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스하키, 평창 향한 스타트는 '투혼의 추격전'

1-6으로 지면서도 포기 않고 3연속골, 관중들도 "대~한민국" 화답

2014-04-20     박상현 기자

[300자 Tip!] 한국 스포츠가 1948년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을 통해 첫 출전한 이후 6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오직 아이스하키만 단 한차례도 출전하지 못했다.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평창 프로젝트'를 가동한 한국 아이스하키는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2승 3패(1연장승 포함)로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다. 한국은 1년만에 다시 맞이한 세계선수권에서도 선전을 펼친다면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의 마음을 움직여 본선 티켓을 따낸다는 각오다. 평창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한국의 2014 세계선수권 첫 경기는 '투혼의 추격전'이었다.

[고양=스포츠Q 글 박상현 기자·사진 최대성 기자] 평창 올림픽 출전을 위해 한국은 2014 IIHF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 대회를 유치했다. 홈에서 열리는 대회를 통해 아이스하키 붐을 일으키고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으로 좋은 성적을 올리겠다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지난해 브록 라던스키를 귀화시킨 한국은 브라이언 영과 마이클 스위프트까지 추가로 특별 귀화시켜 대표팀의 전력을 더욱 강화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6개국 가운데 5위를 차지한데다 2승이나 거둔 상승세를 이어 이번에는 조금 더 높은 순위로 올라서겠다는 목표까지 세웠다.

◆ 고양 어울림누리, 김연아 출전 이후 최다 인파

한국과 헝가리의 경기가 벌어진 20일 고양 어울림누리 근처는 적지 않은 인파가 몰렸다.

"지난 1월 김연아가 출전했던 피겨대회(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보다 자동차 댈 곳이 더 없는 것 같아요. 그때는 그래도 팬들이 버스나 지하철을 많이 이용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이렇진 않았어요."

어울림누리 주차장 관리요원의 말처럼 자동차를 댈만한 곳이 많지 않았다. 주차장 관리요원은 짧게 이 말만 남기고 인근 주차장을 안내하기 위해 달려갔다. 인근 주차장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그대로 이면주차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울림누리 정문 광장에는 삼삼오오 가족들이 모여 한국의 경기가 시작되는 오후 7시 30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학교에서 아이스하키 선수로 뛴다는 중학생도 아버지와 함께 경기장을 찾아 경기 시간이 될 때까지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기도 했다.

어울림누리 아이스링크 빙상장 관중석은 경기 시작 한시간 전부터 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몸을 푸는 모습 하나하나에 시선을 집중했다. 헝가리에서 직접 응원하러 온 원정팬들도 연신 북을 두들기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지만 이보다 더 많은 국내 팬들이 태극기가 그려진 응원도구를 연신 두들기며 "대~한민국"을 외쳤다.

어울림누리 관계자는 "관중석이 거의 가득찬 것은 1월에 김연아가 출전했던 피겨대회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물론 그 때보다는 적지만 이것만 해도 적지 않은 관중"이라고 말했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팬층이 아직까지 두텁지 않기에 이번 대회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알 수 있다.

◆ 계속된 2분 퇴장, 헝가리의 파워플레이에 밀리다

이번 대회는 한국(세계랭킹 23위)과 헝가리(19위)를 비롯해 슬로베니아(14위), 오스트리아(16위), 우크라이나(20위), 일본(22위) 등 6개국이 참가, 풀리그 방식으로 치러진다. 한국의 목표는 당연히 지난해보다 나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해 한차례 꺾었던 헝가리를 넘어서야만 했다.

헝가리가 세계랭킹에서 한국보다 위이긴 하지만 한국은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헝가리에 대역전승을 거둔 경험이 있다.

지난해 4월 16일 열렸던 경기에서 헝가리에게 1피리어드에만 3골을 내주며 끌려갔던 한국은 1-4로 뒤지던 3피리어드에서 초반 9분 사이에 3골을 몰아치며 경기를 연장과 승부치기로 끌고 가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다. 당시 장소가 바로 헝가리의 중심인 부다페스트였다.

헝가리 안방에서 헝가리를 꺾은 경험이 있는 한국은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역대 전적에서 1승 1무 9패로 일방적인 열세라고 하더라도 최근 발전하고 있는 한국 아이스하키라면 홈에서 열리는 경기도 한번 해볼만했다.

실제로 경기 초반은 강한 보디체크로 맞서며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1피리어드에 때린 11개의 슛이 모두 골문 안쪽으로 향하는 유효슛이었을 정도로 정확도도 높았다. 상대 골리 졸탄 헤테니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한국도 한두 골은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1피리어드 11분 19초 브록 라던스키, 11분 34초 김기성이 잇따라 2분 퇴장을 당하면서 전열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라던스키는 다시 빙판에 돌아온 불과 17초 뒤 다시 한번 2분 퇴장을 당했고 결국 14분 18초만에 이스트반 바탈리스에게 골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3분 25초 뒤에는 안드라스 벤트에게 두번째 골을 내줬다.

2피리어드에도 밀리긴 마찬가지. 7분 12초만에 촐트 아자리, 14분 27초에 이스트반 소프론에게 연속골을 내줘 0-4까지 끌려갔다.

◆ '평창 프로젝트 1탄' 귀화선수가 한몫

그래도 한국 아이스하키에겐 포기란 없었다. 그 어떠한 순간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했다. 그리고 헝가리 선수의 2분 퇴장으로 한국의 파워플레이 상황이던 15분 16초에 귀화선수 라던스키가 멋진 골을 성공시켜 1-4로 따라갔다.

