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Q스페셜] '삭발의 심리학' 안풀리던 경기, 삭발하면 신기하게 '술술'

정신력 강화 측면에서 긍정적…스포츠 현장에서 보편적

2014-03-18     박상현 기자

[스포츠Q 박상현 기자] 고양 오리온스 센터 장재석(23)은 17일 서울 SK와 2013~2014 KB국민카드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을 앞두고 삭발을 감행했다. 지난 2차전에서 종료 6분여를 남기고 15점을 앞서고도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한 후 곧바로 머리카락을 밀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올시즌 SK를 상대로 단 한차례도 이겨보지 못한 오리온스였기에 장재석으로서는 정신 무장이 필요했다. 그의 설명으로는 경복고 시절 이후 첫 삭발이었다.
 
17일 장재석의 삭발은 거짓말처럼 위력을 발했다.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슛에 SK의 수비가 무너졌다. 4쿼터에는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3점슛까지 넣었다.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 오히려 그에게 알 수 없는 큰 힘을 준 것이다.

장재석은 경기가 끝난 뒤 "SK를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해 팀 분위기와 사기가 크게 떨어질 것 같았다. 팀 동료들에게 포기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며 "4차전에서는 면도까지 할 것"이라며 삭발 이유를 밝혔다.

선수나 감독들이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마다 삭발하는 모습은 스포츠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팀이 부진에 빠지거나 개인 기록이 악화될 때 마음을 다 잡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것이 삭발이다.
 
삭발과 경기력의 상관관계는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긍정적인 효과를 보기도 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않기도 한다. 그럼에도 스포츠 현장에서는 정신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삭발의 심리학'이 통용된다.
 
◆ 동서양·남녀 가리지 않는 보편적인 현상
 
종목별로 시즌을 치르다 보면 두세차례 이상 사례가 나올 정도로 삭발은 스포츠 현장에서 보편적이다.
 
2013~2014 시즌 프로농구에서만 해도 이미 여러차례 삭발 투혼이 나왔다. 원주 동부 선수들은 팀이 연패에 빠지자 모두 삭발을 감행했고 결국 12연패에서 탈출함과 동시에 SK의 홈 연승 행진을 끊는 위력을 발휘했다. 인천 전자랜드의 유도훈 감독도 팀이 연패에 빠지자 스스로 삭발을 하고 나와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했다.

 
프로야구에서도 팀이 연패에 빠질 경우 감독부터 선수까지 삭발하는 경우가 잦고 이는 프로축구도 마찬가지다. V리그에서도 올시즌 대전 삼성화재와 천안 현대캐피탈이 부진을 겪자 주전 선수들이 삭발을 감행,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보통 삭발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와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만 통용되는 것 같지만 서양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포르투갈 출신 주제 무리뉴 첼시 감독은 올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E조 5차전을 앞두고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당시 첼시는 바젤과 경기에서 질 경우 16강 진출이 어려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정신무장 측면에서 삭발한 것이었다. 감독의 삭발 투혼에도 불구하고 첼시는 바젤에 져 체면을 구겼다.
 
페르난도 토레스(첼시)도 지난해 부진이 계속 이어지자 삭발로 정신 무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토레스 역시 삭발을 하고 나선 경기에서 결정력 부족을 드러내며 경기력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또 삭발을 할 수 없는 여성 선수들은 길었던 머리카락을 단발로 하는 방법으로 대신한다.


◆ 징크스이자 자기강화 효과
 
이에 대해 김병현 스포츠심리학 박사는 "스포츠 선수들이 부진할 때 삭발을 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된 현상이며 인간의 본능"이라며 "이는 일종의 징크스이자 자기강화(self reinforcement)라는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징크스라는 측면은 삭발을 하면 잘 풀릴 것이라는 일종의 자기 최면 성격이 강하다. 경기가 잘 풀릴 때 수염을 깎지 않는다던가, 속옷을 갈아입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부진에 빠졌어도 삭발에 동참하지 않는 선수들이 적지 않음을 고려하면 개개인의 징크스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상훈 고양 원더스 코치는 현역 시절 단 한차례도 삭발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긴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삼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기 머리카락이 힘의 원천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시위 현장에서 자신의 의지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삭발을 하는 것처럼 스포츠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더욱 굳건하게 하면서 강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삭발을 함으로써 부가적인 효과도 있다.

바로 상대팀에 대한 위압감이다. '우리는 이정도로 정신무장이 됐다'는 메세지를 상대팀에 보여줌으로써 심리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농구를 시작으로 여자프로농구, 남녀프로배구의 포스트시즌이 본격적으로 점화되면서 단기전에서 벼랑끝으로 내몰렸을 때 삭발 투혼이 더 많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삭발한 선수가 나오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그의 심리와 처한 상황을 견줘보는 것도 또 하나의 관전법이 될 것이다.  
 
tankpark@sportsq.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