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더 테너' 유지태의 '소통과 즐거움'

2014-12-24     용원중 기자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2014년은 배우 유지태에게 있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한 해다. 5년여에 걸친 기다림 끝에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12월31일)를 세상에 내놓는가 하면 6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 ‘힐러’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내인 배우 김효진과의 사이에 지난 7월 아들을 낳았다. 두 번째 연출 영화 ‘앙까이(아내)’는 제작 초읽기에 들어갔다. 희망찬 2015년을 1주일 앞둔 날, 행복한 남자와 눈을 맞췄다.

◆ '더 테너'에서 세계적 성악가 배재철 드라마틱한 삶 소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는 유럽무대를 제패한 테너 배재철의 실화다. 독일 자르부뤼켄 국립오페라단 주역가수로 활동하던 중 갑자기 찾아온 갑상선암으로 목소리를 잃게 되지만 투철한 의지, 아내 윤희(차예련)와 일본인 매니저 사와다(이세야 유스케)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영화화했다.

영화는 2010년 제작에 들어가 세르비아, 일본, 한국에서의 2년6개월에 걸친 촬영, 중간에 투자문제 및 개봉이 지연되는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올해 연말 개봉을 확정지었다. 무려 5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유지태는 이 작품에 매달리는 통에 다른 영화출연 제의, 해외 프로젝트를 모두 거절했다.

“어려움을 많이 겪은 작품이라 애정도 더 많이 생기더라고요. 시사 이후 반응이 좋아서 다행입니다. 김상만 감독과는 ‘심야의 FM’ 때 호흡이 너무 좋아서 신뢰가 있었고 제작팀 모두와 함께 작업했던 인연이 있어서 더욱 각별했죠. 다른 작품들을 고사한 건 ‘더 테너’ 일정도 있었지만 악역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 캐릭터는 피하고 싶었던 생각도 있었고요.”

◆ '유지태 스타일' 유지한채 노래 '올인'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라 배재철을 첫 소개한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을 비롯해 수술장면, 그의 음원을 섭렵하고 직접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는 두 번을 울었다. 수술대 위에서 ‘주 하나님’을 부르는 장면에선 슬픔이 북받쳐 올랐고, 재기 무대에서 ‘아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모습에선 얼굴표정을 잊을 수 없어 눈물을 쏟아냈다.

배재철을 마음으로 느끼게 된 뒤에는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당당한 풍채, 헤어스타일과 같은 이미지를 가져오려는 생각도 했다. 트루만 카포티를 연기한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카포티)이나 하워드 휴즈를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비에이터)처럼 특징을 잡자는 생각에 빠졌다.

“감독님에게 완벽하게 따라할 지를 물어봤더니 유지태 스타일을 유지했으면 한단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테너라고 모두 몸집이 넉넉한 건 아니니 그런 강박에서도 벗어나자고 조언해주셨고. 그래서 체중은 조금만 늘리고 노래와 관련한 부분에 집중했죠. 영화에 등장하는 8곡의 아리아와 오페라를 들으며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 얼굴표정, 감정선 담아내는 오페라가수 역 위해 1년 동안 레슨

오페라 가수를 소재로 한 영화는 배우에게 있어 고난도 작업을 요구한다.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등 악기 연주자의 경우 대역을 쓰거나 연주하는 손을 부분적으로 따서 쓸 수 있지만 성악가는 그럴 수가 없다. 완벽한 립싱크를 비롯해 노래의 감정선을 살리는 얼굴 표정 등 어려운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올바른 호흡을 통해 소리의 길을 내는 방법을 숙지해야 하며 악관절을 사용해야하기에 노래를 할 때 절로 찡그려지는 디테일한 표정이 드러나야 한다. 한 마디로 예쁘거나 멋진 표정만으로는 안 된다. 배재철로 분해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들고’,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중 ‘보라, 저 무서운 불길’ ‘대장간의 합창’ 등 유명 아리아를 부르는 유지태는 이런 가이드라인을 실제 테너처럼 소화한다.

