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한류] ⑤ '퀸' 제패 소프라노 황수미가 들려주는 낭만가곡

2015-04-24     용원중 기자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아트앤아티스트 제공] 쇼팽 콩쿠르(폴란드), 차이콥스키 콩쿠르(러시아)와 함께 세계 3대 클래식 경연으로 꼽히는 2014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벨기에)에서 성악 부문 1위를 차지하며 혜성처럼 떠오른 소프라노 황수미(29). 독일 본 오페라극장 전속 솔리스트인 그가 금의환향 무대로 열기를 지펴가고 있다.

지난 16일 고향인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세계가곡여행’ 독창회,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협연에 이어 오는 26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세계가곡여행’ 시리즈 독창회로 모국 청중과 만난다. 22일 강남의 한 베이커리 카페에 여배우 못지 않은 미모의 소프라노가 시원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앉아 있었다.

◆ ‘세계가곡여행’ 무대 통해 독일가곡 진수 선보여

“16일 공연은 수상 후 고국에서의 첫 무대이자 음악 파트너인 헬무트 도이치(뮌헨 국립음대 교수)와의 첫 공연이라 의미가 컸는데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벅찼어요. 아이돌 스타의 기분이 이런 거겠구나 싶었죠(웃음). 반주자인 도이치 선생님도 ’팝 공연장 같다‘고 놀라워 하셨죠.”

부산시향과 '교향악축제' 협연에서는 슈트라우스 ‘세실리아’,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 중 ‘내 이름은 미미’,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중 ‘아, 꿈속에 살고 싶어라’를 열창했다. 커튼콜이 멈추질 않아 첫 곡을 다시 불러야만 했다. ‘세계가곡여행’ 프로그램은 매우 각별하다. 슈베르트의 ‘물레 감는 그레첸’을 비롯해 볼프, 베르크 등의 낭만시대 대표 독일가곡과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가곡을 들려준다.

“독일로 유학온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학교에서 오페라 뿐만 아니라 리트(독일가곡) 오라토리오를 동시에 전공했거든요. 그래서 리트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도이치 선생님과 논의 끝에 첨삭 과정을 거치며 레퍼토리를 짰죠. 통일성을 위해선 독일가곡으로 모두 배치하는 게 나았겠으나 워낙 라흐마니노프 가곡을 좋아해서 넣게 됐어요.”

◆ 지난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으로 ‘인생 반전’

황수미를 세계 성악계가 주목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다.

전 세계 2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린 가운데 12명이 결선에 올랐고, 황수미는 도니제티의 ‘돈 파스콸레’ 중 ‘그 눈길이 기사의 마음을 사로잡아’에서 강렬한 테크닉과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성량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슈트라우스의 ‘저녁노을 속에’를 부를 땐 뛰어난 발음과 표현력으로 놀라움을 안겨줬다. 전 대회(2011년) 우승자가 한국 소프라노 홍혜란이고, 홈코트의 이점을 안은 벨기에 소프라노 조디 데보스가 버티고 있음에도 우승을 거머쥐었다. 르 스와르 지는 “강한 개성과 탁월한 목소리, 엄청난 잠재력의 소유자이며 명확한 프로의식을 갖췄다”고 극찬했다.

“아직도 꿈같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터닝 포인트가 됐던 콩쿠르죠. 결선에선 별로 떨리지 않았어요. 연주회처럼 임했죠. 다만 처음 부르는 곡들이 태반이라 부담이 되긴 했어요. ‘한국인에게 또 1위를 줄까’란 생각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우승자 호명이 돼 놀랐죠.”

이때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세계적인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의 스승이자 가곡 반주의 제왕 헬무트 도이치가 러브콜을 보내 성악가와 반주자로 동행하게 됐다.

