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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선바위에 소원 한번 빌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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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선바위에 소원 한번 빌어볼까
  • 이두영 편집위원
  • 승인 2014.02.18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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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그대' 외계인 테스트 촬영한 바위도 볼만

 인왕산 성곽길 걷기 3시간 룰루랄라

희끗희끗 헌걸차게 솟은 거대한 암봉은 당당하고도 기품이 넘칩니다. 곳곳에 널린 기암괴석은 포효하는 호랑이마냥 혹은 전설 속의 도깨비마냥 상상력을 부채질하고 바위틈에 앙바틈하게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은 저마다 멋진 산수화를 그려냅니다. 봄이면 맑은 물이 흐르고 복숭아꽃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정취는 많이 사라졌다지만, 아직도 수성동계곡이나 부암동 등에는 무릉도원을 떠올리는 풍경이 남아 있지요.

조선시대 도성의 일부였고 서울 도심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왕산(338m) 얘기입니다. 청와대 뒤쪽에 있는 산이 북악산이고 그 왼쪽으로 성벽으로 연결된 산이 인왕산입니다.
행정구역으로는 서울 종로구와 서대문구의 경계를 이룹니다. 조선시대 도성은 인왕산, 북악산(백악산), 낙산, 남산(목멱산)을 따라 축조됐지요.

▲ 인왕산 

 

문득 광화문 근처의 고층 오피스텔 사무실에서 작업하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활짝 갠 날의 푸른 숲과 커다란 화강암 암벽도 인상적이지만 눈이 하염없이 내리던 모습도 뇌리에 선합니다.

인왕산의 산수를 말할 때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가 거론되곤 합니다. 이 그림은 정선이 북악산 남쪽 기슭에 올라서, 비가 갠 뒤 맑아지는 인왕산의 근육질 바위들을 힘찬 붓질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정선이 76세 되던 해의 일이지요. 정선의 외갓집은 자하문 부근 청풍계곡에 있었습니다. 집이 큰 부자여서 풍요로움 속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강희안도 정선의 화풍을 이어받아 ‘인왕산도’라는 걸작을 남겼습니다.

인왕산은 광화문을 포함한 서울 도심을 지척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산으로 요상하게 생긴 바위가 많고 절이나 기도처 등이 많습니다. 겨울이라도 폭설만 없으면 도성을 따라 걷는 데 지장이 없고,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 등이 피는 봄이면 흥취가 더 날 것입니다.

인왕산으로 가려면 경복궁역 부근의 사직공원, 무악동 독립문역, 옥인동 수성동계곡, 청운동 창의문 부근의 청운공원, 부암동, 세검정 유원아파트 등에서 출발하면 됩니다. 어느 코스든 3시간 정도면 산행을 마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가장 대표적인 코스인 사직공원에서 출발해 선바위와 국사암을 둘러보고 범바위와 정상을 차례로 지나 청운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을 소개합니다. 이 코스를 마치면 청운동에서 경복궁역 방면으로 수시로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서 편리합니다.

 

▲ '별에서 온 그대' 촬영지. 천송이가 외계인 테스트를 한 곳.

 

▲ SBS '별에서 온 그대' 화면 캡처.

 

인왕산의 주된 감상 목표는 인왕산 서쪽 중턱에 있는 선바위입니다. 높이 7~8m, 너비 11m쯤 되는 이 바위는 해골을 연상시킬 정도로 기괴합니다. 승려가 장삼을 입고 서 있는 듯해서 선바위라 하며,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기자암’이라고도 합니다. 오랜 풍화작용으로 기반암에서 격리된 이런 바위를 ‘토르’라고 합니다.

선바위에는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과, 태조 이성계가 왕사로 삼았던 무학대사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학대사는 조선의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인물이지요. 태조가 한양 도성을 건설할 때 무학대사는 선바위를 도성의 안쪽에 두자고 주장했고 정도전은 이상적 유교국가 건설을 꿈꾸던 터라 선바위를 도성 밖에 두자고 했습니다. 이성계는 고민 끝에 정도전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이에 무학대사는 “이제 중들은 선비 책보따리나 짊어지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라며 한탄했다고 합니다.

선바위 아래에는 이성계와 무학대사, 최영장군 등 여러 신을 모신 국사당이 있습니다. 국사당은 1년 내내 굿 소리가 그치지 않는 무속신당으로 유명한데, 제가 갔을 때에도 징과 날라리 소리가 일대의 바위들을 깨울 정도로 신명나게 울려 퍼지고 있더군요.

