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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59) 기본부터 모두 바꾼 고려대 여자축구 창단 1년, 그 결과는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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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59) 기본부터 모두 바꾼 고려대 여자축구 창단 1년, 그 결과는 달콤했다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5.12.21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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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1년 만에 첫 우승으로 여자축구 다크호스 급부상…뭉치며 폭풍성장, 스페셜 '원팀' 꿈 영근다

[200자 Tip!] 지난해 11월 열 번째 여자대학 축구부로 창단한 고려대학교는 창단 1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거머쥐며 여자축구 강호로 떠올랐다. 선수들의 경험이 부족하고 대표팀 차출이 잦아 손발을 맞춰볼 시간이 늘 부족하지만 유상수(42) 감독의 남다른 축구철학과 멤버들의 노력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성공적인 첫 시즌을 마친 고려대는 2016년 더 높은 곳을 향해 담금질할 예정이다.

[안암=스포츠Q(큐) 글 이세영·사진 최대성 기자] “창단했을 때만해도 저런 슛이 나오지 않았어요. 열심히 훈련하니 지금은 남자 선수가 차는 것 같네요. 허허.”

슛 훈련에서 선수들이 연달아 감아차기 슛을 성공시키자 유상수 감독이 감회가 남다른 듯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예전에는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슛을 때려 골키퍼를 속이기 어려웠는데, 궤적을 그리는 슛으로 타이밍을 뺏었다는 것이다. 선수들의 슛이 골망을 가를수록 함성소리도 더욱 커졌다.

▲ 고려대 여자축구부 선수들이 호랑이 마크를 배경으로 포즈를 잡고 있다. 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유상수 감독이다.

고려대가 모교인 유상수 감독은 1996~2006년 부천 SK, 안양 LG, 전남 드래곤즈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보냈다. 서귀포고, 군산제일고, 수원공고 코치에 이어 2013년부터 울산 현대미포조선, 울산 현대 코치를 맡은 뒤 여자축구 무대에 뛰어들었다.

창단 1년 만에 전국대회를 제패하는 등 일취월장한 고려대 여자축구부. 하지만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은 건 아니었다. 여자축구에 처음 발을 디딘 유상수 감독이나 처음으로 대학축구에 몸을 담근 선수들 모두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했기에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창단 당시 “우승까지는 예상하지 않는다”고 했던 유상수 감독은 “그땐 우승 욕심이 없었다. 다른 학교 선수들이 모두 고학년이기 때문에 전반기에는 어렵다고 봤다. 대신 적응기를 마친 후반기에는 팀이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수 개개인 능력치는 높기 때문에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 수 있을 거라 봤다”고 말했다.

◆ '강약조절'에 집중, 기본부터 바꾼 결과는 달콤했다

후반기에 초점을 맞추고 훈련에 매진한 결과, 고려대는 전국체전 우승이라는 위대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4승 1무 1패의 전적으로 춘계여자축구연맹전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가능성을 확인한 고려대는 지난 10월 22일 열린 전국체전 여자축구 결승에서 제주국제대를 3-0으로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창단 11개월 만에 첫 우승 쾌거를 올린 것.

고려대가 짧은 시간에 여자축구 정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건 기본부터 다시 시작한 유상수 감독의 과감한 결정이 한몫했다.

유상수 감독은 “창단식을 하자마자 동계훈련을 갔는데 첫 3주 동안에는 그저 선수들이 어떻게 공을 차는지 밖에서 지켜보기만 했다”며 “여자축구에 먼저 몸담은 선배들에게 ‘선수들이 왜 이런 플레이가 안 되는지’에 대해 물어봤는데, 돌아온 대답은 ‘여자라서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선수들이 배우지 않아서 안 되는 것 같더라. 그래서 선수들에게 ‘안 되는 건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힘을 실어줬다”고 강조했다.

▲ 유상수 감독은 기존 지도자들이 갖고 있던 편견을 깨고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가장 안 되는 부분이 패스와 킥의 강약조절이었다. 정교한 축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술을 짜도 실현되기 어려웠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습관을 버리면서 새롭게 기본기를 익히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했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는 달콤했다. 전국체전 8강전에서 강호 여주대를 4-1, 준결승에서 한양여대를 6-2로 크게 이긴 것. 특히 한양여대전에선 선제골을 허용하고도 이를 극복해 의미가 깊었다. 준결승을 뛴 주장 김예진(21)은 “첫 골을 허용했지만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파이팅하자고 독려했고 동점골을 넣은 이후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상수 감독은 “여주대전과 한양여대전이 올해 우리가 치른 경기 중 경기력이 가장 좋았다”며 “패싱력과 경기 운영능력, 골이 터진 과정 등 웬만한 남자팀에서도 나오기 힘든 장면이 있었다”고 힘줘 말했다.

유 감독은 “선수들에게 ‘기본기가 완성되면 너희들이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공을 찰 수 있을 것이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선수들이 열심히 해줬기에 부족했던 부분이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웃었다.

◆ 전체 41.7%가 태극마크, '국가대표 군단'의 명과 암

아무리 전력이 좋아도 스쿼드의 변화가 잦으면 그 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운 법. 이런 면에서 고려대는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 많은 선수들이 대표팀 소집으로 자주 자리를 비워야 했기 때문이다.

