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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의 품격' 보여준 히츠펠트의 아름다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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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의 품격' 보여준 히츠펠트의 아름다운 퇴장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07.02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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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 잡겠다"던 약속 지키며 아르헨티나 혼쭐

[스포츠Q 민기홍 기자] 이렇게 멋질 수 있을까. 역사에 남을 지도자 한 명이 월드컵을 은퇴무대로 필드를 떠났다. 오트마르 히츠펠트(65 독일) 감독은 떠나는 순간까지도 품격을 지키며 명장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줬다.

히츠펠트 감독이 이끄는 스위스 대표팀은 2일(한국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코린치앙스 경기장에서 열린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 16강전에서 연장 후반 13분에 앙헬 디마리아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아르헨티나에 0-1로 아쉽게 패했다.

대회 전 이미 은퇴를 선언한 히츠펠트 감독은 이 경기를 끝으로 축구인생을 마무리하게 됐다. 경기 후 그는 FIFA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스위스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며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는 경기였다”고 선수들을 치켜세웠다.

중요한 일전을 앞둔 그는 전날 비보를 전해들었다. 형 빈프라이드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것. 그러나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냉철하게 경기를 준비하며 ‘메시 봉쇄책’을 궁리할 뿐이었다.

그는 결전을 하루 앞두고 “우리 선수들, 우리 수비를 믿는다"며 "어떻게 리오넬 메시를 막는지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말처럼 스위스 선수들은 이날 메시의 패스 길목을 차단하며 아르헨티나에 전혀 밀리지 않는 경기를 치렀다.

임팩트 있는 장면을 만든 것은 오히려 스위스였다. 미드필더를 생략하고 빠르게 전방으로 패스를 찔러 날카로운 장면을 연출했다. 그라니트 자카와 요시프 드르미치가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

‘우승 청부사’ 히츠펠트의 숱한 경험과 지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경기였다.

독일 출신의 그는 1983년 지도자로 입문했다. 스위스 추크 94와 FC아라우,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등을 거치며 서서히 이름을 알린 그는 1991년 고국인 분데스리가에서 영입 제의를 받았다.

히츠펠트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옮긴 후 세계적인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그가 부임하기 전 리그 10위에 그쳤던 도르트문트는 1995년에는 리그를, 1996~1997 시즌에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를 거머쥐는 강팀으로 올라섰다. ‘올해의 감독상’은 당연히 그의 차지였다.

1998년에는 최고의 클럽 바이에른 뮌헨으로 둥지를 옮겼다. 리그 3연패는 물론 2000~2001 시즌 다시 UCL에서 우승컵을 들며 에른스트 하펠에 이어 두 개의 다른 클럽에서 유럽 챔피언에 오른 두 번째 감독이 됐다. 분데스리가에서만 7번의 우승컵을 획득해 '장군(Der General)'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뮌헨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히츠펠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08년부터 축구 인생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스위스대표팀을 맡게 된 것이다. 당시 FIFA 랭킹 45위에 불과하던 유럽의 축구 변방 스위스는 명장의 지도 아래 좀처럼 지지 않는 팀으로 변모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팀 스페인을 유일하게 잡은 팀이 스위스였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경기력으로 에콰도르와 온두라스를 가볍게 제압하고 프랑스에 이어 E조 2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 8년 만에 16강에 오르는 큰 성과를 거뒀다.

그는 축구계의 큰 어른답게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며 축하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히츠펠트는 “8강에 진출한 아르헨티나에 축하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아르헨티나는 정말 대단한 팀이었다”며 혈투를 펼친 적을 치켜세우는 매너까지 보여줬다.

히츠펠트 감독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이 자랑스럽다”며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조용한 삶을 살기 위해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한다"며 화려했던 지도자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도력, 매너, 외부 상황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냉철함까지. ‘명장’의 마지막 가는 길은 품격이 넘쳐흘렀다. 마지막 승부는 패배였지만 이를 모두 잊게끔 하는, 실로 ‘아름다운 퇴장’이었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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