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쓴 박정아-배유나 "우리도 예상 못했다”

2023-04-07     김진수 기자

[인천=스포츠Q(큐) 김진수 기자] “저희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해내서 기분 좋아요." (박정아)

“모든 분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배유나)

엄살이 아니었다.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가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할거라고는 경기를 직접 뛴 선수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도로공사가 우승 후보가 아닌데다 전력상으로도 정규리그 1위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게 뒤졌기 때문이다.

1~2차전을 내주고 3~5차전을 잡아내는, 시리즈를 뒤집을 거라고 쉽게 생각하지 못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3~5차전에서 1세트를 먼저 내주고도 승리를 따내는 역전의 팀으로 팬들에게 각인하며 이번 챔피언결정전에서 ‘역전 신화’를 썼다.

한국도로공사

6일 5차전에서는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컵을 차지했다. 역대 여자부 포스트시즌 최장인 158분 동안 치러진 혈투였다.

도로공사 구단 역사상 챔피언결정전 두 번째 우승이다.

박정아는 경기를 마치고 “1세트에 10연속 공격하고 죽을 것 같았다”며 “저만 힘든 거 아닌데 너무 힘들어서 티가 났다. 옆에서 많이 도와줘서 참고 버텼다”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

박정아는 이날 공격성공률은 28.17%에 그쳤지만 23점으로 32점을 몰아친 캐서린 벨(등록명 캣벨)에 이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특히 승부처인 5세트에 6득점했다.

박정아는 체력이 부쳤지만 힘을 냈고 팀도 챔피언결정전 사상 최초로 1~2차전을 내주고도 우승한 팀 1호가 됐다.

박정아는 “제가 항상 건강한데 올 시즌은 첫 경기도 못 뛰었고 건강관리도 못했다. 잘 이겨낸 시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는 IBK기업은행 시절 3차례, 도로공사에서 2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해 통산 5번이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한국도로공사

그는 “모든 우승이 기분 좋고 소중한 기억”이라면서 “앞에 4번 우승할 때는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이번 시즌은 개인적으로 기대를 안했는데 우승을 하다보니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미들블로커 배유나는 “2017~2018시즌 우승할 때는 모두가 예상한 우승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시즌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보다 ‘이기게 되네?’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봄배구를 하고 챔프전에 와 있고 5차전에서 15점이 돼 있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챔프전을 5차전까지 치렀지만 체력은 버틸만하다고 했다. 배유나는 “모두가 다 걱정하는 게 저희의 체력이었는데, 어린 친구들보다는 체력이 안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얼마나 체력관리를 잘하는지도 팬 분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던 시즌이었다”고 돌아봤다.

박정아와 배유나는 이제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다. 둘은 일단 오늘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 캣벨은 MVP 소감으로 “너무 충격적이라 실감이 안 난다. 내일이 되어야 실감이 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 시즌 흥국생명에서 뛰었다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올 시즌 중반 요비치(등록명 카타리나)의 대체 선수로 올 1월에 도로공사에 합류했다.

그는 “지금은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저는 원래 밝은 성격인데 경기에 몰두하면서 지쳤다. 쉬고 내일부터 생각하려고 한다”고 했다.

사령탑으로 도로공사에서 두 번의 챔피언결정전을 모두 이룬 김종민 감독은 편한 얼굴로 인터뷰실에 들어섰다.

김 감독 역시 이번 시즌에는 부담감을 덜어놓고 경기에 임했다고 한다.

그는 “2017~2018시즌에는 팀 전력이 좋아서 잘돼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며 “올해는 처음부터 (타 팀에서) 저희한테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선수들하고 마음 편히 준비했다. 챔프전도 잃을 것도 없어서 상대가 더 부담스럽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버티자고 했는데 선수들이 잘 버텨줬다”고 했다.

그럼에도 선수들과 똘똘 뭉쳐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는 너희끼리 똘똘 뭉치고 도와주고 그러면서 시즌을 치러야 한다. 나 잘났다 하면 쉽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저희가 누구 한 명이 특별하게 잘하기보다 7~8명이 뭉치면 굉장히 단단한 팀이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기적을 일궈낸 선수들이 고맙다. 저도 오늘 시합하면서 선수들에게 감동받았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