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리굽쇠' 조안 "누군가를 도울 때 행복지수 최고"

2014-10-30     용원중 기자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여배우 조안(32)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소리굽쇠’(10월30일 개봉)에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노 개런티로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OST의 노래를 부르고, 엔딩을 장식하는 손편지 캘리그라피까지 담당했다.

배우와 스태프의 재능기부로 탄생한 한·중 합작영화 ‘소리굽쇠’(감독 추상록)는 중국 용강성에 거주하는 귀임(이옥희)의 손녀 향옥(조안)이 할머니를 고향에 모셔오겠다는 꿈을 품고 한국으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향옥은 한국에서 원폭 피해자의 아들 덕수(김민상)와 만나 결혼과 임신을 하지만 조선족 신분으로 인해 차별 받으며 절망의 벼랑 끝으로 몰린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산 할머니의 비극이 향옥에게 대물림되는 아이러니를 조안은 담담하게 연기한다. 지난 28일 서울 가회동의 한옥카페에서 만난 그의 얼굴엔 뜻 깊은 일을 마친 행복감이 가득했다.

# Scene 1. 많은 고민을 했어요. 국민이 관심을 갖는 예민한 사안이고, 좋은 의도였더라도 할머니들의 아픈 상처를 잘못 건드렸다가 혼나기만 하면 어떡하나 부담이 컸어요. 육체적인 면도 고민이 됐어요. ‘정글의 법칙’을 다녀온 지 얼마 안됐던 시기라 힘들었거든요. 저예산 영화인데다 11~12월에 중국 로케이션을 진행한다고 하니 힘든 여정은 불을 보듯 뻔했죠. 노 개런티 출연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어요. 도움이 된다면야 감사한 거죠. 취지가 너무 좋고, 수익금이 나오면 할머니들의 아픔을 알릴 수 있는 데 기부한다고 했으니 참여하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죠.

# Scene 2. 촬영을 준비하며 ‘나눔의 집’을 방문, 할머니들을 만나서 새로운 사실들을 접했어요. 직접 들으면 충격의 강도가 훨씬 세고, 감정 이입이 절로 돼요. 할머니들이 평소엔 온화하시다가 과거 얘기만 나오면 표정이 변하세요. 아직도 힘들고 아프신 거죠. 청춘을 뺏긴 거라 얼마나 안타까우시겠어요. 항상 이런 말씀을 하세요. “똑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 너희들이 똑똑하고 강해져서 우리나라를 잘 이끌어나가야 한다”. 연세 많은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피해 보상은 당연히 이뤄져야 하며, 우리가 똑바로 기억하고 있어야 해요. 역사의 아픔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역사는 그러라고 있는 거잖아요. 저희의 영화 작업이 일조가 됐으면 좋겠어요. 청소년 및 젊은 세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잘 모르는데 진실을 알리는데 보탬이 되고 교육용 자료로 제작, 배포되는데 수익금이 쓰이길 바라요.

# Scene 3. 많은 할머니들을 만난 게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여러 명의 귀임 할머니를 직접 만나는 체험을 한 거니까요. 중국어와 엔벤 사투리는 중국 길림성 연변가무단 국가 1급 배우인 이옥희 선생님이 도와주셨어요. 계속 녹음해서 듣고 말했죠. 또 조선족 스태프에게 틈틈이 물어보고, 같이 출연한 중국 여배우에게 도움을 얻었고요. 해보니 중국어가 매력 있더라고요. 성조가 있어서 매우 어렵고 헷갈리긴 했으나 이번에 조금 맛을 봤으니 제대로 중국어를 공부해보고 싶어요.

# Scene 4. 향옥은 인생이 너무 곡절 많고 불쌍해요. 너무 슬퍼서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참아야 했어요. 이번엔 절제하는 게 관건이었어요. 감정을 누르고,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죠. 초월한 느낌, 처연한 분위기를 내려고 했고요. 덕수에게 일이 생겼을 때 울지 않기로 약속했음에도 감정 조절이 되질 않아 오열이 터져버렸죠. 비를 맞은 채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이 워낙 추운 날씨 속에서 촬영돼 육체적으로 힘들었고요. 또 중국 베이징에서 차로 2시간이나 들어가는 오지에 촬영장이 있었는데 폭설로 멈춰버린 차량을 대신해 스태프들이 장비를 이고지고 산길을 이동하면서 촬영을 강행했어요. 입김을 막기 위해 얼음물을 입에 물고 있기도 했고요.

