 등이 당당하게 동계체전에 출전했다. 남자 일반부는 출전 선수들이 여자 일반부보다 많아 메달을 따내지는 못했지만 참가 자체에 큰 의미를 뒀다.

◆ 스피드스케이팅 매력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죠

그래도 하나 아쉬운 것은 동계체전에 동호인부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이상화, 박승희와 함께 경쟁을 펼치는 것은 분명 신나는 기회이긴 하지만 동호인 선수들이 국가대표를 이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등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호인들끼리 경쟁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동계체전에서 펼쳐지길 바라고 있다.

전문 선수와 같은 경기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하나의 축제인 전국동계체전은 끝났지만 이들의 도전은 끝이 없다. 1월마다 열리는 회장배 전국남녀스피드스케이팅대회에는 동호인부가 따로 있다. 동계체전에는 없는 동호인부가 전국대회에는 따로 있기 때문에 클럽 동호인들끼리 실력을 겨루고 등수를 매길 수 있다.

또 국민생활체육전국빙상연합회 주최로 열리는 국민생활체육 전국빙상대회가 7, 8월이면 열리고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대회 역시 9월마다 벌어진다. 전문 선수들이 한참 체력훈련에 열중하며 시즌을 준비할 때도 동호인들은 대회에 나가는 즐거움이 있다.

현재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는 서울스피드스케이팅클럽을 비롯해 백구스케이팅클럽, 아이스러너, 위두 등 스피드케이팅을 즐기는 생활체육 클럽들이 매주 일요일 모여 신나게 빙판을 지친다. 서울스피드스케이팅클럽은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훈련하는 클럽 가운데 '터줏대감' 격이다.

1996년 창단해 올해로 20년째를 맞은 서울스피드스케이팅클럽은 2006년부터 올해까지 회장배 전국남녀 빙상경기대회 동호인부에서 2015년을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동호인 클럽 가운데 최강 전력을 자랑한다.

"누구나 인터넷 홈페이지나 직접 태릉으로 와서 가입할 수 있어요. 물론 장비 구입비에 대한 적지 않은 부담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다른 취미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래서 입문하는 분들은 스케이트화를 중고로 산 다음에 조금 타겠다 싶으면 새 것으로 사곤 하죠. 동호회 분위기는 너무 좋아요. 매주 일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분들도 많아요. 저도 아들을 데리고 왔었는데 스케이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요즘은 안오겠다고 하더라고요." (박희원 씨)

"저는 지난해 시작해서 이제 1년 조금 넘었어요. 저는 인라인을 타다가 지인 소개로 스케이팅을 함께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아 시작하게 됐어요. 이번에 동계체전 처음 출전했는데 이상화 선수를 보니까 신기하더라고요. 함께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재미있는 경험이죠. 하지만 스피드스케이팅은 끈기가 필요해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지만 '어느정도 하면 되겠지'하면 매력에 빠질 수 없어요. 끈기를 갖고 해야만 재미를 느낄 수 있죠." (문소란 씨)

◆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피드스케이팅, '빙신'을 믿습니까?

이들이 전문 선수였다가 생활체육으로 돌아선 것도 아니다. 모두 우연치 않게 스피드스케이팅 매력에 푹 빠져 서울스피드스케이팅클럽에 가입한 경우다. 홈페이지(www.seoulssc.com)를 통해 회원 가입 신청을 받고 있으며 매주 일요일 오전 9시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을 찾아 입회비만 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훈련은 일요일마다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된다.

"우리에겐 스피드스케이팅이 종교나 같아요. 그래서 농담 삼아서 '우리는 빙신(氷神)을 믿는다'고 하죠. 그만큼 스피드스케이팅에 흠뻑 빠지면 오히려 일요일에 클럽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가 돼요. 요즘 건강 생각들 많이 하잖아요. 함께 스피드스케이팅을 즐기면서 땀도 흘리고 건강도 지킬 수 있으니 일석이조죠. 또 서울시 대표로 동계체전에 나간다고 하면 주위에서 '얼마나 잘 타길래 그렇게 큰 대회에 나가냐. 얼마나 잘해서 이상화 같은 선수들과 경쟁하느냐'고 많이 놀라하죠. 그래서 기록 같은 것은 일부러 얘기하지 않죠. 그래도 동메달을 따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잖아요." (박희원 씨)

보통 생활체육을 시작하려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이가 많은데도 할 수 있느냐는 얘기도 있고,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20, 30대 젊은이들도 클럽 가입을 하지만 '생업'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스피드스케이팅에 빠지면 이런 이유들은 한낱 핑계에 불과하다고 한다. 서울스피드스케이팅클럽에는 50대 스케이터들과 바쁜 가사활동을 하는 주부들도 링크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서울스피드스케이팅클럽 같은 동호인 클럽이 사실상 한국 빙상을 이끌어가는 주역이라고 봐도 좋다. 동계스포츠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스케이트를 탔던 것도 백구클럽이 탄생한 1926년부터"라며 "당시 다른 종목 선수들도 스케이트를 타기 위해 백구클럽에 모였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백구클럽이 주축이 돼 대한체육회가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동호인 클럽이 한국 빙상 역사에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미 겨울은 지났지만 스피드스케이팅은 실내스포츠로서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됐다. 그렇기에 '겨울되면 타볼까'하는 생각은 옳지 않다. 만약 스피드스케이팅을 당장이라도 시작하고 싶으면 돌아오는 주말에라도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을 찾으면 된다. 가입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봄이면 어떻고 여름이면 어떠리.

[취재후기] 기자는 어렸을 때 스케이트광(狂)이었다. 겨울이면 동네 공터에 있는 스케이트장을 찾아 뜨끈한 어묵국물 연기가 피어오르는 비닐하우스에서 스케이트를 갈아신고 신나게 얼음을 지치곤 했다. 동네 공터 스케이트장은 사라졌지만 서울시청앞이나 서울 올림픽공원 광장, 지방 도시 하천 둔치 등에는 겨울만 되면 실외링크가 만들어진다. 그만큼 스케이팅은 모든 국민이 즐기는 대중 스포츠다. 스케이팅 클럽에 들어가면 매주 사시사철 스케이트를 타며 구슬땀을 흘릴 수 있다. 대회에 나가 성취감을 맛보는 것은 행복한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