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졌다고요? 천만에요" 덕수고의 이유있는 자신감

[고교야구 순례] 전통과 자존심의 덕수고...지난해 3관왕 주역들 빠졌지만 청룡기 3연패에 자존심 걸다

2014-04-11     민기홍 기자

[300자 Tip!] 지난해 고교야구 판도는 덕수고와 '비'덕수고간의 싸움이라 말해도 무방했다. 덕수고는 총 6개의 대회 중 3개 대회를 제패했다. 공식경기 18승3패의 압도적인 승률로 황금사자기(주말리그 전반기)와 청룡기(주말리그 후반기), 대한야구협회장기대회를 석권해 다른 팀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우수한 선수들의 졸업으로 덕수고 전력은 '기껏해야 8강'이라는 평을 받는다. 자존심이 상한 재학생들은 칼을 갈고 있었다. '우리들도 형들처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이유가 있었다.

[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에서 내리자 덕수고 건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정문에 들어서자 인조잔디와 조명 시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운동장 전체를 활용해 한 쪽에선 펑고 훈련이, 한 쪽에선 수비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 얼핏 봐도 선수 숫자가 꽤 많아보였다.

배팅 훈련이 진행되는 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한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날카로운 눈으로 선수들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다. 덕수고 전성시대를 연 정윤진(41) 감독이다.

◆ 우리가 약해졌다고? 청룡기 3연패하겠다! 

덕수고는 주축 선수들의 졸업으로 전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평을 받는다. 한주성(두산)과 임병욱(넥센), 안규현(삼성), 전용훈(두산), 임동휘(넥센) 등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지난해 3관왕의 영광을 이끌었던 전력이 고스란히 손실됐으니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정 감독은 “우승이란 건 운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 운이라는 것은 완벽히 준비한 자에게 오는 것이다”라며 은근한 자신감을 보였다. “주변에서 말이 나와도 운동장에서 잘하면 된다. 실력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보였다.

이어 “2010년 대통령배 3연패를 눈 앞에 두고 내가 실수해서 놓쳤다. 눈물이 나더라. 청룡기(후반기 주말리그 왕중왕전) 3연패 기회가 왔다. 약해졌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 선수들은 경쟁력이 있다.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의지를 보였다.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다. '2013 덕수고가 아니다'라는 말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단다. 오로지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다. 특히 졸업을 앞둔 3학년들의 각오가 남달랐다.

주장 김재성(18)은 “지난해에 비해 개인 기량이 약해진 건 사실이다. 졸업한 선배들은 기량이 워낙 뛰어났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우리도 결코 약하지 않다. 뭔가 일을 낼 것 같다.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며 좋은 성적을 낼 것을 다짐했다.

팀 공격의 선봉에 서야 할 졸업반 외야수 장성훈(18) 역시 “안된다는 주변의 평들을 역으로 이용하겠다“고 말했다. 투수 엄상백(18) 역시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말로 자신감을 보였다.

덕수고는 지난해 황금사자기 제패로 전반기 주말리그 왕중왕전 티켓은 확보해놓은 상태다. 따라서 몸상태가 좋지 않은 3학년을 제외하고 저학년 위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김규동, 오준영, 김재성 등 팀의 주축들을 무리시키지 않으며 1·2학년 위주로 경기에 나서다보니 11일 현재 전반기 리그 3패로 서울권 B조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주말리그 전반기 왕중왕전인 황금사자기부터 덕수고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황금사자기는 다음달  12일부터 21일까지 열린다. 덕수고가 간절히 염원하는 3연패에 도전할 후반기 왕중왕전 청룡기는 오는 7월 18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

◆ ‘덕수맨’ 정윤진 감독의 열정

“덕수중-덕수(상)고 나왔어요. 상무에서 제대하고 바로 코치가 됐습니다. 감독까지 더하면 27년째 덕수 유니폼을 입고 있네요."

정윤진 감독의 덕수 사랑은 대단하다. 학창시절 7년, 코치 생활 13년에 이어 2007년 감독이 됐다. 올해로 감독 7년째를 맞았다.

"모교라서 애정이 있죠. 언젠가 이곳을 떠나겠지만 늘 덕수가 잘 되길 바랍니다. 내가 맡고 있는 동안만큼은 팀을 잘 꾸려놔야죠.”

