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잡는 마법사? 이강철 매직 기대감 [KT 두산 한국시리즈]

2021-11-15     안호근 기자

[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손힘찬 기자] 초보 감독들과는 달랐다. 이미 한 차례 쓴 맛을 겪었고 이는 큰 자양분이 됐다. 이강철(55) KT 위즈 감독의 여유와 유연함이 팀 창단 첫 우승을 희망을 한껏 키웠다.

이강철 감독의 KT는 14일 서울시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두산과 2021 신한은행 SOL(쏠) KBO(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 1차전에서 4-2로 이겼다.

와일드카드(WC) 결정전부터 상대를 연파하며 올라온 두산이지만 정규리그 우승팀 KT는 달랐다. 이 감독의 대범함이 승부를 가른 결정적 요인이 됐다.

 

KT는 지난해 처음 맞은 가을야구 때 두산과 플레이오프(PO)에서 1승 3패로 고개를 숙였다. 매 경기 접전이 펼쳐졌지만 두산 투수들의 벽을 넘지 못했고 벤치 수싸움에서도 경험 부족을 절실히 느꼈다.

올 시즌 어려움을 이겨낸 두산은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키움 히어로즈, LG, 삼성을 모두 잡아냈는데 공통점은 사령탑이 올해가 부임 첫 시즌이라는 점이었다. 경기 운영 면에서 차이가 크게 나타났고 이 점이 승부를 가르는 직접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경기 전 지난해 두산과 PO를 돌아본 이 감독은 “내가 부족했다. 정규시즌 내내 잘 끌어왔는데 포스트시즌에서 다르게 경기를 운영했다”고 실패 원인을 꼽으며 “올해는 하던대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마운드 운영에선 ‘하던대로’ 잘 이끌었다. 선발 윌리엄 쿠에바스가 7⅔이닝 100구 역투를 펼치며 1실점 호투해 팀에 첫 승을 안겼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4회 2안타로 실점 위기에 몰렸고 5회엔 펜스 직격 3루타 등으로 1점을 내줬다. 

두산은 비슷한 상황에서 곽빈의 공이 KT 타자들의 방망이 중심에 맞아 나가자 5이닝 1실점한 그를 6회 이영하로 바꿨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영하와 이현승 카드로 연이어 쓴맛을 봤다.

 

KT는 달랐다. 경기 전 이 감독은 “일단 5이닝은 막아주길 바란다. 6이닝까지 소화해주면 경기를 잘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결국 위기 속에도 믿음으로 버텼고 쿠에바스는 6,7,8회 더욱 힘을 내며 100구까지 뿌렸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경기 후 이 감독은 “정타가 나오길래 교체도 생각했는데 (장)성우한테 물어보니 실투 한 두 개가 나와서 그렇지 괜찮다고 했다”며 “가장 젤 믿을 수 있는 투수이기에 ‘참자, 참자’ 생각했다”고 말했다.

앞서 초보 감독들이 승부처에서 악수를 둔 건 조급함 때문이었다. 많은 감독들이 부임 초기에 겪는 일. 이 감독은 반대로 가장 KT스럽게 이기는 방법을 생각했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쿠에바스를 믿었고 결국 결과를 만들어냈다. 쿠에바스를 길게 끌고 간 덕에 시리즈에 앞서 불펜으로 전환 시킨 키플레이어 고영표를 아낄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인내하기만 한 건 아니다. 두산에 2,3,4회 매 이닝 선두타자 출루를 허용하며 위기를 맞은 뒤에도 무실점으로 잘 막아내자 이 감독은 결단했다. 점수를 내야겠다고.

4회말 강백호의 안타, 유한준이 상대 실책으로 출루했다. 무사 1,2루 타석에 올라선 제러드 호잉은 번트 자세를 잡았고 다소 높은 공을 방망이에 잘 맞히며 주자 진루를 도왔다. KT는 장성우의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챙길 수 있었다.

이 감독은 “고민이 됐다. 선취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외국인이지만 경기 전에도 어느 타순이든 번트를 댈 수 있다고 말했었다”며 “결단 내리기 쉽지 않았지만 분위기를 가져오지 않으면 넘어가겠다고 생각했다”고 작전 지시 배경을 설명했다.

 

7회 배정대의 솔로포 이후에도 1사 1,3루에서 황재균 타석 때 히트 앤드 런을 지시했고 KT는 자칫 병살타가 될 수 있던 땅볼 타구에도 손쉽게 추가 득점할 수 있었다. 이 감독은 벤치에서 박수를 치며 만족스러워 했다. “황재균이 병살타를 칠 것 같았다”고 웃은 이 감독은 “재균이가 잘해줬다. 선수들이 더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수비 전략도 눈에 띄었다. 좌타자가 많은 두산을 상대하는 팀들은 시프트를 사용하곤 한다. 특히 김재환과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의 타석 때는 극단적으로 2-3루를 비워두곤 하는데, 두산은 앞선 포스트시즌에서 밀어치는 타격으로 이를 깨부쉈다.

경기 전 “김재환을 빼고는 시프트를 가동하지 않을 생각이다. 준비대로 나섰는데 안타를 맞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는데 정작 5회초 2사 1루에서 페르난데스의 타구를 외야로 한참 물러서 있던 2루수 박경수가 잡아내 이닝을 마쳤다. 이 감독은 “페르난데스한테도 (시프트를) 쓸까 했는데 쿠에바스가 컷패스트볼을 많이 던지니 정상적으로 했는데 2루수만 뒤로 뺐었던 게 좋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WC부터 PO까지 순항하며 상대팀 감독들과 많은 비교가 됐다. ‘여우 탈을 쓴 곰’이라는 별명이 다시 한 번 회자됐다. “전략은 없다. 상황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던 김 감독은 상황에 따른 유연함을 보였고 이는 두산이 승부처마다 상대에 비해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이 됐다.

한국시리즈. 상황은 바뀌었다. 오히려 더 여유 있게 대처한 쪽은 KT. 상황에 따라선 승부수를 띄우기도, 때론 선수들을 믿으며 우직하게 팀을 이끌어가는 이강철 감독이 우승 확률 74%를 가져갔다. 여우 잡는 마법사의 ‘강철 매직’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