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8:36 (목)
[SQ포커스] 10년 투자와 자기혁신으로 일군 신전차군단 전성시대
상태바
[SQ포커스] 10년 투자와 자기혁신으로 일군 신전차군단 전성시대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7.14 1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통적인 선 굵은 축구 대신 점유율 축구…스페인 강점 흡수하고 강력한 역습 무장

[스포츠Q 박상현 기자] '게르만 전차군단'이 다시 한번 세계 축구 최정상에 섰다. 세계 축구와 유럽 축구의 흐름에서 밀려났다고 평가받았던 독일이 '업그레이드 티키타카'로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독일은 14일(한국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에스타지우 마라카닝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8분 마리오 괴체(22·바이에른 뮌헨)의 선제 결승골로 1-0으로 이기고 24년만에 월드컵 트로피를 가져왔다.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꺾고 통산 세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이후 독일의 축구는 정체됐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녹슨 전차'라는 조롱까지 들으며 4강 진출에 실패했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역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채 7위에 그쳤다.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인 게리 리네커는 "축구는 22명이 공을 쫓아 90분 내내 뛰어다니다가 결국 독일이 이기는 경기"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독일 축구의 강력한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 장점 전통은 살리고 신유물 과감하게 받아들이다

독일 축구의 그동안 이미지는 '선이 굵은 축구'였다. 강력한 체력과 힘, 스피드를 바탕으로 긴 패스를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독일은 단순히 체력과 힘, 스피드만으로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1996년 유럽축구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2000년과 2004년 대회에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한채 16강도 오르지 못했던 것은 독일의 각성을 불러왔다.

루디 푈러의 뒤를 이어 2004년 위르겐 클리스만 감독이 취임한 뒤 독일은 과감한 개혁에 들어갔다. 그 개혁의 중심에는 클린스만 감독을 보좌한 요아힘 뢰브 수석코치가 있었다.

클린스만 감독의 지도력이 뛰어나긴 했지만 독일 축구 대표팀의 '브레인'은 현재 감독인 뢰브 수석코치였다. 뢰브 수석코치는 현역 시절은 그리 빛을 보지 못한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지만 슈투트가르트와 페네르바체, 칼스루헤, 티롤 인스부르크, 오스트리아 빈 등 독일과 터키, 오스트리아 등 다양한 클럽을 지도하면서 세계 축구 전술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 때부터 독일 축구가 달라졌다. 수비 지향 전술을 버리고 공격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카리스마와 뢰브 수석코치의 탁월한 전략과 지략은 완벽한 호흡이었고 시너지 효과를 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며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보다 순위가 한 계단 떨어졌지만 경기력은 오히려 올라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클린스만 감독의 사퇴 뒤 지휘봉을 잡은 뢰브 감독은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에서 스페인에 0-1로 져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역시 뛰어난 경기력을 인정받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잉글랜드를 4-1로 꺾고 역시 3위에 올랐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어린 선수들의 대거 기용됐고 빛을 발했다는 점이다. 골든부트(득점왕)와 영플레이어 등 2관왕에 오른 토마스 뮐러(25·바이에른 뮌헨)가 스타로 떠오른 대회가 바로 남아공 월드컵이었다.

이외에도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28)를 비롯해 토니 크로스(24), 제롬 보아텡(26·이상 바이에른 뮌헨), 사미 케디라(27·레알 마드리드), 메주트 외칠(26·아스널) 등 브라질 월드컵의 우승 주역들이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독일이 젊은 선수로 과감한 세대교체를 하면서도 다시 한번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구시대의 유물은 버리지만 장점인 전통은 그대로 살리고 세계 축구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체력만 앞세우는 축구는 버리지만 뛰어난 체력과 스피드는 역시 독일의 장점이었다. 여기에 롱 패스 위주의 경기 운영을 버리고 짧은 패스를 위주로 한 점유율 축구를 접목했다. 스페인의 티키타카와 독일 전통의 체력을 앞세운 역습 축구가 힘을 발휘했다.

◆ 한 나라의 축구는 리그의 발전에서 비롯된다

여기에는 우수한 외국인 지도자들이 독일 분데스리가에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30·바이에른 뮌헨)은 최근 독일 언론 빌트와 인터뷰에서 "우수한 외국인 지도자들이 분데스리가에 들어온 것이 독일 대표팀의 수준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루이스 판할 감독은 투박한 독일 축구에 세련된 기술을 더해 2009~10 시즌 바이에른 뮌헨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바르셀로나에서 꽃을 피운 티키타카를 바이에른 뮌헨에 이식했다.