“1년 가까이 매일 4시간씩 수업을 받았어요. 김병진 테너에게 훈련을 받고 틈틈이 배재철, 한혜진 선생님이 코치를 해주셨어요. 성악가는 성대를 울려서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머리와 안면에서 소리를 뿜어내더라고요. 머리가 스피커인 셈이죠. 호흡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는 법 등을 연습한 뒤 립싱크 트레이닝이 이어졌는데 무척 어렵더라고요. 오디오를 플레이 하고나서 입모양을 맞추는데 아무리 정확하게 시도한다고 해도 조금씩 시간차가 나거든요.”

◆ 평소 오페라 애호가…기회되면 음악영화 연출할 계획

평소 표현에 대한 관심이 커서 오페라를 찾아 들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DVD를 구입해 시청하고,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곤 했다. 오페라와 뮤지컬을 소재로 한 해외 영화 ‘가면 속의 아리아’ ‘파리넬리’ ‘레미제라블’도 즐겨 봤다. ‘더 테너’를 촬영하고 나서 오페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더욱 짙어졌다.

“예술가 한 명이 탄생하는 데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잖아요. 경지에 오른 예술가들이 리듬과 선율을 만들어내는 오페라를 접하면 소름이 돋게 돼요. 극까지 완성도가 높으면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감동이 증폭되죠. 앞으로도 취미 삼아서 성악공부를 계속 하려고요. 저보고 타고난 베이스래요. 음량을 넓히면 매우 매력적인 목소리가 나올 거라고 칭찬해주시더라고요. 하하.”

‘더 테너’의 영향은 영화인 유지태에게 많은 영향을 남긴 듯 보인다. 기회가 되면 음악영화를 연출해보려는 의욕을 불어 넣었다. 이유를 묻자 “즉흥적이지 않은 완고함을 영상으로 잘 표현해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 "관객과 소통하며 즐거움 전달하는 배우·감독 되고파"

멜로영화 ‘공감’ ‘봄날은 간다’의 스위트한 남자 역할도 소화했으나 캐릭터가 강한 성격파 배우가 되고 싶어서 ‘올드보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심야의 FM’ 등에 출연하다보니 작품색이 어두워졌다.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어서 악당, 아저씨도 했는데 이젠 관객을 재밌고 즐겁게 해주고픈 욕망이 커요. 대중과 좀 더 소통하는 가운데 배우로서 여러 가지 실험과 시도를 해보고 싶은 거죠. 물론 절제와 과유불급의 마인드는 견지해야죠. 과하면 부담을 주니까 중용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과거엔 책임과 부담감이 강했는데 지금은 재미를 추구하는 게 달라진 점이다. 변화에는 2011년 결혼해 연예계 잉꼬커플로 소문난 아내 김효진과 올해 태어난 2세의 영향이 큰 듯 보인다.

“아내(김효진)는 ‘더 테너’ 속 배 선생님의 아내이자 일본인 사와다 상 같은 존재예요. 동료이자 친구이자 인생의 반려자죠. 요즘은 아침에 아들의 미소를 보고 집에서 나오면 피로가 다 사라져요. 내 가정 또한 내 꿈의 일부이자 전부이고, 연기와 연출도 나의 꿈이니까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할 생각이에요.”

◆ 탈북 여성과 조선족 남자 사랑 다룬 '앙까이' 두 번째 연출작 스타트 

첫 장편 연출작 ‘마이 라띠마’(2012)로 도빌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감독으로도 화려하게 데뷔한 그의 차기작은 ‘앙까이(아내)’다. 시나리오가 완성돼 제작사에 넘어간 상태다. 탈북 여성이 중국에 머무르다 조선족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이후 남편은 북송된 아내를 되찾으려 노력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가주의 스타일의 감성 드라마다. 유지태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센 상업영화’다.

[취재후기] 인터뷰 중간중간 아리아를 불러가며 열심히 설명을 한다. 몇 해 전 인터뷰할 때 느꼈던 까칠함이나 예술가 증후군은 싸악~. 편안한 책임감에 휩싸인 배우, 감독, 남편, 아버지의 모습만이 자리하고 있다. 기분 좋은 변화다. 내년이면 불혹의 나이를 맞는 유지태. 새해 인사를 들려달라는 말에 “삶의 부침이 있더라고 그 순간, 희망의 괄호를 그리고 사시길 응원한다”는 말을 남긴다.

goolis@sportsq.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