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Q진단] WBC '고척 참사'에는 또 다른 이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와의 상관관계

제4회 WBC 실패로 돌아본 한국야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中)

2017-03-13     민기홍 기자

[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고척 대참사’는 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와 무관하지 않다?

국내 야구팬에게 충격을 전한 이번 ‘WBC 악몽’을 두고 전문가 사이에선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분석과 진단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 가운데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와 그에 따른 ‘월드컵 키즈’ 열기로 인해 야구시장에 어린 인재들이 몰리지 않았고 원활한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못해 위기에 처했다는 현장 목소리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2014, 2016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 2회 연속 한국 코치로 참가한 황상훈 서대문구 리틀야구단 감독은 “2002년에는 서울시의 각 구가 구립 축구팀을 대거 창단시켰다. 회비는 싸고 모집은 수월하니 축구붐이 일었다”며 “자연스레 야구가 처졌던 시기”라고 귀띔했다.

야구든 축구든 입문 시기는 대개 초등학교 3,4학년 때로 같다. 체육에 재능을 보인 어린이와 부모들이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보고 야구보다는 축구를 택했다는 것. 골프의 ‘세리 키즈’, 피겨스케이팅의 ‘연아 키즈’처럼 그 시대 분위기가 ‘2002 키즈’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이번 WBC 대표팀에 1990년대 생은 투수 심창민(삼성, 1993), 야수 김하성(넥센, 1995) 박건우 허경민(이상 두산, 1990)까지 단 넷에 불과했다. 30대 중반인 1982년생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이 마운드의, 이대호(롯데) 김태균(한화)이 타선의 핵이었다는 게 1라운드 탈락보다 더 씁쓸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성인 축구 대표팀과 비교해보면 야구대표팀의 세대교체가 얼마나 느린지 알 수 있다. 1991년생 석현준 지동원 이정협 장현수 남태희 지소연(여자), 1992년생 손흥민 김진수 이재성 김민혁 황의조 윤일록 서현숙(여자) 등은 A매치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KBO리그(프로야구)의 1991년생은 박종훈(SK) 심동섭(KIA) 오승택(롯데) 문성현(넥센) 임정우(LG) 김준완(NC) 정대현 고영표 조무근(이상 kt), 1992년생은 임찬규(LG) 서진용(SK) 김호령 오준혁(이상 KIA) 유강남(LG) 강경학(한화) 정도다.

페이스가 올라오지 않아 이번 WBC 대표 팀에서 중도 탈락한 임정우, 릴리스포인트가 극단적으로 낮은 언더핸드 박종훈 정도를 제외하면 태극마크를 달 만한 국제경쟁력을 갖춘 선수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각 구단에서도 붙박이 주전이라 보기 힘든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를 계기로 방망이와 글러브를 쥔 이들의 기량이 낫다며 기대를 거는 눈치다. 지난해 12세 이하 대표 팀을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끈 지희수 수원 영통 리틀야구단 감독은 “당시 선수들이 좋다. 많이 야구를 시작했으니 재능 있는 친구들의 비율도 상대적으로 더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2002 한일 월드컵과 2008 베이징 올림픽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게 곧 한국야구의 과제라는 걸 의미한다. 황상훈 감독은 “현재 덕수고, 서울고, 장충고, 휘문고, 경기고 등 서울권에 시속 145㎞ 이상을 뿌리는 좋은 투수가 한두 명씩은 있다”고 설명했다.

2002 월드컵 열풍이 다소 수그러든 시점부터 야구 인재풀이 한결 나아진 걸 확인할 수 있다. 1993년생 구자욱 심창민(이상 삼성) 박민우 김성욱 이민호(이상 NC) 한현희(넥센), 1994년생 조상우(넥센) 하주석(한화), 1995년생 김하성 임병욱(이상 넥센) 주권(kt) 박세웅(롯데) 등이다.

최동원 김시진 이만수 김성한 김용남의 77학번, 선동열 이순철 정삼흠 박흥식 윤덕규의 81학번, 박찬호 조성민 정민철 박재홍 염종석 송지만의 92학번, 그리고 추신수 이대호 김태균 오승환 정근우 정상호의 1982년생, 류현진 강정호 민병헌 양의지 황재균 차우찬의 1987년생, 김현수 김광현 양현종 손아섭 김민성 이재원 김재환의 1988년생 등등.

한국야구를 이끈 ‘황금세대’의 뒤를 이을 ‘올림픽 키즈’가 프로야구의 주축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이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 나가느냐가 야구인의 과제라는 것이 일선의 목소리다. 더딘 세대교체, 극단적인 타고투저, 투수 부재 등 산적한 현안이 많다.

지희수 감독은 “과거와 달리 아이들 스스로가 적극성이 많이 떨어진다. 몸들도 너무 약해 부상이 잦다”며 “특히 반복적인 훈련을 지루해하곤 한다. 야구선수가 꿈이라면 좋아하는 부분만 해서는 안 된다”고 유소년 선수와 부모들을 향해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했다.

‘고척 참사’로 기로에 선 한국야구, 이제는 스스로를 되돌아볼 시간이다.

 (하) 편으로 이어집니다. [SQ진단] WBC '고척 참사', 참패마다 뒤따르는 땜질처방·장기 플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