정 감독의 열정은 전력분석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가 직접 작성한 전력분석표를 받아본 강준혁(17)은 “마치 프로같다. 선진야구같은 느낌이 든다. 덕수고에 잘 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만족했다. 단기전에서 이 전력분석은 큰 효과를 보고 있다.

문장과 그래프 등이 혼합된 분석표는 상대 배터리의 볼배합·투수 습관·중심타자 컨디션·감독의 작전 스타일 등을 모두 담고 있다. 강준혁은 “실제로 그런 분석들이 경기에서 크게 도움이 된다. 작은 부분들을 효과를 발휘해 이긴 적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덕수고 야구부는 오후 1시30분터 오후 9시까지 훈련한다. 프로 진출이 목표인 3학년들은 오후 11시까지 보충 훈련을 한다. 정 감독은 “훈련량이 서울권에서 가장 많을 것”이라며 성적의 비결을 내놓았다.

정윤진 감독은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하는 것도 없다. 전부 다 능력 있는 코치들 덕이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인터뷰 도중 쉬어가는 시간에도 무전기와 마이크를 이용해 원 포인트 레슨을 잊지 않는다.

“‘조금만 더 잘해놓고 가야지’ 하다가 늦어버렸어요. 지도자로서의 숙명이죠 숙명. 수명이 줄 것은 확실해요.”

그는 야구 때문에 장가도 늦게 갔다. 완벽을 추구해 미루고 미루다 불혹을 넘겨 배우자를 얻었다. 단기전 토너먼트를 거듭하다보니 오래 살지 못살 것이란다. 말해놓고 빤히 웃는다.

◆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 정윤진의 지도 철학

정 감독은 '답게’라는 말이 좋다고 했다. "1·2학년은 저학년답게 패기로, 3학년은 졸업반답게 후회없이 야구를 하길 바란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3시간에 걸쳐 하는 전체훈련인 라이브 배팅이나 시추에이션 훈련만큼은 선수들이 바짝 긴장하고 받도록 엄하게 감독한다. 팀의 조직력을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호랑이 감독으로 변신해 큰 목소리를 낸다.

반면 개인훈련 프로그램인 펑고나 피칭 등은 스스로 생각하면서 할 수 있도록 느슨하게 풀어놓는 것이 그의 방침이다.

“과정이 중요해요. 준비를 철저히 해놓으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과정을 중요시한다. “어설픈 훈련은 절대 안된다. 집중력을 갖고 몰입해야한다”면서 “이는 선수 뿐 아니라 코치에게도 해당된다”고 강조했다.

보다 나은 지도를 위해 바로 옆에 있는 한양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과정도 마쳤다. 생리학·철학·심리학 등을 공부한 것은 선수들을 지도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관리자로서 선수들 개인 특성을 파악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그는 외부 요인에 흔들리기 쉬운 어린 선수들을 보듬는 것 또한 감독의 역할임을 잘 인식하고 있다.

◆ 덕수의 전통을 잇는다, 18번째 우승을 위해

덕수고의 유니폼 오른 어깨에는 ‘1980’과 ‘17’이라는 숫자가 박혀 있다. 1980년 창단해서 총 17회의 우승을 했다는 의미다.

선수들은 휴대폰을 갖고 다니지 못한다. 선·후배 관계도 확실하다. 주말 훈련을 위해 학교에 나올 때도 교복을 입어야 한다. 엄격한 규율이다. 취재를 위해 곳곳을 돌아다니자 깍듯하게 허리를 굽혀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몸에 밴 인사 습관이다.

시즌이 끝나면 한 번씩 모교를 방문하는 선배들은 재학생들에게 큰 자극이 되고 있다. 정 감독은 “선배들이 프로에 가서 자리잡는 것을 보고 알아서들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학년 포수 강준혁은 “열심히 해서 최재훈·한승택같은 선배들처럼 프로에 당당히 자리잡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나 지난 시범경기에서 수준급 투수인 윤희상(SK)을 상대로 홈런을 친 1년 선배 임병욱은 3학년 선수들에겐 영웅이 됐다. 포수 김재성은 “프로 유니폼을 입은 형이 멋지더라. 맨날 보던 형이었는데 너무 멋져보여서 얼마 전 만났을 때 악수를 청했다”며 웃었다.

