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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생순' 스타 임오경, 감독으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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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생순' 스타 임오경, 감독으로 사는 법
  • 신석주 기자
  • 승인 2014.02.20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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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경 서울시청 감독, “국가대표 감독 가능성 제로, 꿈조차도 꾼 적 없어요”

[300자 Tip!] 최근 핸드볼이 침체에 빠져 있다. 4회 연속 우승을 노렸던 남자 대표팀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4강 진입에 실패해 10년 만에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이 좌절됐다. 충격에 빠진 핸드볼은 이제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위기감 속에 맞게되는 핸드볼 시즌 개막을 앞두고 '우생순 스타' 임오경(44) 서울시청 감독을 찾았다. 서울시청을 8년째 이끌고 있는 임 감독은 오는 22일 개막하는 ‘2014 SK 핸드볼 코리아리그’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올시즌 서울시청을 정상에 올려놓기 위한 전략과 위기의 한국 핸드볼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들었다. 그리고 미래의 국가대표 감독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었다.

[잠실=스포츠Q 글·사진 신석주 기자, 노민규 기자] 지난 14일 서울시청 핸드볼 팀 선수들의 함성으로 잠실핸드볼 보조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이달부터 팀 훈련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강도를 높이고 있었다. 워밍업을 하는 선수 뒤편으로 임오경 감독이 매서운 눈으로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그 일정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팀 훈련이 많이 하지 못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죠”라고 담담히 말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임 감독만의 여유가 묻어났다.

◆ 감독의 꿈, 쉽게 지지 않는 팀을 만들고 싶어요

이날 서울시청은 인천의 효성중과 연습경기를 가졌다. 중학생선수과의 경기인데도 불구하고 서울시청은 적극적인 몸싸움과 허슬 플레이를 펼치며 실제 경기 못지않게 적극적이었다. 경기는 전후반 30분을 마치고도 20분을 더 뛴 뒤에야 끝났다. 선수들의 유니폼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임 감독의 눈에는 아직 성에 차지 않은 듯 경기 내내 불호령이 떨어졌고 선수들도 플레이에 아쉬움을 강하게 드러냈다. “아직 팀플레이가 많이 부족해요. 더 많이 훈련해야죠”라고 말한 임 감독은 리그 개막전까지 세트플레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 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기할 때만큼 임오경 감독은 호랑이 선생님보다 더 무서웠다. 연습경기인데도 선수들을 향해 시종일관 호통을 치며 채찍질을 한다. 이런 감독님의 모습에 선수들은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고 털어놓으면서 부족한 부분을 콕 짚어주는 임 감독의 지적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고마움도 전했다.

 

▲ 서울시청 팀을 8년째 맡고 있는 임오경 감독.

하지만 선수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임 감독은 항상 더 모질 게 못할 때가 많다고 아쉬워한다는 점이다.

“제가 선수 출신이라 그들의 힘든 점을 잘 알고 있죠. 훈련이 힘들다는 것도요. 그래서 조금만 더 훈련하면 분명 효과가 있는 걸 아는데도 꾹 참고 연습을 끝낼 때가 많았어요. 제 스스로 강하지 못한 탓이겠죠. 선수들을 한 명 한 명을 보면 분명 실력도 좋고 재능도 있는 데 실력 발휘를 못할 때가 많아 너무나 안타까워요. 제가 감독으로 있는 동안 그 재능을 터트리게 해야죠. 그래서 선수들이 국가대표에 많이 포함됐으면 좋겠어요. 할 일이 참 많네요.”

서울시청은 올시즌 우승후보가 아니다. 오히려 우승후보들을 위협하는 다크호스가 더 적합하다. 임오경 감독은 올시즌 서울시청을 쉽게 지지 않는 팀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해보다 공수에서 좀 더 성숙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 핸드볼 스타, 스포트라이트 속에 가려진 그림자

임오경 감독은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플레이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1996년 애틀랜타,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핸드볼 여자 대표팀의 핵심 멤버였고 대학졸업 후 일본에 진출해 새롭게 창단한 히로시마 메이플레즈팀의 간판선수이자 플레잉 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2008년 서울시청 감독으로 화려하게 한국 무대로 복귀했다.

임 감독은 여성 감독으로는 유일하게 실업팀 감독을 맡아 8년째 팀을 이끌고 있다. 남성 감독들로 가득한 여자 핸드볼 팀에서 감독직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임 감독에게는 선수시절부터 국가대표와 일본 플레잉 코치, 감독까지 역임하면서 생긴 내공이 있다. 이젠 남자 코치진과 부딪혀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다.

