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데스노트' 연출 구리야마 다키야 "김준수 변화과정 보고싶다"

2015-04-17     용원중 기자

[도쿄(일본)=스포츠Q 용원중기자] 이름이 적히면 죽게 되는 노트를 주운 뒤 악인들을 처단하는 천재 법학도 라이토와 그에 맞서는 명탐정 L의 팽팽한 두뇌싸움을 다룬 뮤지컬 '데스노트'는 2003년부터 슈에이샤 ‘주간조선 점프’에 연재된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일본에서만 시리즈 누계 3000만부 이상 발행됐으며, 2006년부터 시리즈 영화로도 개봉돼 수많은 흥행기록을 갈아치웠다.

데스노트라는 독특한 소재, 정의와 선악을 파고드는 묵직한 주제, 긴장감 넘치는 심리 스릴러 장르, 독창적인 캐릭터가 매력인 원작을 무대화한 ‘데스노트’는 지난 4월6일 도쿄 니세이극장에서 개막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의 유명 엔터테인먼트 기업 호리프로 제작으로 ‘지킬 앤 하이드’의 프랭크 와일드혼이 음악을, 잭 머피가 작사를 맡았으며 일본 공연계를 대표하는 거장 구리야마 다키야(63)가 연출을 담당했다. 그는 오는 6월20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하는 ‘데스노트’(제작 씨제스컬쳐) 한국어 공연의 연출도 맡는다.

4월16일 오전 캐피톨 호텔 도큐 컨퍼런스홀에 나타난 노 감독은 취재진에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뒤 “18세에 처음 서울을 방문한 이후 한국과 오랫동안 교분을 쌓아오고 있다. 일본 신국립극장 초대 예술감독 시절엔 한·일 공동작품 2편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은 감정이입이 되는 친근한 나라다. 일본 작품을 한국에서 올리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 이번 공연의 연출 방향에 대해 들려 달라.

▲ 시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는 만화는 뭐든지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르다. 무대공연과는 다르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 지에 치중했다. 1장 테마가 ‘지루함’이다(성적 우수한 중산층 가정의 청년 라이토는 지루함을 이유로 살인을 서슴지 않는다). 부조리함으로 인해 범죄가 일어나는 세상이 됐다. 독일 아동문학가 미하엘 엔데는 “벌써 제3차 세계대전은 시작되고 있다. 그것은 시간의 전쟁이다”라고 말했다. ‘데스노트’는 40초 안에 죽는다는 설정이다. 만화를 읽었을 때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를 먼저 생각했다. 내게 들렸던 소리는 40초의 초침 소리였다. 와일드혼의 색채감 풍성한 음악과 정 반대인 무기질 같은 초침소리가 들어가면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날지 궁금했다. 다음으론 시각이었다. 막이 올라갔을 때 검은색 데스노트 속, 텅 빈 하얀 종이가 펼쳐졌으면 했다. 이를 배경으로 등장인물의 말, 움직임, 음악이 채워질 때 ‘데스노트’의 세계관이 드러나지 않을까 여겼다.

- 원작은 심오한 주제의식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 빈곤과 전쟁 등 과거엔 범죄의 동기가 분명했다. 지금은 뚜렷한 동기가 없는 범죄들이 증가하고 있다. 태양이 눈부셔서 살인을 저지른 카뮈의 부조리극 ‘이방인’ 속 주인공처럼 세계적으로 부조리한 범죄사건이 많다. 이런 현상을 무대화했다. 사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주인공이 죽는 부조리한 해결을 남겨두고 싶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레퀴엠’ 음악을 부탁한 것도 뮤지컬 특성에 걸맞은 단순한 구원이 느낌 차원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불고, 태양이 뜨며 아침이 찾아오는’ 인간 역사의 조각을 보여주고 싶었다.

- '데스노트’ 원작은 시리즈로 나올 만큼 내용이 방대하며 에피소드도 풍부하다. 이를 2시간 남짓 공연으로 압축, 연출하는데 있어 어떤 점에 신경을 썼나?

▲ 각색 과정에도 참여했는데 워낙 에피소드가 많은 작품이라 굉장히 힘들었다. 공연 시작 10일 전에야 대본이 완성됐다. 총 20여 개 방면이 등장하는데 대사가 단 세 줄 늘어나는 것만으로 무거워지기도 해서 밸런스를 맞추는데 공을 들였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결코 장편 원작의 다이제스트 버전은 아니다. 이를 원하지도 않았다. ‘사신의 손바닥 위에서 인간들이 놀고 있다’는 커다란 틀은 유지하면서 라이토와 L의 심리전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번에 호평을 얻으면 파트2를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웃음) 무대에서 다 표현되지 못한 에피소드들이 아까워서 모으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조크다.

