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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충만했던 김연아, 캐나다서 '예술성 포텐' 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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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충만했던 김연아, 캐나다서 '예술성 포텐' 터지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2.21 0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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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김연아] 주말마다 오페라 공연 보며 예술적 감각 키워

[스포츠Q 박상현 기자] 피겨스케이팅은 기술과 예술이 혼합된 '패키지 스포츠'다. 일반 스포츠처럼 뛰어난 개인기만 가지고서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안무가 동반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그 안무에 맞는 높은 예술성이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김연아(24·올댓스포츠)는 피겨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 위대한 스케이터라고 할 수 있다. '점프의 정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5개의 점프를 트리플로 완벽하게 뛰는데다 각 안무에 맞는 뛰어난 예술적 감각이 오늘의 김연아를 있게 만들었다.

김연아의 예술성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김연아는 뛰어난 예술 감각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예술성을 안무로 승화시키는 것은 또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 [사진=스포츠Q 박상현 기자] 김연아(왼쪽)가 지난 2007년 캐나다로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김연아는 오서 코치 밑에서 지도를 받는 한편 주말마다 오페라나 뮤지컬을 관람하며 잠재되어 있던 예술성을 키웠다.

◆ 관람한 레미제라블·미스 사이공은 프리스케이팅 곡으로 사용

한국 현실에서 기술과 예술을 동시에 잡는 것은 무리다. 김연아 역시 전용 빙상장이 없어 밤 늦게 또는 아침 일찍 훈련받느라 제대로 된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친구들과 노래방을 찾는 것이 고작이었다.

김연아가 예술성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캐나다로 건너간 이후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를 만나기 이전인 2006년 안무 전문가인 데이빗 윌슨을 만나 세심한 안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조금씩 예술적 감각을 몸으로 표현해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 결과 2006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주니어 시절 좀처럼 이겨보지 못했던 아사다 마오(24·일본)를 2005년 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이어 두 번이나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김연아의 예술적인 잠재력이 더욱 빛을 발한 것은 오서 코치를 만나면서부터다. 오서 코치와 계약을 맺은 뒤 본격적으로 캐나다로 건너간 김연아는 주말마다 오페라나 뮤지컬 등을 관람했다. 이런 문화생활은 김연아의 예술적인 감각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지난 2013년 세계선수권에서 '여왕의 재림'을 알린 프리스케이팅 '레미제라블'을 비롯해 2008년 프리스케이팅 '미스 사이공' 등도 모두 김연아가 캐나다에서 봤던 뮤지컬이었다. 특히 '레미제라블'의 경우 김연아가 수차례 관람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또 주목할만한 것은 피겨 선수로 적당한 신장까지 자랐다는 점이다. 현재 김연아의 키는 165cm. 시니어로 활약하던 2007년부터 지금까지 161cm에서 성장해왔다. 역시 올림픽을 2연패한 카타리나 비트(49·독일, 당시 동독) 역시 피겨 선수로 적당한 키인 165cm다.

이에 대해 체육과학연구원 성봉주 박사는 "피겨 선수로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키가 160~165cm일 때"라며 "아름다운 신체조건과 예술적인 감각이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 현재 명예 뒤에는 과거 눈물이 있었다

영광과 명예를 모두 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까지 노리는 김연아지만 피겨 선수로서 어려움과 역경이 많았다. 김연아에 대한 투자 때문에 언니 김애라 씨도 피겨를 그만둬야 했던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피겨 불모지인 한국에서 피겨 선수로 키워내겠다는 모친 박미희 씨의 뒷바라지는 남들로부터 폄훼당하기 일쑤였다.

김연아가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거나 국제 대회를 나갈 때도 설움이 많았다. 동갑내기 아사다 마오는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는데 비해 김연아는 늘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이코노미 클래스는 좌석 간격이 좁아 무릎과 다리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운동 선수로서는 최악이다.

또 김연아는 발에 맞지 않은 스케이트화를 제대로 구할 수 없어 한때 조기 은퇴도 고려했다. 이 때문에 주니어 시절에는 발 부상을 달고 살았고 경기력을 끌어 올리는데도 애를 먹었다.

실제로 박미희 씨는 지난 2006년 11월 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 시니어 데뷔 첫 우승을 차지한 자리에서 "1~2년 전부터 스케이트가 늘 문제다. 발에 맞지 않아 자주 다친다.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할 정도로 스케이트화가 맞지 않아 고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고난은 김연아가 본격적으로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지원이 이어지면서 해결됐다. 항공사의 지원과 함께 자신의 발에 잘 맞는 리스포르트 제품을 후원받게 돼 고민들 덜었다. 김연아의 오늘날 영광 뒤에는 지난날 역경과 눈물이 있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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