2피리어드 막판 차바 코박스에게 다시 한 골을 내준데 이어 3피리어드 46초만에 바탈리스에게 추가골을 내줘 1-6까지 뒤졌지만 그래도 한국에는 나머지 19분이 있었다.

헝가리에게 여섯번째 실점을 한 뒤 불과 2분 6초만에 라던스키가 김기성의 패스를 받아 골을 성공시켜 2-6으로 다시 따라간 것. 4골 차이나 났지만 한국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눈은 끝까지 빛났다.

팬들이 이에 감흥받은 것은 당연한 일. 계속된 투혼에 팬들도 연신 박수를 쳐대며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한 팬은 "어울림누리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사는데 아이스하키 세계대회가 열린다고 해서 처음 와봤다"며 "이렇게 아이스하키가 흥미진진한지 몰랐다. 우리가 크게 지고 있긴 하지만 못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정말 투혼과 의지가 강해보인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관중들은 한국 선수가 때린 퍽이 아쉽게 골문을 벗어날 때 또는 상대 골리의 선방에 막힐 때마다 아쉬운 탄성을 질러댔다. 물론 선수들처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응원해댔다.

◆ '평창 프로젝트 2탄' 핀란드 유학파 막내, 1년만에 3연속골 완성

팬들의 뜨거운 응원 덕분이었을까. 3피리어드 7분 3초만에 이영준과 김우영의 보조를 받아 신상훈이 멋진 골을 성공시켜 3-6으로 따라붙었다. 1993년생으로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신상훈은 지난해 세계선수권 헝가리전에서 3피리어드 9분 21초에 4-4 동점을 만드는 골을 넣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신상훈의 활약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향한 '평창 프로젝트'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신상훈은 연세대 재학 중이던 지난해 10월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의 수혜자로 뽑혀 핀란드의 메스티스 키에코 완타에 합류했다. 신상훈은 핀란드 아이스하키리그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서 첫 득점을 올리며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 신예다.

막내의 분전에 대표팀 선수들의 플레이는 더욱 살아났다. 관중들의 목청도 더욱 높아졌다. 급기야 종료 4분 전에는 이돈구가 조민호의 도움을 받아 4-6까지 따라붙었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도 헝가리에 1-4로 지다가 3피리어드에 3연속골을 넣으며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간 적이 있다. 이번에는 워낙 점수차가 벌어져 동점까지 가진 않았지만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3연속골을 만들어냈다.

한국은 기세를 몰아붙여 4연속골을 뽑아내기 위해 골리를 빼고 공격수를 투입, 마지막 2분을 노렸다. 이 상황에서 퍽을 뺏겨 헝가리에게 단독 찬스를 주는 바람에 바탈리스에게 4-7로 벌어지는 골을 내주고 말았다.

경기는 3점차 완패였지만 모든 관중들은 한국 아이스하키가 끝까지 보여준 투혼에 "대~한민국"으로 화답했다. 경기를 마친 뒤 대표팀 선수들의 인사에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헝가리 기자는 "2피리어드에 너무 점수차가 벌어져서 그렇지, 한국이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다"며 "아직까지 세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꾸준히 발전을 한다면 디비전1 그룹A에서 우승하는 날도 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앞서 벌어진 경기에서는 일본이 슬로베니아에 2-1 역전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다. 오스트리아는 우크라이나를 3-2로 꺾었다. 한국은 오는 21일 슬로베니아와 2차전을 갖는다.

◆ 변선욱 감독 "대량 실점 아쉽지만 좋은 경기했다"

경기를 마친 뒤 한국 대표팀 변선욱 감독도 아쉬움과 만족에 교차하는 듯 했다. 끝까지 보여준 투혼에는 만족했지만 실점이 너무 많았던 것이 끝내 패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변 감독은 "준비했던대로 잘됐지만 실점이 생각보다 많았다. 페널티(퇴장)가 좀 많았는데 그것만 줄였다면 오늘은 충분히 좋은 경기였다"며 "지금 있는 디비전에서는 잔류가 목표일 정도로 우리는 하위권이다. 한 경기, 한 경기 열심히 하려고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변 감독은 "첫번째 실점은 헝가리의 파워플레이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두번째 실점은 마이클 스위프트와 브라이언 영의 수비 라인에서 나와 너무 아쉽다"며 "우리가 연습했던 수비 전형이 틀어지면서 내주지 말았어야 할 실점이 나왔다. 오늘 경기의 분수령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스위프트가 경기 도중 거친 플레이로 징계가 예상돼 슬로베니아전 출전이 불투명한 것에 대해 변 감독은 "경기를 하다보면 큰 페널티가 나올 수도 있고 돌발상황도 벌어지기도 한다"며 "마지막에 열심히 뛰어 좋은 경기를 했듯이 스위프트가 없으면 없는대로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 내일 경기를 기대해본다"고 덧붙였다.

[취재후기] '경기가 끝나고 난 뒤' 경기장은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뜨거운 함성 뒤에 찾아온 적막이라 더욱 조용하다. 하지만 한국 아이스하키의 도전은 내일도 계속된다. 슬로베니아전에서 또 한국이 아쉽게 지더라도 또 다시 일어서면 된다. 멋진 투혼을 계속 보여준다면, 그리고 팬들의 뜨거운 응원이 이어진다면 IIHF도 한국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주자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지 않을까.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성적이 아니라 뜨거운 마음이다.

tankpark@sportsq.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