신입생 7명까지 포함한 선수단 24명 중 42%에 해당하는 10명이 올해 태극마크를 단 경험이 있다. 개개인의 기량이 출중하다보니 연령별 대표팀에 자주 소집됐다.

▲ 유상수 감독의 조련 결과 고려대 선수들은 패스와 슛의 강약조절에서 적잖은 성과를 봤다. 공을 몰고 있는 남궁예지(왼쪽).

유상수 감독은 “선수들에게 대표팀의 일원이기 전에 고려대 선수임을 주지시켰다”고 강조했다. 그는 “태극마크를 단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들의 조화에 많은 신경을 썼다. 대표팀 선수들이 오랜만에 돌아와도 팀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끔 주의를 기울였다”며 “그 부분만 잘 되면 경기력이 유지될 수 있을 거라 봤다”고 말했다.

아울러 “아직 선수들이 어리기 때문에 대표팀에서 돌아오면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런 생각을 버리게 하는 게 코칭스태프의 몫이다. 이 아이들이 대표팀에 들어간다고 해서 대표팀 선수가 아니다. 우리팀 선수다. 이 점을 선수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 팀워크가 사라지면 아무리 좋은 선수가 많아도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없다”고 단언했다. 선수들 간에 위화감이 조성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쓴 유 감독이다.

◆ '축구도 중요하지만'…유상수 감독이 선수들에게 당부하는 점은

고려대에서 국가대표로 차출된 선수들은 국제대회에서 이따금씩 좋은 성과를 거뒀다. 고려대 선수 7명이 포함된 19세 이하(U-19) 대표팀은 올해 8월 열린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여자 챔피언십에서 3위를 차지, 내년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U-20 여자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다.

국제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남자 선수들처럼 해외 빅클럽에 진출하면서 탄탄대로를 밟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여자축구는 남자축구에 비해 세계적으로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잘 아는 유상수 감독은 “선수들을 볼 때 안쓰럽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 창단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김예진은 "신입생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주장으로서 이들을 잘 이끌겠다"고 말했다.

“남자 선수들처럼 성인 리그에서 메리트가 크지 않아요. WK리그 드래프트에서 1순위에 지명돼도 계약금이 3000만 원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너희들이 대학 때 뭐라도 해놓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말해줍니다. 어떨 때는 ‘너희에게 지금 축구가 문제가 아니다. 다른 학과 사람들과 관계를 넓혀서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해요. 아직 저학년이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대학원 진학, 선생, 교수 등 몇몇은 이미 졸업 후 진로를 정했어요.”

◆ '창단멤버의 자부심 안고 달린다'…안암골 호랑이의 2016년은

비록 현실은 열악하지만 고려대 선수들은 내년에도 힘차게 달릴 예정이다. 창단 멤버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주장 김예진은 “우리를 보고 축구를 하려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때로는 부담감이 있지만 창단 멤버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새해에도 열심히 뛰겠다. 개인적으로는 한양여대를 졸업한 뒤 고려대에 재입학해 1기 주장을 맡고 있는데, 내가 열심히 하면 후배들도 잘 따라올 것이라 확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상수 감독도 “여기 있는 선수들이 창단식을 같이 치렀고 한 명의 이탈자 없이 지금에 이르렀다. 1기 멤버는 평생 남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니 선수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 부상선수를 제외하고 한 명의 예외도 없다. 고려대 모든 선수들은 훈련시간 동안 모두 같은 강도의 훈련을 소화하며 기량 향상을 꾀했다.

유 감독의 말을 빌리면 고려대의 2015년은 정신없이 지나간 한해였다. 창단식 이후 전지훈련을 갔고 시즌 중에는 적응하느라 정신없었다. 쉴 새 없이 발생하는 부상자를 체크하는 것 역시 고된 일이었다.

내년에는 기존 선수 17명에 새롭게 합류한 신입생 7명 등 총 24명의 선수단을 운영한다. “신입생 수가 적어서 이들이 위축될까봐 걱정이다”며 운을 뗀 유 감독은 “기존 선수들에게 ‘너희들이 잘 챙겨줘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선후배가 끈끈하게 연결된 ‘원팀’으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고려대 특유의 끈적끈적한 축구가 발휘될 것이라 봤다.

김예진 역시 “신입생들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재학생들이 엄격하게 대하기보다는 같이 이끌어가는 분위기를 만들려 한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취재후기] 많은 전문가들이 내년 시즌을 지배할 팀으로 고려대를 꼽고 있지만 유상수 감독은 “스포츠는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어느 대회에서 우승하겠다는 말보다는 선수들이 하나가 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강팀이 될 만한 조건을 갖췄지만 유 감독의 눈에는 아직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많다. 비주전들의 기량을 끌어올려 어떤 상황에서든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는 게 유 감독의 가시적인 목표다. 전국대회 정상에 올랐지만 다시 도전자의 마음가짐으로 다음을 준비하려는 유 감독의 겸손한 마인드를 읽을 수 있었다.

▲ 고려대 선수들이 오후 훈련이 끝난 뒤 코칭스태프와 미팅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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