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의 법칙' vs '처녀들의 저녁식사'

2014-02-06     태상준
‘하향 평준화’라고 칭하면 적당하다.
2013년 한국 영화계는 극장 관객이 2억 명을 돌파하는 최고의 호황을 경험했다. 지난해 최고 관객을 동원한 영화 중 1위부터 10위까지 한국 영화가 9편이다. 한국 영화의 황금기가 다시 도래했다는 호들갑스러운 리포트도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이야기는 다소 달라진다.
1300만 명으로 관객 동원 1위인 ‘7번방의 선물’은 진부하고 안이한 내러티브의 휴먼 드라마였으며 ‘베를린’과 ‘감시자들’, ‘신세계’는 충실한 벤치 마킹의 산물(産物)이었다. 또 봉준호의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는 호불호가 확연히 갈렸으며, ‘우아한 세계’ 한재림의 시대극 ‘관상’은 수양대군 역의 이정재만 화려하게 부각시켰다.
올해 상황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수상한 그녀’ ‘피끓는 청춘’ ‘남자가 사랑할 때’ ‘조선미녀삼총사’ 등 CJ와 쇼박스, 롯데, NEW 등 한국의 대표 투자/배급사들이 내놓은 설 영화의 면면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마이 파더’ ‘도가니’의 황동혁 감독이 내놓은 ‘수상한 그녀’는 감독의 색깔이 실종된 100% 기획영화이며, ‘피끓는 청춘’은 요즘 대세 배우로 떠오른 이종석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추억팔이’ 영화다.
시한부 남자의 사랑 이야기 ‘남자가 사랑할 때’를 보면 자동으로 황정민 주연의 ‘너는 내 운명’이나 ‘행복’이 오버랩 된다. 또 ‘조선미녀삼총사’는 잘 알려진 대로 할리우드의 ‘미녀삼총사’에서 모티프를 삼은 작품이다. 네 편 모두 새로운(혹은 위험한) 것보다는 익숙한(혹은 안전한) 것에 방점을 찍은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13일 개봉되는 ‘관능의 법칙’은 웰 메이드 소품으로 부를만 하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건축학개론’의 제작사 명필름이 제작하고 ‘싱글즈’의 권칠인 감독이 연출한 ‘관능의 법칙’에서 조민수, 엄정화, 문소리 등 40대 세 여배우의 앙상블은 근사하며 (충실한 취재를 거친 듯한) 대사와 에피소드들은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극 중 장면들은 적당히 ‘야’하고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그러나 섹스 하나만으로 40대 여성들의 삶을 풀어내는 설정은 다분히 고루하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6년전 제작된 임상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떠올리면 ‘관능의 법칙’의 안일함은 도드라진다.
성과 일 모두에서 열심인 커리어 우먼 호정(강수연)과 결혼이 전제되지 않은 만남에 진력이 난 호텔 웨이트리스 연이(진희경), 그리고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원하는 ‘처녀’ 순이(김여진) 등 극 중 치열한 고민과 갈등을 계속 하는 세 여자들과는 달리 ‘관능의 법칙’ 속 세 여자는 남자와의 근사한 섹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판타지 속 여주인공처럼 보인다.
그러나 ‘관능의 법칙’은 꽤 잘 만들어진 상업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절대 평가가 아닌 상대 평가적 측면에서 그렇다는 말을 꼭 덧붙여야만 한다. 안타깝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