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트윈스 출신' 휴스턴 야구협회장 윤찬 씨를 만나다

미국 스포츠 여행 (14)

2014-05-13     박정근 편집위원

[휴스턴=박정근 호서대 교수(인터내셔널스포츠그룹: ISG 대표이사)] 윤찬 휴스턴 야구협회장은 화려한 야구 경력을 갖고 있다. 미국 대표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1991년 한국 프로야구 LG트윈스에 입단해 5년간 선수로 활약했다.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휴스턴의 루비스로 향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훤칠한 체격에 선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윤찬 씨는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음식을 주문했다. 나는 그의 영어 실력에 굉장히 놀랐다. 사실 야구선수 출신이라 영어가 서툴 줄 알았는데 완전 본토 발음이었다. 그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 와서 지냈고 성인이 된 이후 한국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윤찬 씨와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윤찬의 일문일답

- 스페인 여행을 간다고 들었다.

▲ 축구선수 출신인 아버지께서 바르셀로나의 메시 경기를 꼭 보고 싶다고 해 아버지와 함께 스페인에 갈 예정이다.

-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

▲ 아내와 딸 하나가 있다. 집사람은 부동산 사업을 도와주고 있고, 딸은 현재 11학년이라 미국대학입학시험(SAT) 준비로 한창 바쁘다.

- 선수시절이나 그 이후에도 인터뷰는 많이 했었나.

▲ 거의 없었다. 인터뷰는 현재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효봉 씨가 기자로 있을 때 한 번 해보고 처음이다.

- 언제 야구에 입문했나.

▲ 1978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해 중학교 1학년 때 리틀야구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되기도 했다. 그러다 중학교 1학년 때인 1980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1991년에는 한국에서 열린 제 4회 IBA회장배 국제 야구대회에 미국대표로 참가했었다. 그 대회 때 LG 트윈스 측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고 입단하게 됐다. 당시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었지만 실력이 부족했다. 마침 백인천 감독께서 좋게 봐주셔서 입단하게 됐고 이듬해인 1992년에는 이광환 감독께서 취임했다. 이 감독은 미국식 야구를 기초로 팀을 운영해 나에게 많은 기회를 줬다. 한국에서 프로선수로서의 생활은 1991년부터 1995년까지 5년 정도 LG에서 3루수로 활약했다.

- 좋은 활약을 보였는데 왜 선수를 그만뒀나.

▲ 어깨를 다쳐서 그만두게 됐다. 그리고 부상을 당했을 때 한국 프로야구는 용병을 처음 뽑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용병이 오기 전까지 내가 용병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활약할 때도 미국 문화에 많이 젖어 있어 한국 생활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 허구연 해설위원과 박용진 LG 2군 감독께서 많은 위로를 해줬고 지금까지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1996년 현역 은퇴 후 1년 동안 구단 프런트에서 근무했다. 당시 1년 동안 돔구장 사업부에서 근무했는데 영어와 관련되는 모든 일을 도맡아했다. 당시 LA 다저스 감독이었던 톰 라소다 감독이 방문했을 때 통역도 했었다.

-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나.

▲ 미국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부동산 쪽 일도 하고 있다. 그리고 휴스턴 야구협회 일도 맡고 있는데 2년마다 한 번 씩 열리는 미주지역 대회를 제외하고 특별히 해야할 일이 없어 모든 일을 소화할 수 있다.

- 여행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 1996년 야구와 관련된 일을 그만 둔 이후 내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때 미국의 큰 여행사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입사하게 됐다. 2년 정도 여행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여행사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고 당시 여행사를 팔겠다는 제안이 와서 인수했다. 당시 1998년부터 미국의 여행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인터넷이 발달하다 보니 문을 닫는 여행사가 늘어났다.

