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3-02-06 09:05 (월)
[SQ포커스] 축구종가 자존심 벗어던진 잉글랜드의 독일 배우기, 한국은?
상태바
[SQ포커스] 축구종가 자존심 벗어던진 잉글랜드의 독일 배우기, 한국은?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7.18 0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축구 철학 수립·기존 정책 근본부터 재평가…독일 성공사례 배우기 총력

[스포츠Q 박상현 기자] 독일과 잉글랜드는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00)에서 같은 조에 들었지만 각각 1승2패(잉글랜드), 1무2패(독일)의 성적으로 8강에 오르지도 못하고 탈락한다. 유로2004에서는 잉글랜드가 8강까지 올랐지만 독일은 다시 한번 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하는 굴욕을 맛본다.

하지만 10년 뒤 잉글랜드와 독일의 차이는 너무나 크게 벌어졌다. 독일은 2014년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잉글랜드는 1무2패의 전적으로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독일은 24년만에 통산 4번째 월드컵 우승의 영광을 안았지만 잉글랜드는 56년만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맛봤다.

17일 발표된 '포스트 월드컵' FIFA 랭킹은 더욱 극과 극이다. 독일은 1994년 6월 이후 무려 241개월만에 FIFA 랭킹 1위 자리를 탈환했지만 잉글랜드는 1996년 6월 24위를 차지한 이후 217개월만에 가장 낮은 20위까지 추락했다.

이미 잉글랜드 축구는 '종가'로서 그 위상을 완전히 상실했고 자존심까지 꺾였다. 세계 최고 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도 사라졌다. 잉글랜드가 받은 충격은 한국 축구가 16년만에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 그 이상이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자존심까지 내던졌다. 18일 '잉글랜드가 독일의 성공을 복제할 수 있겠느냐'는 특집 진단기사까지 내놓으며 잉글랜드의 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 '복제(copy)'라는 말까지 썼다는 것은 상당히 굴욕적이다.

한편으로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잉글랜드의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위기가 찾아왔다는 한국 축구 역시 참고할만한 사항이다.

◆ 축구 철학을 재정립하라

BBC가 가장 먼저 손꼽은 것은 바로 축구 철학(football philosophy)에 관한 것이었다. 독일이 유로 2000과 유로 2004에서 바닥까지 성적이 떨어졌지만 이를 독일 축구와 대표팀 문제점을 근본부터 점검함으로써 개혁과 발전의 전환점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BBC의 진단이다.

독일은 10년전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과 요아힘 뢰브 감독이 각각 감독과 수석코치로 독일 대표팀의 근본 문제점에 대한 점검을 시작했고 독일축구협회는 독일 분데스리가 팀들에 유스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내놓도록 압박을 가했다.

이에 대해 클린스만 감독은 2010년 BBC 방송에 출연한 자리에서 "코치, 선수들과 워크숍을 열어 어떻게 경기하기를 원하는지, 전세계 다른 나라들에 어떤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은지, 독일 국민들이 어떤 플레이를 원하는지에 대해 차트를 만들어 설명했다"며 "모든 나라는 각각의 문화와 특수한 환경에 맞는 축구 문화가 있다. 축구 비전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독일이 축구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내놓는 동안 잉글랜드축구협회는 유스 선수 육성 발굴을 위해 '엘리트 선수 육성 프로그램(Elite Player Performance Programme)'을 만들었다. 독일 축구가 어린 선수들의 육성 발굴로 강해졌다는 명제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분데스리가가 유스 시스템을 통해 강해졌다는 명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육성책은 오히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부자 구단만 배를 불리고 하부 팀들은 유망주들을 더욱 키우기가 어려워졌다는 부작용을 낳았다. 명확한 축구 철학 없이 '독일 따라하기'만 하다가 문제만 일으킨 것이다.

이에 대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비수로 활약했던 게리 네빌 잉글랜드 대표팀 코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잉글랜드가 독일을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장애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거나 마술지팡이를 믿는 사람들"이라며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무작정 따라하기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해서 축구 철학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BBC는 독일 축구가 선수들을 집중 교육시켰다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유럽축구연맹(UEFA)이 지난해 발간한 지도자 현황에 따르면 영국은 프로팀을 맡을 수 있는 UEFA A 라이선스를 받은 지도자가 1457명이었지만 독일은 6934명에 달했다. UEFA B 라이선스도 독일은 무려 2만1731명이었지만 잉글랜드는 절반도 안되는 9420명이었다.

◆ '골든 제너레이션'을 만들어라

BBC는 독일 축구가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에는 젊은 선수들의 기량 향상이 있었다는 점도 빼놓지 않고 짚었다.

