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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들도 찬사 보낸 아름다운 16강 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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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들도 찬사 보낸 아름다운 16강 패자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7.02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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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스위스·알제리·미국, 연장 접전 끝 '장렬한 퇴장'…멕시코도 막판 역전패에 눈물

[스포츠Q 박상현 기자]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 16강전이 끝났다. 조별리그 48경기를 통해 본선진출 32개팀 가운데 16개팀이 짐을 쌌고 16강전 8경기를 통해 다시 8개팀이 귀국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 16강전은 사상 유례없는 치열한 '전투'였다. 모든 경기가 한두골 차이에 그쳤고 8경기 가운데 무려 5경기가 연장전이었다.

16강전 8경기에서 5경기가 연장까지 치러진 것도 역대 최다이거니와 모든 경기가 2점차 이내로 끝난 것도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뜨거운 16강전이었다는 얘기다.

그런만큼 16강전을 이기고 8강에 오른 팀 뿐만 아니라 패한 팀도 아름답게 퇴장했다. 이긴 팀은 물론이고 진 팀도 관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스위스와 알제리, 미국, 멕시코, 칠레 등이 보여준 당당한 모습은 모든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이번 월드컵에서는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처음으로 각 조에서 2위를 차지한 팀이 모두 물러났다. 그러나 이들은 강호로 꼽히는 조 1위 팀들을 상대로 멋진 경기를 펼쳤다.

◆ 16강 진출도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알제리의 '팔색조' 전술 축구

8강 진출에 실패한 팀 가운데 '사막의 여우' 알제리가 가장 뜨거웠다. '언더독' 알제리는 브라질 월드컵을 자신의 대회로 만들었다. 알제리는 당초 한국과 벨기에, 러시아와 함께 H조에 묶여 16강 진출도 어려울 것으로 평가받았던 팀이었다. 수많은 전문가들은 알제리가 H조 최하위에 머물 것으로 봤다. 한국도 '1승 제물'로 여겼던 아랍팀이었다.

하지만 알제리는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여줬다. 벨기에를 상대로 페널티킥으로 먼저 골을 뽑아내며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갔다. 선 수비, 후 역습 작전으로 나서며 후반 25분 마루안 펠라이니(27·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동점골을 내줄 때까지 벨기에를 몰아붙였다.

벨기에전에서 비록 1-2로 졌지만 이는 알제리가 보여줄 전술 축구의 시작이었다. 바히드 할리호지치 감독은 공격 전술을 위해 선발 선수 가운데 5명을 바꾸는 대변혁을 단행했고 이는 한국을 4-2로 꺾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알제리가 상대팀의 뒤통수를 치는 전술축구는 독일과 16강전에서도 빛났다. FIFA 세계 랭킹 2위 독일을 맞아 알제리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며 전후반 90분을 득점없이 끝냈다. 비록 연장전에 들어 급격하게 체력이 저하되면서 두 골을 내주긴 했지만 후반 추가시간에 만회골을 넣는 불굴의 모습은 독일을 진땀흘리게 만들었다.

외신 역시 알제리의 선전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AP통신은 "경기가 끝난 뒤 경기장엔 알제리의 연호하는 팬들의 함성이 가득했다. 엉성한 조직력의 독일이 짜임새 있는 알제리에 고전했다"고 전했고 뉴욕 타임스 역시 "알제리의 창의적 플레이가 놀라웠다"고 찬사를 보냈다.

경기가 끝난 뒤 할릴호지치 감독은 "강한 팀을 상대로 경기 막바지에 두 골을 내줬다. 우리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기에 매우 실망이 크다"며 "그러나 우리는 알제리 역사 최초로 16강까지 왔기 때문에 알제리 축구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퇴장 인사를 전했다.

독일의 요아힘 뢰브 감독은 "알제리는 매우 좋은 팀이었다. 선제골을 뽑지 못했더라면 계속 어려운 경기를 펼쳤을 것"이라며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상대 골키퍼가 최고의 활약을 보여젔다. 알제리는 롱 패스로 우리 압박을 피해갔고 우리의 취약 부분을 잘 공략했다"고 어려운 경기였음을 시인했다.

◆ 아르헨티나·벨기에와 당당히 맞섰던 스위스와 미국

알제리가 약체였다면 아르헨티나와 벨기에와 당당히 맞선 스위스와 미국은 언더독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전력상 약간 밀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연장까지 몰고가는 만만치 않은 집념을 보여줬다.

