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Q생각]

2015-07-17     용원중 기자

[스포츠Q 용원중기자] 2년간 천만영화 ‘변호인’ ‘명량’ ‘국제시장’을 잇따라 내놓으며 각광받던 한국영화가 올해 상반기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한국영화 위기론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올해 상반기(1월~6월) 한국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은 관객 수가 전년보다 2.7% 줄어 2년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지난 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상반기 한국영화 관객 수는 4043만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1만명(2.7%) 줄었다. 2년 연속 감소한 것이다.

점유율 역시 한국영화는 42.5%로 2009년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상반기(43%)보다도 낮아졌다. 앞서 한국영화 점유율은 2013년에는 56.4%에 달했다.

흥행 성적을 살펴보면 ‘한국영화 저조, 외화 강세’ 현상은 명확하게 눈에 들어온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1049만명)을 비롯해 300만명을 넘긴 영화 8편 가운데 5편이 할리우드 영화다. 한국영화는 ‘국제시장’(1425만명), '조선명탐정-사라진 놉의 딸'(387만명), '스물'(304만명)에 불과하다. 그마저 ‘국제시장’은 지난해 12월17일 개봉한 작품이며, ‘연평해전’이 15일 500만 관객을 돌파했으나 300만 돌파 시점은 7월5일이다.

외화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613만명), '쥬라기 월드'(462만명),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383만명), '분노의 질주- 더 세븐'(325만명) 등 대작을 비롯해 다양성영화 '위플래시'(158만명),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280만명)까지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개봉 편수가 예년에 비해 적었던 건 아닐까. 그렇진 않다. 96편이 개봉해 지난 2년간 상반기 개봉편수(69편, 95편)와 비교하면 양적으로는 팽창했다. 내실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임성규 롯데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은 “영화의 콘텐츠가 관객으로부터 호응을 얻을 만한 내용을 담지 못한 게 큰 이유였을 것”, 최근하 쇼박스 홍보팀장은 “잇따른 천만영화 탄생으로 관객의 기대치가 높아졌는데 소재와 연출에서 참신함이 떨어지는, 상투적인 영화들이 많이 나와 관객이 찾지를 않았기 때문”이라고 상반기 부진을 설명했다.

이들의 분석대로 ‘새로운 시도’ 그리고 ‘진부하거나 평범한’이 승패를 갈랐다. ‘국제시장’에 열광했던 관객들은 엇비슷하게 복고 취향을 저격한 ‘쎄시봉’ ‘허삼관’ '강남 1970' ‘장수상회’를 외면했다. 지난해 붐을 이뤘던 사극열풍 궤적을 따른 ‘순수의 시대’ ‘간신’ 역시 고배를 들이켰다. 모두 기대작들이었음에도 관객의 공감을 얻는 이야기보다 진부한 소재와 기획으로 부끄러운 성적표를 받은 셈이다.

외화의 경우 흥행 예상작 뿐만 아니라 ‘킹스맨’ ‘분노의 질주’처럼 예상 밖 작품들도 터졌다. 극장가 최고 성수기인 7~8월, 12월에 국내외 대작들이 몰리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나 비수기에 할리우드 영화들에 대적할 만한 기획력과 개성을 갖춘 작품들이 부재함으로써 박스오피스를 외화에 넘겨주고, 한국영화는 극심한 보릿고개를 겪어야만 했다. 특히 과거에는 300만~400만 관객이 드는 이른바 ‘중박 영화’들이 탄탄하게 시장을 형성해주곤 했는데 상반기에는 그런 점이 부족했다. 한국영화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면서 일상적으로 관객을 모으는 영화가 거의 없었음을 방증한다.

반등의 계기는 없는 것일까.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가 흥행과 화제성에서 저조한 성적표를 받은 건 사실이나 당장 7월22일 개봉하는 웰메이드 오락영화의 최고봉 최동훈 감독이 연출한 ‘암살’을 시작으로 ‘베테랑’ ‘협녀, 칼의 기억’ ‘사도’ 등 공들여 제작한 영화들이 하반기에 연이어 개봉하기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 치열한 흥행경쟁을 벌이며 분위기를 반전시킬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 주목할 만한 신인 감독들이 다수 눈에 띈 것도 한국영화계의 수확이다. 청춘의 성장담을 코미디 장르에 담아낸 색다른 시도를 꾀한 ‘스물’의 이병헌 감독, SNS상 신상털기와 마녀사냥을 재기발랄하게 그려낸 ‘소셜포비아’의 홍석재 감독, 여배우 투톱 시스템(김혜수 김고은) 시스템을 가동하며 여성 누아르의 가능성을 제안한 ‘차이나타운’의 한준호 감독, 법정드라마 형식을 통해 사회성 짙은 소재를 묵직하게 투사한 ‘소수의견’의 김성제 감독, 여성주의 시선으로 한국의 현실을 냉정하게 묘파한 ‘마돈나’의 신수원 감독 등이 신선한 재능을 알렸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자기만의 독특한 정서와 연출력으로 상업영화계에 진입했던 ‘신인’ 허진호 장윤현 봉준호 김상진 임상수 등이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주도하는 감독으로 성장했듯 이들 감독이 향후 충무로의 다양성을 이끌어가기를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흥행수익이 관건인 대기업 위주 투자·배급 시스템이 지배하는 영화계 현실에서 시대물과 액션대작이라는 장르의 한정, 제작비 10억~20억원대의 중간규모 영화제작의 위축, A급영화의 토양을 만드는 B급영화의 부재를 극복해야 하는 것은 여전한 숙제다. 영화의 다양성, 관객 입장에서는 선택의 다양성과 직결된 사안이다.

오스트리아 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시, 작가 이문열의 소설, 한국영화 제목으로 쓰인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추락할 수 있으나, 열정과 희망이라는 날개를 가지고 있기에 새로운 비상이 가능하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요즘 한국영화계에 붙여주고픈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