그 결과 바이에른 뮌헨에는 그동안 독일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테크니션이 늘어났다. 괴체와 외칠, 크로스, 슈바인슈타이거 등이 그들이다. 뮐러도 이를 잘 받아들이며 영리한 경기 운영 능력을 갖췄고 케디라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활동할 정도로 기술이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았다.

이러면서도 독일의 체력과 강력한 역습은 여전했다. 바로 그 전술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것이다. 도르트문트는 독일 전통의 선이 굵은 축구를 고수하면서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바이에른 뮌헨과 양강을 이루고 있다. 2012~1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바이에른 뮌헨과 자웅을 겨루기도 했다. 독일이 전통축구와 티키타카를 효율적으로 조화시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독일 분데스리가 자체의 개혁이었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1980년대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명성이 무색해질 정도로 발전이 더뎠다. 1990년대 중반에 가서는 막 출범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 장족의 발전을 이루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까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유럽 리그에서 네번째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했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2004년부터 과감한 개혁을 준비했다. 한 나라의 축구 수준이 발전된 리그에서 비롯된다는 매우 단순명료한 명제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각 구단의 재정 시스템을 바꿔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한편 분데스리가의 1, 2부 리그 구단들은 모두 필수적으로 유소년 시스템을 갖추도록 했다. 특히 유소년 육성 시스템은 독일 분데스리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었다. 우수한 선수 육성을 위해 지난 10년동안 1억2000만 달러(1223억원)을 과감하게 투입했다. 그 결과 지금 독일 대표팀의 주축이 육성됐다.

또 순수 '게르만 혈통'만 뛸 수 있다는 순혈주의 원칙도 과감하게 버리면서 독일 축구의 새로운 모델이 만들어졌다. 중앙 수비수 제롬 보아텡은 가나 출신이지만 독일을 선택한 케이스다. 제롬 보아텡의 형인 케빈-프린스 보아텡은 가나 대표팀을 선택했다.

이에 대해 슈바인슈타이거는 "독일의 유소년 축구 집중 육성책이 빛을 발했다. 그 결과 괴체같은 선수들이 발굴됐다"고 평가했고 리브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 정점에 올랐다. 미래가 밝다. 외칠이나 쉬를레, 노이어, 케디라는 모두 향후 몇년간 독일을 세계 정상으로 이끌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 모든 징크스와 저주를 깬 강력한 '원팀'

영화 '어벤저스'에서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헐크, 토르, 호크아이, 블랙 쉐도우는 처음에는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 이기주의 화신인 아이언맨은 캡틴 아메리카와 부딪히다가 사분오열되고 결국 토르의 동생인 록키에게 유린당한다.

하지만 그 영웅들이 어벤저스라는 이름 아래 비로소 하나로 뭉치자 강해졌다. 아이언맨은 자신이 직접 원자폭탄을 우주로 갖고 들어가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고 외계인과 전쟁에서 승리한다.

독일 축구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축구의 영웅들이 하나의 팀으로 뭉쳤고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어벤저스'가 됐다. 필리프 람(31·바이에른 뮌헨)은 캡틴 아메리카였고 뮐러와 외칠, 크로스 등 모든 선수가 아이언맨이고 헐크이고 토르였다.

'캡틴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27·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서서히 원팀으로 변모해갔지만 메시 외에는 전혀 활로를 뚫지 못한 아르헨티나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강력한 원팀 앞에서 징크스와 저주도 모두 무색해졌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 당시 브라질이 우승을 차지한 것 외에는 유럽 대륙에서는 유럽 국가가 우승했고 남미 대륙에서는 남미 국가가 정상에 올랐다. 가장 강력한 징크스인 대륙 징크스를 독일이 우습게 깼다. 또 포르투갈과 가나, 미국에 이어 알제리와 프랑스, 브라질까지 아시아를 제외한 유럽, 아프리카, 북중미, 남미 등 4대륙을 압도했다.

여기에 펠레의 저주도 독일 앞에서는 힘을 잃었다. 펠레가 월드컵 직전 우승후보로 독일을 거론했고 독일은 펠레가 맞힌 첫 월드컵 우승팀이 됐다.

또 독일은 항상 앞서있는 순간에서도 집중력을 발휘한다. 브라질과 4강전에서 5-0으로 앞서있었음에도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노이어는 7-0으로 크게 앞선 상황에서 골을 내주고 아쉬워할 정도로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만족하지 못했다. 브라질을 대파하고 결승에 올랐지만 아르헨티나전에서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선발로 예고됐던 케디라가 경기 직전 부상으로 제외됐음에도 큰 공백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 역시 조직력으로 뭉친 원팀이었기에 가능했다. 어느 선수가 대신 자리를 메우더라도 최상의 결과를 내는 팀이 바로 독일이었다.

tankpark@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