# Scene 5. 그렇다고 ‘소리굽쇠’가 가장 힘들었던 작품은 아니에요. 영화 ‘킹콩을 들다’ 때는 소리 지르고 우는 장면에 운동(역도)까지 강도 높게 소화해야 했거든요. 어떤 날은 30시간 넘게 운적도 있어요. 나중엔 코로 숨이 쉬어지질 않아 머리가 아프다가 헛구역질이 나오더라고요.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 때는 악역 장채리가 이해되질 않아서 힘들었고요. 하도 못된 짓을 많이 해서 감독님에게 하소연을 했죠. 인물에 대해 이해되질 않으면 일단 눈물이 안나요. 전 상황이 슬퍼야 눈물이 나는데. 그래서 대본에는 없는 뒷이야기를 상상해 일기를 쓰면서 아픔을 지닌 못된 아이로 만들어갔죠. 그러면서 감정에 몰입했어요.


# Scene 6. 그동안 여러 역할을 소화했는데 케이블채널 OCN 드라마 ‘특수사건 전담반 10’의 심리 프로파일러 남예리가 제일 저와 닮았어요. 80% 이상 저였어요. ‘별순검’을 함께 했던 감독님이 저를 염두에 두고 쓰셨대요. 저와 비슷해서 놀랐는데 촬영을 하며 더욱 조안답게 만들어갔죠. 어느 순간부터 촬영 때마다 감독님이 “실제 너라면 어떻게 할래?”라고 물어보곤 했어요. 제가 소심하고 겁이 많아요. “저 사람이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게 있어요. 재미없고 진지한 스타일이라 남을 웃기지 못해서 주눅이 들기도 하고요. 엉뚱하고 혼잣말 하는 면 등을 고스란히 투영했기에 정말 사랑하는 캐릭터예요.

# Scene 7. ‘소리굽쇠’의 제작자부터 소품팀 막내 스태프까지 모두가 재능기부로 참여했기에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촬영장이 늘 훈훈했어요. 곡을 선뜻 내주신 하림 선배님도 고맙고요. 부끄럽지만 기쁜 마음으로 OST 녹음에 참여했어요. 이 영화에 조금이나마 더 손때 묻히는 게 영광이라고 여겼죠. 음악감독님이 노래를 너무 잘 만져주셔서, 디지털이 좋긴 좋아요. 하하. 캘리그라피도 모니터를 보며 써야 해서 글씨가 들쑥날쑥해요. 조금 더 귀엽게 쓸 걸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 Scene 8. 봉사활동을 하면 절로 행복해져요. 언젠가 소속사에서 지급해주는 휴가비를 여행에 쓰는 대신 매니저 오빠의 소개로 알게 된 곳에 기부한 적이 있거든요. 만약 제가 여행을 갔다면 며칠 행복하고 말았을 텐데 좋은 일을 하고나니 행복감은 몇 십배가 되더라고요. 기쁨은 더 오래갔고, 이후 2개월 동안 노래 부르며 방방 뛰어다녔어요. 특히 남몰래 하니까 더 좋았어요. 많이 알려지면 이미 칭찬 다 받은 느낌이거든요. 남들이 모를 땐 하나님께 칭찬받는 기분? 더 많이 나누면서 큰사람이 됐으면 해요. 누군가를 도울 때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고 하잖아요. 내가 요만큼 하면 이만큼 돌아오더라고요. 마음에 평화가 가득해지고.

# Scene 9. 연기가 너무 좋아서 배우를 시작했는데 매번 작품을 주셔서 영광이에요. 상황이 여의치 않거나 내가 추구하는 이야기, 캐릭터가 아닐 땐 못하지만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죽을 때가지 연기하는 게 꿈이었고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죽는 역할하면서 죽었으면 하고요. 소아과 의사인 작은 이모가 생명을 살리는 모습을 보며 난 따뜻한 연기로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상처를 치유해주는 배우가 되자고 했어요. 웃는데 우는 모습이 너무 예쁜 전도연 선배님의 ‘내 마음의 풍금’은 보는 이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잖아요. 꿈을 선사하는 게 배우인데 그 꿈속에서 희망을 선물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런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 열심히 해나가고 있어요.

[취재후기] 조안은 2000년 데뷔 무렵부터 ‘리틀 고소영’으로 주목받았다. 고소영을 닮은 미모인데 4차원 캐릭터라 입길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풍부한 상상력에서 기인한 엉뚱함은 창작소설집 ‘단 한 마디’(2010)를 통해 긍정적으로 발현됐다. 평소 봉사활동에 열심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이번 영화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선명하게 확인한 느낌이다.

goolis@sportsq.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