- 한국에서 초연되는 뮤지컬 ‘데스노트’의 연출도 맡게 됐다.

▲ 3년 전 한국의 국립극단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를 작업할 때 아버지 역의 배우 이호재씨와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애증으로 점철된 미국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유진 오닐의 이 연극에서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아들이 등장한다. 그가 “한국에선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어떻게 연출할 거냐”고 물었다. 난 “풍습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유진 오닐의 세계로 어떻게 점프해서 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대는 기본적으로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한국의 프로덕션을 만나서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날지는 연습하면서 나올 듯하다. 한국 공연 역시 일본과 같은 형태로 이뤄지겠지만, 장면 보강이나 좀 더 살릴 수 있는 부분을 다듬어서 변화를 추구할 계획이다. 분명한 건 일본의 ‘카피 버전’이 아니라, 한국의 ‘작품’이 나올 거라는 점이다.

- 지난 1월 ‘데스노트’ 한국 공연 배우 오디션에 참석하고, 홍광호(라이토)·김준수(L)·박혜나(사신 렘)·정선아(미사) 등 출연진과도 대화를 나눈 것으로 들었다.

▲ 김준수와 홍광호가 스타인 걸로 알고 있는데 나와는 관계가 없다.(웃음) 얼마나 역할에 맞는지가 중요하다. 라이토 역 김준수로부터는 평범한 고등학생에서 광기의 인물로 변화하는 과정을 얼마나 잘 해내는지 보고 싶다. 뮤지컬 ‘쓰릴미’ 한국 공연 때 일본에서와 똑같이 연출했는데 작품의 결과물이 전혀 달랐다. 한국 배우들은 ‘동물적으로’ 삶을 표현하는 능력이 있다. 그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난 내가 구상하는 그림을 배우들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실험실에서 배우들과 부딪히며 인간의 심리를 끌어내고 싶을 뿐이다. 배우들도 나와 심리전을 치르며 다시 태어나는 게 작품에 반영될 거다.

- 연극·뮤지컬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 연극이나 뮤지컬이나 가족극이며 사랑이야기다. ‘데스노트’에도 아이돌 탤런트 미사의 라이토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 사신 렘의 미사에 대한 사랑이 등장한다. 심지어 라이벌 관계인 라이토와 L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지 않은가. 상대에 대한 관심이 있지 않다면 미워할 수도 없다. 인간관계를 무대에서 구현하는 게 연출가의 일이다. ‘쓰릴미’에선 두 남자의 관계를, ‘데스노트’에선 여러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식으로. 요즘 젊은 세대들은 퇴근 후 컴퓨터 모니터 안에서 자신이나 세상과 조우한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니 사랑도, 싸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극장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이며, 뭔가가 일어나고 문제제기가 이뤄지는 곳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느끼고, 뭔가가 일어나는 게 연극·뮤지컬이라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데스노트’를 기다리는 한국 관객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제는 기다림이다. 1960~70년대는 행복, 풍요, 평화가 기다리면 오는 시대였다. 반면 21세기는 아무 것도 없기에 허무함이 지배한다.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할지 모르는 시대다. 그런 문제의식으로 출발한 ‘데스노트’의 키워드가 한국 관객 마음에 다가갔으면 한다. 특히 한국전쟁 후 급속한 부흥과 발전의 길을 걸어 온 한국에서도 이 도쿄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성찰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 Who’s 구리야마 타미야?

명문 와세다대 연극과를 졸업한 뒤 80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연출을 맡아 데뷔했다. 96년 ‘게토’를 통해 기노쿠니아 연극상, 요리우리연극대상 최우수 연출가상, 예술선장 신인상을 수상했다. 99년 ‘에버, 돌아갈 수 없는 여행’으로 마이니치예술상, 요미우리연극최우수 연출가상을 받았다. 2000년 신 국립극장 예술감독으로 위촉됐다. 2012년엔 일본 자수포장(문화훈장)을 수상한 거장이다.

현실 속 인간을 그려내는 데 주력해온 그는 인물의 심리를 예리하게 비추는 것과 아울러 섬세하면서도 정학한 연출로 정평이 났다. 연극 ‘오델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갈매기’ ‘오쿠니’ '어둠 속에 피는 꽃',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조곡학살’ ‘쓰릴 미’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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