독일과 잉글랜드는 5년 전인 2009년 UEFA 21세 이하 선수권에서 결승전에서 만났다. 당시 독일이 우승했고 잉글랜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21세 이하 선수권 우승 멤버들이 5년 뒤 고스란히 독일 대표팀에 '이식'된 것이 큰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 BBC의 분석이다. 이른바 독일의 '황금 세대', 즉 골든 제너레이션이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골든 글러브를 받은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28·바이에른 뮌헨)와 중앙 수비수 마츠 후멜스(26·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베네딕트 회베데스(26·샬케04), 사미 케디라(27·레알 마드리드), 제롬 보아텡(26), 메주트 외칠(26·이상 바이에른 뮌헨) 등 다수의 월드컵 우승 멤버들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당시 멤버 가운데 브라질 월드컵에 뛴 선수는 골키퍼 조 하트(27)와 제임스 밀너(27·이상 맨체스터 시티)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필 네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코치는 "독일은 21세 이하 선수권의 핵심 선수들을 고스란히 지켜내 이를 월드컵의 자양분으로 삼았다"며 "잉글랜드도 6~7명의 당시 멤버들을 가져갈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잉글랜드와 독일이 5년 뒤 근본적인 차이가 난 것에 대해 필 네빌은 젊은 나이에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그 차이점이라고 주장했다.

필 네빌은 "현재 시스템으로도 충분히 기술이 뛰어난 선수들을 발굴해낼 수 있다. 비슷한 나이 또래를 비교해봐도 기술에 있어서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며 "그러나 19세에서 21세부터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출전 기회를 전혀 잡지 못한다. 나만 해도 17세에 정규 1군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21, 22세에도 그러지 못한다. 더 어린 나이에 1군에 들어가 기량을 쌓고 출전 기회를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자국 리그에서 자국 선수들이 발전해야 대표팀이 산다

흔히 대표팀의 경쟁력은 자국 리그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다. 그런데 대표팀은 약하다.

여기에는 자국 리그에서 자국 선수들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따른다. 프리미어리그처럼 외국인 선수 비중이 높다면 자국 리그의 경쟁력이 대표팀으로 이어질 수 없다.

실제로 BBC가 분석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프리미어리그에서 잉글랜드 선수의 비중은 32%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분데스리가는 독일 선수가 50%나 됐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내 자국 선수의 비중은 58%다.

이에 대해 필 네빌은 "물론 프리미어리그에 세계 최고의 선수가 오는 것은 좋지만 잉글랜드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젊은 선수들이 뛰어야 할 기회를 외국 선수들이 메우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BBC가 또 하나 지적한 것은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의 연봉 비중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끌어모으다보니 생긴 당연한 현상이다.

영국 회계조사기관 딜로이트가 발표한 2012~2013 시즌 수익 대비 선수 연봉 지출 현황에서 프리미어리그는 전체 수익의 71%에 해당하는 21억 유로(2조9181억원)을 연봉 지출에 사용하고 있었다.

분데스리가와 프리메라리가가 각각 수익의 51%와 56%에 해당하는 10억 유로(1조3896억원)에 그치고 이탈리아 세리에A도 수익의 71%인 12억 유로(1조6675억원), 프랑스 리게앙이 수익의 66% 수준인 9억 유로(1조2506억원)가 연봉 지출로 빠져나가는 것과 비교했을 때 프리미어리그의 비효율성이 잘 드러난다.

◆ 꿈나무·생활체육 발전에도 더욱 집중하라

BBC는 엘리트와 프로 스포츠에만 집중하지 말고 꿈나무 및 생활체육 발전에도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경기 관련 시설이나 인프라는 잉글랜드와 독일이 비슷하지만 생활체육 면에서는 크게 뒤진다는 것이다.

BBC는 겨울에도 마음껏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인공잔디 구장이 잉글랜드에는 639곳에 불과했지만 독일은 5000개가 넘었다고 지적했다. 독일에 인공잔디 구장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집중 투자가 있었다는 분석도 빼놓지 않았다.

현재 잉글랜드에서는 1년에 3400만 파운드(598억원)를 생활체육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쓰여지고 있다. 이 가운데 잉글랜드축구협회와 프리미어리그가 1200만 파운드(211억원), 중앙정부가 1000만 파운드(176억원)를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 정부에서는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털어놓는다.

◆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길

잉글랜드는 브라질 월드컵 실패에 따른 분석을 다각도로 내놓고 있다. 독일이 10년의 준비로 다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모습에 자극받은 뒤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성적은 바닥이었지만 몇몇 젊은 선수들이 보여줬던 활약에서 새로운 희망을 봤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잉글랜드는 현재 축구 시스템과 리그에 대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16년만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한국 축구는 지금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월드컵 이후 책임론의 소모전을 치른 뒤 이제는 차기 대표팀 감독을 누구로 정하는 것에만 시간을 소진하고 있다. 현재 K리그에 문제점은 없는지, 한국 축구의 근본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까지 신경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K리그가 지난해부터 승강 시스템을 도입하긴 했지만 이는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다. K리그 내 2군 리그는 폐지됐고 선수들은 K리그가 아닌 조금 더 많은 금액이 보장되는 중국이나 일본 등으로 급격히 빠져나가고 있다. K리그에 대한 방송중계도 제한적으로만 이뤄지면서 갈수록 관심도도 떨어지고 있다.

K리그의 근본 문제점은 깊이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줄줄이 나온다. 이런 현실은 외면한채 한국 축구의 전반적인 정책을 세우고 이끌어나갈 대한축구협회는 표류하고 있다.

잉글랜드도 축구종가라는 자부심과 명예를 모두 던져버리고 근본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 축구가 지금 무엇부터 해결해야 할지를 잉글랜드가 잘 보여주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