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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도 책임도 없는 축구협회, '외통수' 미봉책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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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도 책임도 없는 축구협회, '외통수' 미봉책뿐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7.03 1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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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겠다는 감독에 사퇴 만류…아시안컵 이후 장기계획도 의문

[스포츠Q 박상현 기자]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은 역시 '유임'이었다. 그것도 그만 두겠다고 한 감독을 만류해 계속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게 만들었다.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3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의 부진한 전적을 거두고 돌아온 홍명보 감독을 계속 신뢰하고 지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신임이다.

물론 한번 성적이 부진했다고 해서 무조건 감독을 경질하는 것은 옳지 않다. 허정무 감독이 "한번 실패했다고 책임지고 물러나면 그것도 문제점"이라는 말은 당연하다.

장기 계획을 갖고 대표팀을 키우겠다는 확실한 목표 설정만 있으면 아무리 월드컵에서 16년만에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고 해도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재신임은 홍명보 감독을 중심으로 대표팀의 전력을 키우겠다는 장기 계획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3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홍명보 감독의 거취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홍명보 감독의 유임 발표를 마친 후 인사를 하고 있다.

◆ 대안 시나리오도 없는 협회

월드컵 대표팀 단장으로 브라질 월드컵을 다녀온 허정무 부회장은 "홍명보 감독이 대회가 끝난 뒤 자진 사퇴를 강력하게 요청해왔다"고 밝혔다.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겠다는 홍 감독을 다시 앉혀둔 것은 바로 대한축구협회였다.

홍명보 감독 체제로 확실하게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밀고 나가겠다면 할 말이 없지만 계약기간은 이제 6개월만 남았을 뿐이다. 내년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이 끝나면 홍 감독의 계약기간은 끝난다.

이미 수많은 지도자를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해임해왔던 대한축구협회가 가장 중요한 대회인 월드컵에서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돌아온 감독이 자진사퇴하겠다고 하는데도 앉혀둔 것은 축구협회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사정이 문제다. 대한축구협회가 홍명보 감독을 앉혀둔 이유는 간단하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외국인 지도자들의 계약이 끝나는 기간이다. 하지만 일본이 계약 만료로 떠나는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의 뒤를 이을 지도자를 발빠르게 찾고 있는 것과 달리 대한축구협회는 손을 놓고 있었다.

▲ 홍명보 한국 월드컵 축구 대표팀 감독이 지난달 3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가진 기자회견에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게다가 외국인 지도자에 비해 저렴한 연봉으로 대표팀 감독을 맡기겠다는 축구협회의 의중도 엿보인다.

현재 홍명보 감독의 연봉은 8억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외국인 지도자를 데려오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자케로니 전 감독은 12억원 선이었고 새로 선임키로 한 하비엘 아기레 감독은 연봉이 25억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외국인 지도자가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 외에 대표팀을 맡을 국내 지도자가 없다면 외국인 감독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높은 몸값 때문에 선뜻 외국인 지도자를 데려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대한축구협회의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대안 시나리오도 없다.

◆ 다양한 세계 축구 섭렵하고 익히는 일본, 한국은?

일본 축구는 외국인 지도자를 데려오면서 다양한 대륙, 다양한 국가의 감독을 데려오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는 프랑스인 필립 트루시에를 데려왔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의 '하얀 펠레' 지쿠 감독을 선임했다. 그러다가 오카다 다케시 감독으로 국내 지도자를 선임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곧바로 이탈리아의 명장 자케로니 감독을 데려왔다.

이번에는 멕시코 출신 아기레 감독이다. 북중미이긴 하지만 멕시코 축구는 남미 스타일과 유사하기 때문에 사실상 남미 감독을 데려온 것과 같다. 유럽과 남미 감독을 고르게 기용하는 기조다. 다양한 세계 축구의 흐름을 섭렵하려는 계획 운영이 엿보인다.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3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홍명보 감독의 거취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홍명보 대표팀 감독의 재신임을 발표한 뒤 거듭된 책임 추궁에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일본은 아기레 감독을 선임하기 전 콜롬비아를 이끌고 있는 아르헨티나 출신 호세 페게르만 감독에게 접촉을 하기도 했다. 이미 후임 감독은 남미로 기준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한국 축구는 기준이 없다. 일단 국내 감독으로 갈지, 외국인 감독을 선임할지에 대한 명확한 장기 계획을 세워두지 않았다. 대표팀 감독을 새로 선임할 때마다 다양한 국적의 감독이 하마평에 오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 기술위원회는 배제된 결정, 6개월 뒤라고 달라질까

홍명보 감독의 유임 결정이 기술위원회가 개입되지 않은 것은 다시 한번 대한축구협회 내에 기술위원회가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미 대한축구협회는 기술위원회조차 열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조광래 전 감독을 경질한 바 있다. 기술위원회가 아닌 집행부의 결정이었다.

이번 홍명보 감독의 유임 역시 집행부의 만류로 이뤄졌다. 기술위원회를 열어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실패에 대한 명확한 분석도 하지 않은채 홍 감독을 재신임한 것은 대한축구협회의 난맥상을 보여준다.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3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홍명보 감독의 거취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홍명보 대표팀 감독의 유임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변을 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러시아는 명장 파비오 카펠로 감독에 대한 청문회까지 여는 형국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전술전략이 없고 선수들의 투혼도 드러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홍명보 감독에 대한 명확한 재평가 없이 서둘러 재신임한 것은 면죄부를 준 것과 다르지 않다.

또 홍 감독은 이제 계약기간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아시안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재계약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평균 또는 그 이하의 성적에 그친다면 홍 감독이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어떻게 보면 6개월 단기 재신임이나 다를바가 없다. 레임덕도 충분히 예상될 수 있다.

월드컵에서 최악 성적을 거둬 경질해도 이상하지 않을 감독이 자진 사퇴하겠다는데도 애써 만류한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은 대안이 없는 가운데에서 나온 미봉적인 선택이다. 어느 지도자는 성적 부진으로 계약기간 도중 해임하고, 어느 지도자는 대표팀의 최고 증명무대인 월드컵에서 성적 부진을 보였어도 재신임하는 것은 누가봐도 원칙없다고 할 것이다.

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이 옳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당당히 책임 사퇴하고 향후 재기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도 있는 젊은 지도자를 설득을 통해 눌러 앉히는 게 지도자를 키우는 최선책이었는지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당한 최악의 0-5 참패에 차범근 감독을 중도 해임하며 희생양을 만들어 책임론을 물타기하는 정치공학을 보여주었던 대한축구협회였다. 집행부가 바뀌어도 여전히 책임론의 줄타기 속에 미봉 선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대한축구협회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드러난 기술 수준뿐 아니라 행정 역시 대한민국 축구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스스로 만든 외통수에 걸려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국 축구는 지금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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