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문의 '독한 야구' 90일, LG를 180도 바꾸다

순리대로 가되 때로는 파격 단행, 감독 첫 4강 눈앞

2014-08-08     이세영 기자

[스포츠Q 이세영 기자]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더니 어느새 4강을 노릴만한 위치가 됐다.

양상문(53) LG 감독이 3개월 만에 패배의식에 젖었던 팀을 완전히 바꿔놓으며 LG의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재현할 채비를 갖췄다.

지난 5월 12일 감독에 임명된 뒤 이튿날 잠실구장에서 취임식을 하고 LG 지휘봉을 잡은 양 감독은 2010시즌 롯데 투수코치를 끝으로 현장에서 물러난 이후 4년 만에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했다.

이 자리에서 양상문 감독은 “멀지만 천천히 가겠다. 당장 선수단 분위기를 추슬러야겠지만 지금부터 색깔을 보여주겠다. 개인적으로 추구하고 싶은 야구는 깨끗한 야구, 점수차와 상관없이 이기든 지든 독하게 하는 야구다”라고 밝혔다.

이 약속은 90일 가까이 지켜지고 있다. 꾸준히 승수를 쌓아 나간 LG는 꼴찌에서 5위까지 올라가며 4강 싸움에 불을 붙였다. 감독으로서 맞는 첫 포스트시즌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 '약속왕' 양상문, 천천히 가니 어느새 4강권

양상문 감독이 데뷔전을 치르기 직전 LG의 시즌 전적은 10승23패1무. 9개 구단 중 최하위였으며 8위 한화에도 3경기차로 뒤져 있었다.

당시 선수단 분위기는 지난 4월 20일 대전 한화전에서 발생했던 빈볼 사건과 사흘 뒤 김기태 감독의 자진 사퇴로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갈 길이 멀었지만 양상문 감독은 순리대로 갔다. 지난해 ‘승리의 아이콘’으로 등극하며 12승을 거뒀던 류제국이 시즌 초반 부진을 겪을 때도 그를 선발진에서 빼지 않으며 믿음을 심어줬다.

또 선발진의 간격을 5~6일 간격으로 조정한 양 감독은 화요일 등판 후 그 주 일요일 다시 마운드에 올리는 것을 지양했다.

부상 선수들도 완전한 몸 상태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올해 맏형 이병규(9번)와 지난해 주전 포수 윤요섭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을 때 무리하게 1군에 올리지 않은 양 감독은 최근 오지환과 브래드 스나이더가 부상을 당했을 때도 충분한 휴식을 주거나 대타로만 출장시키며 숨고르기를 했다.

100% 전력으로 시즌을 치르지 못했지만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취임식에서 ‘멀지만 천천히 가겠다’던 약속을 지킨 양 감독이다.

◆ 최경철-채은성-황목치승, 양상문 황태자로 '우뚝'

취임식 당시 ‘포수 트레이드는 없다’고 못 박았던 양상문 감독은 있는 자원을 최대한 육성하며 시즌을 운영했다.

그 결과 윤요섭이 부상으로 이탈해 선발 마스크를 쓴 최경철이 일취월장했다. 양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5월 13일 잠실 롯데전에서 결승 솔로 홈런을 터뜨렸던 최경철은 노련한 투수 리드와 뛰어난 도루 저지 능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후에도 결정적일 때 홈런을 치거나 상대 주자를 잡아내는 등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친 최경철은 LG의 주전 안방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양상문 감독도 적지 않은 나이에 1군에서 꽃을 피운 최경철에게 ‘무한 칭찬’으로 응답하며 기를 살려주고 있다.

또 양상문 감독은 취임식에서 “2군에 대한 파악을 하겠다. 보통 2군 선수들은 1군에 비해 처져 있다는 생각을 하기 쉬운데, 2군 경기장을 찾으면 선수들도 1군 감독이 왔기 때문에 나름대로 신경 쓸 것이다. 더불어 1군 진입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고 밝혔다.

지난 2009년 신고선수로 LG에 입단한 이후 올해 5월 27일 삼성전을 통해 데뷔전을 치렀던 채은성은 양상문 감독이 키운 2군 출신 선수다.

채은성은 1군 데뷔 첫 경기였던 삼성전에서 프로 첫 안타를 뽑아내 눈길을 끌었다. 양 감독도 채은성이 기특했는지 “대(大) 선수가 되라”라는 글귀를 공에 새겼다.

이후 채은성은 과거 2군에서 보여줬던 실력을 1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6월까지 타율 0.324, 1홈런, 9타점, 4도루로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쳤던 채은성은 7월 들어 잠시 주춤했지만 8일 현재 타율 0.325를 기록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름부터 특이한 황목치승의 성장세도 눈부시다. 이미 수비력에서는 정평이 나 있었던 황목치승은 공격에서도 주전 유격수 오지환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우며 타율 0.375, 3타점, 2도루를 기록 중이다.

특히 지난 4일 잠실 넥센전에서 팀의 위닝시리즈를 이끄는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낸 황목치승은 경기 최우수선수(MVP)에도 선정돼 눈길을 끌었다. 향후 오지환과 주전 경쟁이 흥미롭게 펼쳐질 전망이다.

◆ '포기'는 배추 세는 단위, 독하게 바뀐 LG

포기란 없었다. LG는 양상문 감독 부임 이후 승부 앞에서 독해졌다.

LG는 지난 7일 마산 NC전에서 5회까지 1-6으로 뒤졌지만 6회부터 8회까지 8점을 뽑아내며 9-8로 역전,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LG는 지난달 26일 잠실 롯데전부터 거둔 6승을 모두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역전하는 과정도 극적이었다. 1-6으로 뒤진 6회초 손주인의 좌월 스리런 홈런으로 단숨에 턱 끝까지 추격한 LG는 7회 이병규(7번)의 투런포로 전세를 뒤집더니 8회 상대 실책과 연속 적시타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그동안 ‘추격은 하되 역전하지는 않는다’는 조롱에 시달렸던 LG는 양상문 체제 하에서 놀라운 뒷심을 발휘하며 ‘끝까지 마음 놓을 수 없는 팀’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LG는 그 어느 팀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팀이 됐다. 4위 롯데에 2.5경기차 뒤진 5위에 올라 있는 LG는 포스트시즌 진출을 충분히 노릴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왔다.

◆ 내야 포지션 파괴, '신의 한 수' 되다

파격적인 포지션 운영도 돋보인다. 양상문 감독은 주전 3루수였던 정성훈이 1루로 옮김에 따라 김용의, 백창수 등에게 3루를 맡겼지만 이들은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지 못했다.

이에 2루를 보던 손주인을 지난달 26일 롯데전부터 3루로 옮기는 강수를 뒀고, 손주인은 이에 열렬히 화답했다.

지난달 30일 대구 삼성전에서 9회초 역전 홈런포로 임창용에게 블론세이브를 안겼던 손주인은 7일 NC전에서는 추격의 3점포를 터뜨렸다.

또 6회말 무사 1, 2루 상황에서는 김태군의 희생번트 타구를 전진수비로 잡은 뒤 곧바로 3루에 송구, 보기 드문 5-6-4 더블플레이를 선보였다.

분명 위험성이 있었지만 회심의 한 수가 적중했다. 양상문 감독의 포지션 파괴가 수비 조직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syl015@sportsq.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