스위스가 연장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르헨티나의 공격 패턴을 완벽하게 분석한 덕분이었다. 아르헨티나가 리오넬 메시(27·바르셀로나) 외에는 이렇다할 공격 루트가 없다는 것을 이미 파악했고 왼발을 주로 쓰는 메시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메시가 공을 잡으면 순식간에 2, 3명이 둘러싸는 스위스의 질식수비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스위스가 수비만 했더라면 아르헨티나와 조별리그 2차전에서 0-1로 졌던 이란과 별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스위스는 '알프스의 메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제르단 샤치리(23·바이에른 뮌헨)를 앞세워 아르헨티나의 수비진을 위협했다.

스위스는 아르헨티나의 수비를 뚫는데 실패했지만 탄탄한 수비와 역습으로 끝까지 승리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다. 스위스가 마지막 공격에서 슛이 골대를 맞고 나오는 불운만 아니었다면 극적인 동점을 이뤄내 승부차기까지 갈 수도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은 "승부차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운좋게도 120분 안에 이길 수 있었다"며 "고 말했고 디마리아 역시 "운이 따른 승리"라고 평가했다. 어려운 경기였지만 운이 따랐기에 이길 수 있었다는 패자에 대한 칭찬이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미국도 강력한 전력을 자랑했다. 죽음의 G조를 통과한 미국은 벨기에와 밀고 밀리는 접전을 펼치며 승부를 연장까지 몰고 갔다.

연장 전반에만 연속 두 골을 내주는 과정에서도 미국은 19세 신성 줄리안 그린(바이에른 뮌헨)을 연장에 투입시켜 연장 후반에 한 골을 따라붙는 저력까지 보여줬다. 연장 막판 만회골로 기세를 올린 미국은 마지막까지 벨기에를 쩔쩔 매게 만들었다. 창의력이 넘치는 세트 플레이 공격 역시 발군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120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패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지만 벨기에전에서 모든 부분이 잘 이뤄졌다"며 "마치 스릴러 영화 같았다. 동점을 만들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 됐다. 오늘 경기에서 졌지만 미국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 탄탄한 스리백으로 브라질·네덜란드와 맞선 칠레·멕시코

칠레와 멕시코의 분전도 눈에 띈다. 칠레는 개최국 브라질과 맞서 연장은 물론이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대접전을 벌였고 멕시코 역시 네덜란드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으며 선전했다.

이들이 만만치 않은 전력을 과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스리(3)백 수비포맷에 있었다. 수비를 탄탄하게 하면서도 양 윙백의 활발한 오버래핑을 통해 스리백이 수비 지향 전술로 현대 축구와 맞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칠레의 스리백 시스템은 조별리그에서도 스페인을 무너뜨렸을 뿐 아니라 네덜란드와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요소였다. 특히 브라질과 16강전에서는 탄탄한 수비로 네이마르(22·바르셀로나) 등 상대의 공격 편대를 무력화시켰다. 브라질의 화려한 공격진을 120분 동안 단 한 골로 묶어낸 것은 큰 수확이다.

멕시코 역시 브라질전에서 무실점 무승부를 거둔 것을 비롯해 네덜란드를 질식 상태로 몰고갔다. 골키퍼의 선방에 무게감이 실리긴 하지만 경험이 많은 수비수 3명이 선 스리백은 그야말로 철옹성이었다.

◆ 탄탄한 수비와 골키퍼 선방, 더욱 빛나는 패배

이들 팀의 공통점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함께 탄탄한 수비와 골키퍼의 선방이 있었다는 점이다.

ESPN에 따르면 미국 골키퍼 팀 하워드(35·에버튼)는 16개의 선방을 기록하며 지난 50년간 월드컵 경기에서 골키퍼가 기록한 최다 세이브인 것으로 나타났다. 벨기에가 무려 38개의 슛을 때리고 이 가운데 27개가 골문 안쪽으로 향한 유효슛이었음에도 2골밖에 내주지 않은 것은 하워드의 선방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네덜란드에 1-2로 아쉽게 진 멕시코 역시 기예르모 오초아(29·무소속)가 아니었다면 16강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오초아는 이미 브라질과 조별리그 2차전에서 무실점 방어를 펼친데 이어 네덜란드와 16강전 역시 87분 동안 완벽한 방어 능력을 보여주며 네덜란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알제리의 골키퍼인 라이스 엠볼히(28·CSKA 소피아)와 스위스의 디에고 베날리오(31·볼프스부르크), 칠레의 클라우디오 브라보(31·레알 소시에다드) 역시 화려한 선방으로 16강전을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

오초아와 엠볼히, 하워드는 모두 패배팀 선수임에도 경기 최우수선수(맨오브더매치)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들이 없었다면 경기는 의외로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흐를 수 있었고 '명품' 16강전은 없었을 것이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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