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Q포커스] 김진희 한지현 김미연, 프로배구 여자부 '흙수저 전성시대'

아픈 사연 딛고 주전으로 도약…'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메시지

2017-01-20     이세영 기자

[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빈부격차가 심해진 한국사회에서 ‘금수저’의 반대말로 ‘흙수저’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돈 없고 백 없으면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

하지만 프로배구에서는 다르다. 비록 출발은 좋지 않았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주전 자리를 꿰찬 선수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김진희(24‧대전 KGC인삼공사)와 한지현(23‧인천 흥국생명), 그리고 김미연(24‧화성 IBK기업은행). 이들은 각각 하위지명, 이적의 설움을 이겨내고 당당히 주전으로 도약했다. 과거에는 코트 밖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기다리던 엑스트라였다면, 지금은 코트에서 빛나는 주연으로 꽃길을 걷고 있다.

◆ '악바리' 김진희, KGC인삼공사 제2 공격옵션이 되다

김진희는 수원 현대건설에서 프로배구 데뷔를 했다. 2011~2012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었다. 출발은 흙수저가 아닌 금수저였다.

하지만 김진희는 이내 시련의 시간을 보냈다. 현대건설 날개 공격의 선수층이 두껍다보니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김진희는 첫 시즌을 제외하고 대부분 교체로 출전했다. 서브에 강점이 있었지만 현대건설은 김진희가 김주하, 박슬기, 한유미, 정미선, 황연주 등 쟁쟁한 선수들을 제칠 정도의 실력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한 김진희는 결국 2015년 KGC로 이적됐지만 여기서도 역할은 백업이었다. 백목화, 이연주가 왼쪽 공격수로 뛰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이번 시즌 들어 김진희의 입지가 생겼다. 백목화, 이연주가 팀을 떠났고 사령탑도 서남원 감독으로 바뀌면서 팀 구성이 변했다. 비록 초반에는 장영은, 지민경이 레프트를 맡으면서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지만 김진희는 4라운드 들어 계속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GS칼텍스전에서 14점을 올린 그는 이후 11득점, 14득점, 15득점을 각각 기록하며 KGC의 확실한 주전 레프트로 부상했다. 15점을 뽑은 19일 현대건설전에서는 공격점유율이 25%까지 올랐다. 외국인 선수 알레나 다음으로 높은 비율이다.

배구에 대한 간절함이 김진희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19일 현대건설전 승리를 이끈 김진희는 “감독님이 근성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셨다. 악바리 근성을 살려서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동료들이 블로킹에 막히더라도 자신 있게 때리라고 이야기해준다. 그 마음이 정말 고맙다”고 웃어보였다.

서남원 감독도 “(김)진희는 공격적인 게 장점이다. 악바리 근성으로 기죽지 않고 배구하는 모습이 맘에 든다. 아무리 블로킹이 높아도 자신 있게 때린다. 서브도 자신의 리듬을 찾아 과감히 넣는 면이 좋다. 최근 내 기대치보다 잘해주고 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 '흥국생명 선두 동력' 한지현, 수련선수 설움 벗고 주전으로 도약

한지현은 흥국생명의 불안요소로 지적됐던 리베로 자리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올 시즌 한지현은 세트 당 2.587개(6위)의 리시브와 5.73개(4위)의 디그, 8.317개(1위)의 수비를 기록하며 탄탄한 방어력을 보이고 있다. 수비라인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전반기 흥국생명 선두의 숨은 공로자라 할만하다. 애초 한지현은 백업 요원이었지만 이젠 어엿한 주전이다.

물론 리그에 김해란(KGC인삼공사), 남지연(IBK기업은행), 임명옥(김천 한국도로공사), 나현정(GS칼텍스) 등 수준급 리베로가 많아 상대적으로 약해보이기도 하지만 한지현은 부단한 노력으로 서서히 물음표를 지워나가고 있다.

지금은 1위 팀의 주전으로 도약했지만 한지현이 프로에 들어오기까지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2012~2013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지 못했던 한지현은 한 달 뒤인 2012년 12월 수련선수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으면서 극적인 프로행을 확정지었다. 이후 한동안 슬럼프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한지현은 박미희 감독의 격려와 동료들의 지지에 힘입어 일취월장했다.

한지현은 “수련선수라는 열등감으로 자기 자신을 낮추지 않았으면 한다. 열심히 훈련해서 실력으로 인정받으면 좋겠다”고 수련선수로 꿈을 키우는 후배들에게 따뜻한 메시지를 던졌다.

◆ 트레이드가 '신의 한수', IBK 삼각편대 든든히 떠받치는 김미연의 힘

김미연도 프로에 입단했을 때는 그리 주목받은 선수는 아니었다.

김미연은 2011년 3라운드로 도로공사에 입단했다. 같은 팀 곽유화, 문정원보다 지명 순위에서 밀렸다. 그는 당시 왼쪽 공격수 자원이 풍부했던 도로공사에서 확실하게 치고 올라오지 못했다.

그렇게 아쉬운 시간을 보낸 김미연은 트레이드로 새로운 배구인생을 맞이했다. 세터 이고은과 함께 IBK기업은행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것. 이곳에서 수비형 레프트 임무를 맡게 된 김미연은 서브 3위(세트 당 0.264개), 리시브 8위(세트 당 1.847개)에 오르며 제 몫을 해주고 있다. 공격점유율도 10%대까지 끌어올리며 존재감을 뽐내는 중이다.

김미연이 리시브에서 안정감을 보여준다면 또 다른 ‘윙 리베로’ 채선아의 리베로 전향 시기가 앞당겨짐은 물론, 삼각편대의 공격력도 극대화될 수 있다. 이는 팀 내에서 김미연의 비중이 낮지 않음을 의미한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이 있다. 김진희와 한지현, 김미연 모두 프로 데뷔 초기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남다른 노력으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이들의 ‘3색 성공기’는 아직은 프로에서 미생인 후배 선수들에게 작은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