◆ ‘무대포’ 기질 안동소녀의 서울 유학 그리고 독일행

외가가 있는 대구에서 태어나 안동에서 성장한 황수미는 색소폰을 즐겨 부르던 아버지와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음악과 친숙했다. KBS어린이합창단 활동을 하던 중 지휘자의 권유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재학 중이던 무렵, 경북예고에서 주최한 콩쿠르에서 1등 맛을 본 안동 소녀는 나 홀로 상경해 서울예고, 서울대·대학원 성악과를 졸업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무대포 기질이 있어요. 환경에 동요하거나 걱정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할 때는 확실히 하자는 주의죠. ‘지금이 안 좋다고 끝이 안 좋은 게 아니다’란 어머니의 말씀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던 것 같아요.”

대학시절, 쟁쟁한 실력파들로 인해 꽤 긴 슬럼프를 겪었던 그는 오페라극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은 열망에 유학을 저울질했다. 당시 연광철 교수의 “무대를 원한다면 독일로 가라”는 조언에 힘입어 스스로 모은 유학자금(2년 정도 버틸 수 있는)을 가지고 2010년 독일 유학을 떠났다. 2년 안에 안 되면 돌아오자는 각오였다. 다행히 이듬해 독일 ARD콩쿠르 준우승, 2013년 아넬리제 로텐베르거 콩쿠르 우승을 하며 “꿈이 있으면 결국 되는구나”란 희열을 만끽했다.

◆ 표현력 연마 위해 거울 보며 연기 연습 치중

동양인이 서양의 음악을 현지 언어로 표현해내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특히 오페라는 한 편의 드라마이기에 가수이자 배우로서 역량을 쏟아내야 한다.

황수미 역시 이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잠자면서도 노래를 부를 정도로 다양한 창법을 연습했다. 오페라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전후 내용을 다 파악하고, 캐릭터와 아리아 내용을 꿰뚫는 공부는 필수다. 단어 하나하나의 뉘앙스까지 체득해야 한다. 이 모든 걸 무대 위에서 정확한 표현으로 청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소리는 타고난 거지만 표현은 노력을 요구해요. 바이올리니스트는 굳이 청중과 눈을 맞추며 연주할 필요는 없지만 오페라 가수는 청중과 마주해야 하잖아요. 표정을 통해 가사의 의미를 보다 더 잘 알게 해주는 게 임무죠. 거울을 보며 부단히 연습해요. 또 다양한 성악가들의 영상을 보며 참고를 하고요.”

◆ “청중에게 좋은 전달 하기 위해선 인격 가장 중요”

그가 생각하는 좋은 성악가의 자질은 무얼까. 거침없이 ‘인격’을 꼽는다.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삶을 잘 살아가는 배우가 연기도 잘 한다’는 말이 떠올라서다.

“그 사람의 노래, 작품을 보면 그의 성격, 인간성이 대충 보이잖아요. 좋은 전달을 위해선 인격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올바른 표현이 가능하고, 청중과 소통을 이루며 감동을 줄 수 있겠죠. 특히 제가 노래를 부르는 건 다함께 공유하기 위한 활동이잖아요. 그런 개념이 없다면 방안에서 혼자 만족하며 ‘내 이름은 미미’를 부르는 것에 다름 아니겠죠. 인격을 갖추기 위해선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고요. 신이 제게 재능을 주셨다면, 하루아침에 앗아갈 수도 있는 거니까 늘 겸손해야 하지 싶어요.”

전도유망한 소프라노는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는 대중이 늘어나는 현상을 바라보며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쇼적인 활동에 나서기보다 감동과 치유를 선사하는 정통 클래식을 들려주는데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곧추 세운다.

[취재후기] 청아한 목소리, 짙은 호소력, 뛰어난 음악 해석력... 그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큰 키와 미모까지 갖췄다. 조수미, 홍혜경의 뒤를 이을, 어쩌면 이들을 넘어설 소프라노 탄생이라는 레토릭이 전혀 과장되게 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가 매력적인 이유는 현실 감각이 암팡져서다. 대중과의 소통이 보다 강력하게 이뤄지지 않을까란 예상을 절로 하게 된다. 비하인드 스토리. 2007년, 뮤지컬에 관심을 가져 창작뮤지컬 ‘대장금’ 여주인공 오디션에 지원했다가 “똑~ 떨어졌다”고 귀띔한다. 드라마를 제대로 본 적이 없기에 사극 대사톤에서 버벅댔기 때문이란다. 푸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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