하지만 지금은 여행사간의 경쟁이 줄어들어 더 잘되고 있다. 주요 고객층만 관리해도 괜찮은 편이다. 15년 정도 이 일을 하다 보니 단골 고객도 많이 늘었고 휴스턴 지역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부동산 사업을 같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동산 사업을 같이 한 지도 10년 정도 됐는데 하나의 기업처럼 성장했고 아내도 같이 일하고 있다.

- 야구보다 사업으로 더 성공했다.

▲ 감사한 일이다. 31살에 야구를 그만뒀다. 특히 LG 2군 시절 오키나와 훈련 중 구단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 무척 서러웠다. 그때는 야구를 그만둬 아쉬움이 컸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사업을 시작하기 적당한 나이라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 휴스턴 야구협회 회장이다. 야구관련 일을 해야 하지 않나.

▲ 기회가 된다면 어떤 일이든지 하고 싶다.

- 댈러스에서는 추신수 때문에 교민과 학생 사이에 ‘고추클럽’, ‘추인달’ 등 많은 서포터스가 생겼다. 추신수가 휴스턴 팀과 경기할 때 휴스턴 야구협회가 주관이 돼 응원할 생각은 없나.

▲ 개인적으로 추신수 경기를 관람하겠지만 사람들을 모아 응원할 생각은 없다. 추신수와 수준은 차이가 나지만 나름 선수 출신이라 조용히 관람하면서 선수들의 움직임이나 경기력을 관찰하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공식적인 응원은 체육회에서 계획하는 걸로 알고 있다.

- 이제 야구는 안 하나.

▲ 볼이 잘 안 보여 못하겠다. 잘못하면 다치기도 하고. 이곳에서는 거의 소프트볼을 많이 한다. 60세 넘은 사람들도 많이 참가하고 잘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야구선수 출신으로 몸은 예전처럼 안 따라주지만 아직 구력이 남아 있어 굉장히 잘한다. 이곳의 소프트볼 시즌은 4월이면 시작한다.

- 야구 관계자들과 교류는 하고 있나.

▲ 이전에는 야구관계자들을 많이 만났지만 최근에는 뜸한 편이다. 한국에서 프로 생활도 해서인지 처음 미국에 돌아왔을 때는 야구인들이 많이 찾았었다. 지난해 12월초 박용진 감독과 만났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국내 야구장 펜스와 관련해서 플로리다 구장을 방문했을 때 만났었다.

- 개인적인 질문이다. 한국의 유명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고 있다. 혹시 휴스턴 애스트로스나 산하 마이너리그에 한국 선수를 진출시킬 네트워크는 없나.

▲ 헨드릭스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운영하고 있는 헨드릭스 형제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 이들은 로저 클레멘스 에이전시도 했을 만큼 유능한 친구들이다. 그들은 휴스턴에 있는 스프링우드 고등학교 야구부의 직속 선배이기도 하다. 휴스턴에 있는 소프트볼 리그에서 같이 경기를 뛰고 있을 정도로 가깝다.

- 만약 한국 야구선수들을 휴스턴 지역 커뮤니티 칼리지 야구팀과 연계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한다면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나.

▲ 좋은 선수를 추천해 보낸다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최대한 도울 것이다.

- 야구와 관련된 에이전트 역할을 해보고 싶지 않나.

▲ 한국에서 에이전트 역할을 잠깐 했었다. 한국은 보수적인 것 같다고 느꼈다. 2005년 친했던 후배를 미국 메이저리그로 보내기 위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를 만나기도 했다. 당시 후배를 뉴욕 양키스 구단으로 보내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했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청룡기 대회 때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러 자주 갔다. 그때는 선수들에 관한 리포트도 작성하는 것이 행복했고 즐거웠는데 직업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동료나 선배들의 일자리를 침범하는 것 같아 그만뒀다.

- 마지막으로 야구 선수 후배를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 야구선수로 꼭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미국 와서 많은 것을 배워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영어는 본인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야구선수 출신으로 성실하게 생활하면 하고 싶은 일들이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