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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이후, 다시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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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이후, 다시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으려면?
  • 류수근 편집국장
  • 승인 2014.02.21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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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퀸 드라마’에 잊혀졌던 약소국 피겨 현실, 이제 모두 힘 합쳐 치유에 나서야

[스포츠Q 류수근 편집국장]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는 다른 종류의 영화와는 또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1992년에 상영됐던 ‘그들만의 리그’는 22년이 흘렀지만 스포츠 영화들 중에서도 색다른 기억을 남겼다.

‘그들만의 리그’를 보기 전까지 미국에 여자 프로야구 리그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여자 소프트볼만 알고 있었다. 이 작품은 필자의 소견에 뜨끔한 충고를 준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탄생했다가 사라진 전미 여자 프로야구 리그의 이야기가 소재다. 젊은 야구선수들이 대부분 전쟁터에 나가면서 미국 프로야구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구단주들은 여성들을 모아 여자 야구단을 결성한다. 페니 마샬 감독의 이 영화에서는 톰 행크스, 지나 데이비스, 마돈나, 로리 페티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배우들이 열연을 펼쳤다.

전미 여자 프로야구 리그는 1943년에 창립되어 12년간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했다. 영화는 당시 시대상과 함께 여성 차별의 또다른 시선을 느끼게 했다.

야구를 사랑했던 여성들은 전쟁기간 동안 또다른 야구의 맛을 제공하고 끊길 뻔한 미국 야구사의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여자가 야구를 한다고 야유와 조롱을 퍼부었다. 결국 전쟁이 끝난 후에 여성들은 돌아온 남자들을 위해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여자 프로야구는 잊혀진 리그,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렸다.

21일 새벽(한국시간) 소치올림픽에서의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마지막으로 ‘피겨 퀸’ 김연아의 공식적인 올림픽 무대가 막을 내렸다. 이미 선언한 대로라면 이날 경기 모습은 김연아를 선수로서 보는 마지막 무대다.

7세 때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했고 13세 때 국제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이후 굵직굵직한 대회에서 11차례의 세계신기록과 두 차례에 걸쳐 올림픽 링크를 수놓았던 ‘피겨 퀸 드라마’의 대미였다.

“덕분에 그동안 정말 행복했어요. 고마워요!” 김연아가 혼신의 연기를 끝낸 뒤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멀리서나마 감사의 말을 전했다. 마지막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은 대한민국 사람이 누가 있을까.

김연아는 지난 10여년동안 대한민국에 최상의 스포츠 영화를 선사했다.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에서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묻게 만들었고, 예측불허의 긴장감과 환희를 연출했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김연아의 눈부신 연기는 청량제가 됐고 불굴의 스케이팅은 인간승리의 감동 드라마로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김연아를 떠나보내는 마음은 복잡하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피겨 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앞으로 최고의 무대를 다시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아쉬움, 과연 ‘김연아 이후’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은 어디로 갈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 피겨의 역사는 김연아 시대, 그리고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김연아 이전의 피겨스케이팅 시절을 추억하면 한국 선수 이름보다는 소냐 헤니, 카타리나 비트, 크리스티 야마구치, 미셸 콴, 타라 리핀스키 등 외국선수들의 이름만 먼저 줄줄이 떠오르는 게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예전에도 한국 선수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세계적인 수준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쩌면 김연아 이전의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러 있었다.

김연아가 세계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해 ‘피겨 퀸’으로 군림하는 동안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현실은 개선되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신랄하게 말해준다.

르몽드는 이번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김연아를 재조명하면서 한국 피겨의 아픈 곳을 비수처럼 찔렀다. “한국은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렇다할 스타를 배출한 적이 없다. 이제 김연아도 이번 소치 올림픽 이후 은퇴할 예정이다”라면서, 한 감독의 입을 빌려 “한국은 분명 우수한 나라지만 피겨 스케이팅을 위한 특별한 정책을 개발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열악한 환경을 생각하면 김연아의 출현은 기적같은 돌연변이 현상이었다. 제대로 된 국가 차원의 지원과 육성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연아는 사실상 개인적인 능력과 눈물나는 노력만으로 세계 최고봉에 올랐다. ‘김연아의 등장은 기적이었고 앞으로 이러한 기적은 다시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연아 시대’ 동안 한국 피겨 현실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선수 육성책, 코치 선임, 시설 보강, 훈련 지원 등 세계 일류라고 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피겨 전용 빙상장이 아직 한 곳도 없고 그나마 있는 빙상장들도 빙질이 나빠 선수들은 항상 부상 우려에 노출되어 있다.

박소연 김해진 등 김연아를 이을 차세대 주자들이 성장하고 있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도 확인됐듯이 아직은 세계 최정상급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김연아가 떠나면 이들은 의지할 정신적 기둥마저 잃는다.

요즘 화제를 모으고 있는 광고 패러디 영상의 카피처럼 ‘피겨 약소국’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우려들이 현실화되면 한국 피겨는 다시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정책당국은 선수육성책부터 시설지원까지 장기적인 플랜 아래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4년 후 평창 올림픽은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김연아 팬들도 해야할 책임이 있다. ‘피겨 퀸’이 떠나도 한국 피겨에 대한 응원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속적인 관심은 한국 피겨와 ‘연아 키즈’의 성장에 자양분이 될 것이다.

찬사를 뒤로하고 무대를 떠나는 김연아 선수도 해야 할 일이 많다. ‘피겨 여왕’이 되기까지 쌓아왔던 수많은 노하우를 한국 피겨 발전과 후진 양성을 위해 힘써 줘야 한다. 그러면 ‘제2·제3의 김연아’가 한국 피겨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김연아는 프리 스케이팅에서 ‘아버지의 안녕’이라는 뜻의 ‘아디오스 노니노’를 배경음악으로 연기했다. 작별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끝’은 또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빙판 밖에서 또다른 신기록을 쏘는 ‘피겨 퀸’ 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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