선바위 앞에는 시멘트로 널따란 제단이 마련돼 있습니다. 제단을 만들지 않고 자연 그대로 관리했다면 훌륭한 자연명물로 남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 선바위

 

▲ 선바위는 아래쪽에 있는 국사당과 함께 소원 비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 국사당

 

 

제단 오른쪽에 있는 작은 철문을 통과해 조금만 올라가면 병풍처럼 생긴 바위가 나옵니다. 바위에 낙서가 아주 많습니다. 이 바위는 최근 SBS 인기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전지현)가 도민준(김수현)의 비범한 공간이동 능력을 시험하는 장면을 촬영한 곳입니다. 천송이는 “나 여기 북한산인데, 도민준 나 좀 구해줘”라고 손나발을 불며 외쳤지만 도 매니저는 바위 옆에 몸을 숨기고 있었지요. 천송이는 그런 줄도 모르고 “내 이럴 줄 알았어. 자기가 무슨 외계인? 슈퍼맨이야?”라며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누리꾼들을 이 장면을 ‘전지현 외계인 테스트’라며 큰 관심을 보이더군요. 저는 이 바위 앞에 퍼질러 앉아 독립문 일대의 아파트와 한성과학고를 품은 안산 등을 바라보며 과일 간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사직공원에서 등산로를 따라 걷다가 선바위로 가려면, 도중에서 중간에 왼쪽으로 빠지는 철계단으로 내려갑니다. 선바위를 보고 나서는 갔던 길을 따라 주능선으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인왕산 정상까지 가서 남산타워를 바라보면 발 아래로 수성동 계곡과 광화문 일대가 펼쳐집니다. 정상에서 조금 더 가면 기차바위로 가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거기서 선택은 기차바위를 지나 창의문으로 내려가거나, 다시 주능선으로 올라와 자하문으로 향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성곽 바깥쪽 길로 내려가면 응달이 나와 눈이 쌓이면 미끄럽습니다. 따라서 도성 안쪽의 안전한 길을 택해야 합니다.

사직공원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초반 일부 구간에만 경사가 있어서 돌계단을 오를 때 약간 숨이 찹니다. 그 외의 구간은 대체로 도성을 따라 편히 걸을 수 있습니다. 식사는 통인동의 통인시장이나 체부동의 먹자골목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인왕산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접근하기가 매우 편리하고 코스도 잘 가꿔져 있으므로 온 가족이 체력적인 부담이 없이 도성을 따라 걷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번 주말 한번 시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제가 걸으면서 지난 주요 장소를 사진으로 보여 드립니다.

▲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 산행 안내도
▲ 사직단
 사직공원에서 황학정을 지나면 성곽과 인왕산 봉우리가 나타납니다.

 

▲ 인왕산 성곽길
▲ 인왕산 성곽길.
▲ 사직공원을 지나 성곽길로 오르면 인왕산이 바짝 다가섭니다.

 

▲ 인왕산 선바위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수시로 찾습니다. 기도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기자암이라고도 하지요.

 

▲ 남산이 시원하게 보입니다.

 

▲ 인왕산에는 기이한 바위가 참 많습니다.
▲ 개나리, 벚꽃 등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면 나들이 기분 물씬 나겠지요?

▲ 성곽길에서 선바위로 내려가는 도중에 해골을 닮은 바위를 만났습니다. 바위 너머로 종로구 무악동 주택가가 보입니다.

 

 

▲ 선바위 일대
▲ SBS '별 그대' 화면 캡처. 천송이는 정장과 하이힐을 신은 차림으로 바위 위에 섰지만, 설마 실제로 인왕산에 하이힐을 신고 오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바위가 많아 하이힐은 위험합니다.
▲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방송화면 캡처
▲ 천송이가 도민준의 외계인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오른 바위입니다. 방송에서는 북한산 정상이라고 했지요.

 

▲ 인왕산 정상
▲ 인왕산 정상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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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정상
▲ 인왕상 정상에서 북한산을 바라봅니다.

 

▲ 기차바위
▲ 자하문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옛날 돌과 벽돌 따위로 섞어 쌓은 성벽이 보입니다.

 

▲ 자하문으로 내려가는 도중, 세검정과 북한산이 보이는 전망.

 

▲ 여름에 수성동계곡에서 인왕산을 바라봅니다.

 

▲ 수성동계곡

 

▲ 인왕산 산행을 마치고 자하문 쪽에서 내려오던 도중에, 체부동에 있는 시장통으로 들어갔습니다. 재래시장 분위기가 나고 60년 동안 가방, 우산 따위를 수선하고 있는 가게도 있었습니다. 시장통에서 '가방 수선' 글씨가 크게 보이므로 찾기고 쉽습니다. 저는 지고 있던 카메라 가방을 꺼내 부실하던 버클을 교체했습니다. 수선으로 자녀들을 다 성장시켰다는 팔순 아저씨의 바지런한 손논림에서 장인의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 가곡 '가고파'를 작곡한 김동진 선생이 직접 작명한 식당 '가고파'에서 순대국을 먹었습니다.국내산 재료를 이용해서 국밥과 반찬이 깔끔하고 국물도 맑았습니다. 가격도 5,000원으로 저렴했지만 내용이 좀 빈약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값을 더 받고 내용에 충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체부동 먹자골목에 있습니다.

 

▲ 체부동 먹자골목 입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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