덕수고 총동문회의 애정도 큰 힘이 된다. 정 감독은 “옛부터 덕수고 운동부는 야구가 유일했다. 우리는 동문들을 묶어주는 매개체다. 총동창회를 비롯해 동문들의 애정이 쏠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동문회와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4년 전에는 합숙소를 리모델링했다. 배팅훈련장을 지나쳐 지하로 내려가자 30명이 들어가도 될만한 대형 방이 나타났다. 감독실·코치실·식당·샤워실까지 제대로 갖춰져 있다. 2학년 투수 주효재는 “정말 좋다. 다른 학교 어디도 이만한 숙소는 없을 것”이라며 시설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덕수고의 전통과 명성 덕에 우수한 중학교 자원들도 끊임없이 유입된다.

특히 야간경기를 할 수 있는 조명시설이 있어 중학교들이 연습 경기를 하러 덕수고에 찾아온다. 이 기회를 활용해 정 감독과 코치들은 좋은 선수들을 눈여겨보고 스카우트한다.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 2014 덕수고 이끌 졸업반 삼총사의 꿈 

보기 드문 우투좌타 포수인 주장 김재성은 덕수고의 안방을 책임진다. 그는 투수들을 리드해야할뿐만 아니라 4번타자의 중책까지 맡아 타선에서도 활약해줘야 한다. 제주 출신 포수인 그는 확실한 롤모델이 있다.

“당연히 강민호가 롤모델이다. 제주출신 포수 계보를 잇고 싶다”고 말했다. “3학년을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해서 프로로 진출하고 싶다. 한승택 선배처럼 많은 경험을 쌓으며 프로에서 자리잡고 싶다”는 희망을 드러냈다.

리드오프 장성훈은 중견수이자 1번타자다. 넓은 수비범위와 빠른 발을 자랑한다. 그는 김주찬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한다. 장성훈은 “노력한만큼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청룡기 3연패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사이드암 투수 엄상백은 187cm 장신이다. 그는 임창용같은 스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그는 “선발이든 중간이든 마무리든 팀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언제든지 등판해 위기를 막아내겠다”는 당찬 각오를 보여줬다.

■ 덕수고 출신 스타들은 누구

덕수고는 김재걸(삼성 은퇴), 정수근(롯데 은퇴), 류제국(LG), 이용규(한화), 최진행(한화), 민병헌(두산), 김민성(넥센), 최재훈(두산) 등 쟁쟁한 선수들을 배출했다.

올해 졸업한 12명은 모두 프로에 지명받거나 대학 진학에 성공했다. 특히 10명뿐인 연고 지역 1차 지명 선수를 두 명(임병욱, 한주성)이나 배출하며 야구 명문고의 명성을 이었다. 2차 지명에서도 안규현, 전용훈, 임동휘, 나세원(SK)까지 지명됐다.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 이들은 고려대와 성균관대 등에 진학했다.

■ 덕수고 야구부 멤버는

정윤진 감독, 김민기 코치가 이끄는 덕수고는 3학년, 김재성(이하 배번 2) 이재혁(14) 이성진(44) 박충식(11) 엄상백(1) 최유광(30) 김규동(7) 장성훈(8) 오준영(4) 최성원(21) 강두현(18) 정용우(19) 이동현(23) 2학년, 김성택(17) 홍원재(41) 주효재(12) 한정수(13) 김성민(16) 김진섭(15) 최근수(3) 김재욱(9) 박준영(27) 김현빈(5) 1학년, 오혁진(40) 김재웅(25) 최건희(28) 홍승보(36) 안준환(42) 박정우(20) 김태훈(34) 강민형(43) 권택수(45) 이태극(31) 김우석(33) 임정우(38) 김지훈(46) 곽성준(35) 박세웅(26) 강준혁(22) 정택준(10) 김시현(32) 이지원(6) 정재혁(37) 박건우(29) 등 총 44명으로 구성돼 있다.

[취재 후기] 열정적인 지도자와 선수들의 강한 의지, 학교와 동문의 적극적인 지원과 확고히 내려오는 전통까지. 덕수고가 야구 명문으로 자리잡은 건 단기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선배들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며 8강 정도에 머무를지, 예상을 보란듯이 뒤집고 청룡기 3연패를 달성하며 지난해 최강의 면모를 이어갈지 고교야구를 주목해야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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