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하나로 배구계는 '에너지 충만' [SQ포커스]

2020-06-10     김의겸 기자

[남대문=스포츠Q(큐) 글 김의겸·사진 손힘찬 기자] 올림픽, 샐러리캡, 외인, 신생팀, 코로나19.

김연경(32·인천 흥국생명) 복귀에 국내 배구계에 에너지가 흘러넘친다. 아직 경기에 나서진 않았지만 등장만으로 여자배구 판을 넘어 한국배구 전체를 가득 채우는 느낌이다.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은 10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김연경 복귀 기자회견을 열었다. 11년 만에 V리그로 돌아오는 김연경을 향한 취재열을 대변하듯 수 많은 이야깃거리가 양산됐다.

올림픽 메달 도전이라는 대의, 그리고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전 세계적 대유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맞물린 덕에 국내 배구 팬들 입장에선 전성기의 김연경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생겼다. 배구판을 감도는 설렘의 근원이다.

김연경은 “많은 분들께서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 이제 흥국생명 김연경으로 인사드리게 돼 반갑고, 10여년 만에 많은 팬을 만난다는 생각에 설렌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며 “부담도 있지만 좋은 모습 보여드릴 테니 성원해주시면 우승으로 보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소감으로 운을 뗐다. 

키 192㎝로 2005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흥국생명에서 데뷔한 그는 프로 첫 시즌부터 신인상과 정규리그 및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상(MVP)을 독식했다. 2005~2006시즌부터 흥국생명의 정규리그 3연패와 2008~2009시즌 챔프결정전 승리를 이끈 뒤 일본 JT 마블러스로 이적하며 해외 생활을 시작했다. 

구단은 당시 4년밖에 뛰지 않아 아직 FA 자격을 얻지 못한 김연경을 '임의 탈퇴'로 묶고, 해외 진출을 허락했다. 따라서 김연경은 이번에 국내로 돌아오며 자연스레 흥국생명과 우선 협상을 벌였고, 핑크색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됐다.

앞서 샐러리캡(팀 총 연봉 상한)이라는 큰 걸림돌이 있었다. 터키에서 연봉 20억 원가량 받던 김연경이지만 V리그 규정상 그가 받을 수 있는 최대 액수는 6억5000만 원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구단에서 이 금액을 지불하더라도 남은 소액으로 나머지 선수들의 연봉까지 모두 해결해야 해 선수단에 대규모 구조 조정이 있을 거란 전망까지 따랐다.

하지만 김연경이 연봉을 3억5000만 원으로 낮추면서 문제가 수월해졌다. 코로나19 사태로 터키, 이탈리아 등 최상급 리그가 개막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연경으로서는 숙원 사업인 내년 도쿄 올림픽 메달 획득을 위해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무대로 V리그를 택했고, 자신의 욕심이 후배들의 앞날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월드클래스 윙 스파이커(레프트) 김연경이 다시 V리그 코트를 밟게 됐다.

JT마블러스(일본)를 시작으로 페네르바체(터키), 상하이 구오후아(중국), 엑자시바시(터키)를 거치며 수차례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그가 다시 흥국생명의 우승을 위해 뛴다.

김연경의 등번호는 예전 그대로 10이다. 김연경이 V리그를 제패하고 일본으로 떠날 때 흥국생명은 그가 언젠가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번호를 비워 놨다. 완전한 숫자로 통하는 '10'을 등에 새기고 뛸 김연경의 등장에 회견장에선 올림픽, 샐러리캡, 배구 발전 방안과 코로나19 사태까지 숱한 화제가 쏟아졌다. 나아가 한국배구 발전에 대한 건강한 토론의 장까지 열리는 모양새다. 

김연경은 “11년 전 내가 뛸 때만해도 이렇게 많은 관심 속에서 배구를 하던 때는 아니었다. 샐러리캡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고 있다. 배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활성화되고 있는 시기”라며 지난 11년 간 발전한 V리그와 달라진 배구인기를 실감한다고 했다.

그는 비시즌 틈틈이 방송에 출연하고 직접 유튜브 채널 ‘식빵언니’를 운영하며 대중에 배구를 알리고 있다. “지금은 비시즌이기 때문에 배구의 활성화를 위해 방송을 많이 하고 있다. 경기력에 지장 주지 않는 한에서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항간에선 김연경 복귀로 여자배구 인기가 탄력받을 경우 신생구단 창단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며 들떠있기도 하다. ‘대의적 차원에서 김연경이 신생팀으로 가야 한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주장마저 나오는 것 또한 김연경이 일으킨 물결 중 하나다.

김연경은 “만일 ‘김연경 효과’로 신생팀이 창단된다면 정말 좋을 것”이라며 “하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추후 성사될 경우 거취를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현명한 대답을 내놨다.

10년 넘게 선진 리그를 경험한 그다. “흥국생명에서 뛰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년이나 지났다. 일본, 유럽, 중국에서 뛰면서 배운 게 많지만 가장 큰 건 '프로정신'이다. 몸 관리 등 책임감은 물론 그 안의 시스템과 전술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배웠다”며 해외생활을 돌아봤다.

그런 김연경이 국내 무대의 성장을 치켜세우면서도 조심스럽게 꺼낸 안건이 있다. V리그에서 개선됐으면 하는 요소를 묻는 질문에 조심스럽게 외인 선발 제도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왜 내게 유독 이렇게 어렵거나 난감한 질문을 많이 하시는지 모르겠다”면서도 “개선돼야 할 점을 꼽으라니 생각나는 건 외인 트라이아웃 제도다. 자유계약으로 바꾸면 더 많은 좋은 선수들이 와서 국내 선수들도 배우는 게 많고, 전반적인 한국배구 수준도 많이 올라갈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배구를 대표하는 스타이자 세계적인 선수답게 전 세계 최대 이슈인 코로나19와 관련한 질문도 나왔다. 터키리그가 조기 종료된 뒤 귀국한 그는 정부 방침에 따라 2주간 자가 격리 기간을 가졌다.

김연경은 “마음이 무거워진다. 자가 격리 2주 상당히 힘들었다”면서 “하지만 지금 시기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 또 ‘덕분에 챌린지’ 다음 주자로 지목해주신 문재인 대통령님께 감사드리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많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어 좋았다”고 밝혔다.

김연경 한 명이 움직였을 뿐인데 한국배구계 전체에 활력이 돈다. 숱한 이야깃거리가 쏟아진다. 김연경의 연봉 대폭 삭감 소식은 해외의 배구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코로나19 사태 속 방역 강국 한국에서 가장 먼저 기지개를 켠 KBO리그(프로야구)와 K리그(프로축구)가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듯 V리그도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시기를 맞이한 셈이기도 하다.

김여일 흥국생명 단장은 “김연경의 국내 복귀가 한국이 코로나19를 극복한 안전지대임을 전 세계에 인식시키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며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김연경이) 내년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을 다하겠다”고 힘줬다.

김연경이 2021~2022시즌에도 V리그에서 뛸 것이란 보장은 없다. 분명한 것은 그가 앞으로 보낼 1년 동안 한국배구는 좀 더 완벽하고 발전된 방향으로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김연경 만큼이나 배구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들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