다만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별거 아닌 일이나 소문들이 너무 크게 부풀려질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그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쿨하게 인정하면서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바로 선수들이다.

“유일한 여성 감독인 점도 있고 방송 출연도 자주하면서 다른 감독들보다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될 때가 있더라고요. 더 많은 관심을 받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 불똥이 나에게 오는 것은 문제가 안되는데 전혀 상관없는 선수들과 팀에 미치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어요. 선수들이 감독 때문에 피해보면 안 되잖아요.”

 

▲  임오경 감독이 연습경기 중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 예측은 무의미, 그것이 스포츠의 묘미

임오경 감독을 만나기 전날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 경기가 있었다. 그 경기에서 박승희가 동메달을 땄지만 안타까운 상황이 많았다.

임 감독과의 인터뷰 도중에도 자연스럽게 쇼트트랙 경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쇼트트랙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이 그렇게 많이 넘어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4년 동안 준비해서 허무하게 넘어지니 얼마나 안타까워요. 경기를 보던 나도 이렇게 속상한데…”

그래도 그 경기를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스포츠에서 예측이 얼마나 무의미한지에 대해서.

“스포츠는 정말 예측할 수 없어요. 항상 내 생각대로 경기가 풀린다면 좋겠지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항상 대비해야 하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물끄러미 선수들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부상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배민희 선수가 부상 때문에 팀 전력에서 빠져 있는데 시즌 중엔 다른 선수들도 부상을 당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잖아요. 그래서 훈련하기 전에 항상 선수들에게 강조해요. 부상당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주의하라고요.”

◆ 선진 유럽 핸드볼의 장점을 도입해야 한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의 명승부를 펼쳤던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감동 실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의 주인공인 임오경 감독은 한국 핸드볼의 전성기 시절을 보낸 대표적인 스타다. 때문에 최근 한국 핸드볼의 침체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는 현재 핸드볼의 침체의 원인으로 세대교체 실패를 들었다. 현재 핸드볼리그에서 활약하는 대표적인 선수들 중에는 아직도 30대 중후반의 선수들이 많고 국가대표도 베테랑들이 주력 선수로 나서고 있는 실정을 꼬집었다.

“제가 활약할 당시만 해도 유럽팀에서 최고 대우로 한국 선수들을 데려가려는 경우가 많았어요. 요즘은 해외 진출하는 선수들도 줄었고 진출하더라도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이는 그만큼 한국에 좋은 선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방증이에요. 선수들의 실력 향상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예요.”

한국 핸드볼 성장을 위해 유럽 핸드볼의 장점을 도입해야 한다고 임 감독은 강조했다. 과거에는 키가 큰 유럽 선수들은 움직임이 둔해서 파고들 틈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체격 조건이 크면서도 스피드까지 갖춰 상대하기 까다로운 팀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한국은 이제 금메달을 겨룰 수준이 아님을 인정해야 해요. 그리고 한국식 훈련만 고집하지 말고 유럽의 장점을 접목해 기량을 향상시켜야 하죠. 지금 당장 결과를 내기 위한 방법은 적절하지 않아요. 현재보다 미래를 생각하며 어린 꿈나무들에게 유럽 핸드볼의 장점과 한국 핸드볼의 장점을 같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젊은 지도자를 육성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남자 핸드볼에 대한 우려도 이어졌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여자보다 남자가 더 심각해요. 여자 선수들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충분히 메달권에 도전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남자는 정말 어려워요. 그래서 열악한 남자 핸드볼을 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할 때입니다. 외국지도자를 데려오는 것이 효과적이라면 그렇게 해야겠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각적인 방법을 살펴봐야 할 때인 것 같아요.”

 

▲ 연습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에게 집중력을 강조하고 있는 임오경 감독.

◆ 국가대표 감독 가능성? 1%도 없다

선수로, 해설자로 올림픽에 참가했던 임오경 감독은 국가대표 감독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고 싶은 꿈은 없을까. 그는 단호하게 사양한다.

“절대 안해요.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무대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무거운 자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대표팀 감독에 대한 생각은 꿈도 안 꿔요. 제가 감독할 일은 1%도 없을 겁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항상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무척 힘든 삶의 연속이었어요. 가끔 승패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생각을 할 정도로 압박감을 느꼈죠.”

[취재후기] 임오경 감독과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럴것이 남자 감독들 틈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고 승리하기 따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생긴 훈장과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선수들을 생각하고 더 잘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조력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외유내강’ 임오경 감독이 꼭 그랬다.

chic423@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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