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Q포커스] 최태웅‧문성민-유재학‧전준범, '코트 위 브로맨스' 어떻게 다른가?

2017-04-10     이세영 기자

[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남남 케미’라는 말로도 불리는 브로맨스는 영화와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다. 최근에는 영화 ‘무뢰한’을 통해 인연을 맺은 배우 박성웅과 김남길이 tvN 예능 프로그램 ‘인생술집’에 함께 출연해 끈끈한 우애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처럼 브로맨스는 연예인들의 전유물일 것 같지만 스포츠에서도 심심찮게 포착되고 있다. 그것도 선수들끼리가 아니라 사제지간으로. 예전과 달리 감독의 나이대가 점점 내려가면서 선수들이 사령탑과 격의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라운드에서 경기하는 야구에서는 김기태 KIA 타이거즈 감독과 투수 헥터 노에시가 대표적인 브로맨스 커플이다. 헥터가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승리를 챙기면 김기태 감독은 그와 사전에 약속된 세리머니(여러 차례 팔을 맞댄 뒤 손가락 하나를 펼쳐 입에 갖다 댄 후 하늘을 향해 올리는 동작)를 펼치며 기쁨을 나눈다.

겨울철 실내를 후끈 달구는 코트에서는 프로배구의 최태웅(41) 천안 현대캐피탈 감독과 문성민(31), 프로농구의 유재학(54) 울산 모비스 감독과 전준범(26)이 ‘브로맨스 듀오’로 꼽힌다. 이들의 브로맨스에는 나름 특별한 사연이 있다.

먼저 팀 선후배 사이였다가 감독-선수 관계가 된 최태웅 감독과 문성민은 이번 시즌 천신만고 끝에 V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팀의 10년만의 우승을 이끎과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한국 프로무대에서 처음으로 패권을 차지한 문성민은 ‘V3’가 확정된 순간 최태웅 감독에게 달려가 그를 힘껏 끌어안고서 펑펑 울었다.

문성민은 “이번 시즌 내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감독님께서 믿음을 주셨다. 팀에서 가장 고생하신 분이 감독님이라 생각해서 안아드렸다”라고 말했다.

5전 3선승제의 챔피언결정전을 치르면서 고비도 있었다. 1차전에서 문성민이 9득점에 그치며 부진했고 경기까지 내주고 만 것. 이 흐름은 2차전까지 계속됐는데, 문성민은 2세트 들어 연이어 인천 대한항공의 블로킹에 공격이 막히자 울분을 삼키며 코트 바닥을 때렸다.

최태웅 감독은 이때를 이번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그는 “그땐 내가 ‘(문)성민이가 해결사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데’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성민이가 자신에게 화를 냈고 그걸 본 나도 속상했다. 성민이와 긴 시간동안 알고 지낸 만큼, ‘성민이는 힘들면 대화를 해서 푸는 성격이 아닌데 어떻게 도와줄까’라는 생각이 맴돌았고, 2차전을 극적으로 이기면서 시리즈도 잡을 수 있었다. 심적으로 힘들었던 게 생각났는지 우승이 확정되자마자 제일 먼저 뛰어와서 안더라”며 흐뭇하게 웃었다. 사제지간을 넘어 형제애를 느끼게 한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했던 최 감독과 문성민은 둘만의 2박 3일 여행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었다. 숙원을 이룬 이번 시즌엔 유럽 챔피언스리그를 보기 위해 동료 선수들과 함께 이탈리아 로마로 떠날 예정이다.

최태웅 감독과 문성민의 브로맨스가 짠한 감동을 자아낸다면 유재학 감독과 전준범의 케미는 ‘애증’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그 역사의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준범은 2014년 12월 17일 프로농구 서울 SK전에서 팀이 3점차로 앞서가던 경기 종료 직전 골밑슛을 시도한 애런 헤인즈에게 반칙을 범했다. 공은 림을 통과했고 바스켓카운트가 선언됐다. 헤인즈가 자유투에 실패하며 모비스의 승리로 끝났지만 유재학 감독이 전준범에게 불같이 화내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혀 화제가 됐다.

1년 뒤 같은 날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고 이날은 전준범이 내준 자유투로 인해 모비스가 패하고 말았다. 모비스는 지난해 12월 17일을 ‘전준범 데이’로 지정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이색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유재학 감독은 “전준범이 잘하는 전준범 데이가 됐으면 좋겠다”며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었다.

최근에도 이 같은 일이 있었다. 유재학 감독은 이달 3일 원주 동부와 6강 플레이오프 3차전 2쿼터 종료 26초를 남기고 박병우에게 파울을 범해 자유투를 내준 전준범에게 소리 높여 화를 냈다. 34-35로 뒤진 상황에서 상대 공격시간도 거의 끝나 가는데 쓸데없이 득점 기회를 주느냐는 질타였다. 그러나 전준범은 팀이 69-66으로 추격당한 경기 종료 52초 전 3점슛을 폭발하며 유 감독을 웃게 했다. 이날 16득점 6리바운드를 기록한 전준범은 모비스의 77-70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해 11월 2일 동부와 정규리그 맞대결에서 경기 종료 2초를 남기고 역전 3점슛을 넣기도 했던 전준범은 동부 킬러로 떠오르며 활짝 웃었다.

겉으로는 제자에게 쓴소리를 날리는 유재학 감독이지만 그는 올 시즌 부상으로 공백이 있었던 전준범을 높게 평가했다. 유 감독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경기를 치르다보면 내·외곽 공격을 동시에 활용하는 작전을 펼쳐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상황이 오면 외곽슛이 정확한 (전)준범이의 존재가 아쉽다”라고 말했다. 올해 정규리그에서 경기 당 2.5개의 3점슛을 터뜨린 제자의 능력을 인정한 것. 유 감독과 전준범의 유쾌한 ‘밀당’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남녀간의 사랑이 따뜻함, 달콤함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면, 남자들의 우정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끈끈함과 우애를 느끼게 한다. 최태웅 감독과 문성민, 그리고 유재학 감독과 전준범은 서로 닮은 듯 다른 브로맨스로 코트를 훈훈하게 달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