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전지현, 스타의 봉인 해제하고 배우로 [인터뷰]②

2015-07-21     용원중 기자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멜로영화 ‘화이트 발렌타인’(1999)으로 스크린 데뷔한 지 16년째다. 10대 후반의 귀여웠던 숙녀는 30대 성숙한 여인으로, 스타에서 배우로 성장했다. 현재 아시아권에서 슈퍼파워를 가동 중인 전지현(34)의 일상, 연기에 대한 갈망에 귀를 기울였다.

- 대중은 배우 전지현이 순수하고 차분한 정민(화이트 발렌타인), 혜영(데이지), 련정희(베를린)를 연기할 때보다 통통 튀는 매력에 자신감 가득한 그녀(엽기적인 그녀), 예니콜(도둑들), 천송이(별에서 온 그대)로 다가올 때 훨씬 더 열광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표현을 못하고 살 때가 많은데 감정의 끝까지 표현을 다 해버리니 속 시원함을 느끼는 것 같다. 시원시원해 하면서 만족감을 얻기에 내가 연기하는 그런 캐릭터를 선호한다고 본다. 그리고 난 원래 밝은 성격이기도 하다.

- 최동훈 감독의 신작 ‘암살’ 개봉(7월22일)을 앞두고 있다. 극중 이정재와는 임시정부 대원 염석진과 친일파 암살단 대장 안옥윤으로 호흡을 맞췄다. 이정재와는 2000년 멜로영화 ‘시월애’ 이후 ‘도둑들’ ‘암살’로 세 번째 공연이다.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갔다”‘는 말이 절로 생각날 것 같다.

▲ ‘암살’에서 정재 오빠는 머리 희끗한 60대 노인 분장을, 나는 애매한 40대 분장을 한 채 만나는 장면이 있다. 오빠가 날 딱 보더니 “지현아, 우리 참 오래 봐왔구나” 하더라. 어찌나 웃기던지. 감회가 새로웠다. 1999년 밀레니엄을 앞둔 ‘시월애’ 촬영 현장에서 우린 풋풋했었는데.(웃음) 오빠가 너무 멋있게 성숙해져서 보기 좋다.

- 글로벌 프로젝트 영화 ‘블러드’(2009), ‘설화와 비밀의 부채’(2011)을 통해 할리우드 진출을 시도했지만 완성형은 아닌 듯 보인다. 계속 시도할 것인지 궁금하다.

▲ 20대부터 배우의 경쟁력은 마켓의 힘이 좌우하는구나, 생각했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건 세계적인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기회가 오면 도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배우가 연기를 잘 하고, 관객에게 사랑받는 건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 나만의 시장을 갖는 게 필요하다. 요즘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게 아시아 사람이 좋아하는 거라고 본다. 좋은 작품을 하면서 우리 안에서 세계화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또 세계 영화시장의 무게추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으니 제안이 온다면 얼마든지 할 생각이 있다.

- 여배우의 경우 결혼 이후 인기가 떨어지거나 주부·엄마 역할로 전환하기 십상인데 오히려 연기, 인기, 역할 모든 면에서 상승곡선을 긋고 있다. 결혼으로 안정을 찾은 것이 도움이 된 건가?

▲ ‘도둑들’ 개봉 전에 결혼을 했는데 그 당시 이미 작품들이 연달아 맞물려 있던 상황이었다. 결혼과 같은 내 자신의 변화보다는 주변 시선이 너그러워지는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엔 '얼마나 잘하나 보자' '스타이지 배우는 아니다'라는 시선이 있었다면 결혼 후엔 나를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난 작품이든, 결혼이든 기회가 있을 때 해야 한다는 주의다. 삶이 얼마나 길다고! 물론 선택은 신중해야겠지만.

- 가정주부로서의 삶은 어떤가.

▲ 카메라 앞에서만 특별해질 뿐이지 아내로서 집에서 보내는 생활은 남들과 똑같다. 다 내 손으로 한다. 부지런한 성격이라 가만히 앉아 있질 않는다. 어디에 뭘 정리해 넣어놓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다. 다만 요리는 관심은 많은데 쉽지는 않더라. 김치는 어머니가 담가주시는 걸 먹는다. 내가 잘 하는 거엔 욕심을 부리는데 못 하는 건 깨끗이 포기한다. 그래서 무시당할 때가 많은데(웃음)...잘 하는 부분을 확실히 하고 있으니 된 거 아닌가?

- 2012년에 결혼했으니 만 3년이 지났다. 2세 계획은 세우지 않았나?

▲ 자녀 계획은 자연스러운 거니까 천천히 할 생각이다.

- 30대 중반은 여배우로서는 고비가 될 수 있는 시기다. 젊음과 미모를 생명처럼 여기는 여배우에게 나이듦은 독배를 들이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도 있다.

▲ 배우로서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고 싶다. 이해해야 표현이 가능하니까 나이가 들면서 표현할 수 있는 범주가 넓어졌다. 극에서 망가지는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고. 그래서 30대가 돼 연기하는 게 20대 시절보다 훨씬 편안하다. 너무 좋다. 나이 들어간다는 게.

- 지금 누리고 있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기까지 한동안 손에 꼽을 만한 대표작을 내지 못했다. 위기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 슬럼프나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땐 내가 20대 중후반이었다. 이건 내게 시작에 불과하지 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배우로서 한 과정이고 계속 해나갈 일이니까 조급해하지 않았다.

- 인터뷰에서 운 좋게 좋은 감독과 작가를 만나서 지금의 영광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단지 운만은 아닐 거다. 아무 작품이나 고르진 않을 테니.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나.

▲ '별그대'의 경우 정말 운 좋게 발견해 천송이로 빙의한 작품이었다. 표현상 ‘운 좋게’가 맞다. 예나 지금이나 작품 선택 시 달라지지 않은 건 '내가 하고 싶은지'다. 하고 싶었던 거를 해왔다. 그래서 어렸을 때 했던 작품들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나이에 맞는 역할을 많이 할 걸 하는 아쉬움은 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기이므로. 최근 작품 성적이 계속 좋긴 하나 앞으로도 그러리라곤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좋은 감독, 작가들과 작업하는 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은 분명하다.

- “연기에 집중하는 현재의 삶이 즐겁다”고도 언급했는데.

▲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일이란 게 다 뻔한데 미쳐서 집중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나.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는 배가 고픈지, 어디가 아픈지 모를 정도로 집중하게 되더라. 삶에 낙처럼 느껴진다. 즐거움을 느끼면서 연기를 하면 표현도 더 좋아지고, 연기의 성과도 늘지 않을까 싶다.

- 드라마, 영화, CF, 해외 활동 등 지칠 줄 모르고 맹활약하는 원동력은 무언가?

▲ 좋은 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정진하는 게 아닐까. 잘할 자신이 있는데 좋은 작품과 매혹적인 캐릭터가 들어오는 게 원동력이다. 앞으로도 관객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계속 연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