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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장애인수상스키의 유쾌한 질주, 물보라에 날려보낸 장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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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장애인수상스키의 유쾌한 질주, 물보라에 날려보낸 장애물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08.26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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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서울특별시장기 장애인수상스키대회 현장 탐방

[300자 Tip!] 한쪽 발만 갖고도 심지어는 하체 마비에도 물에서의 질주를 즐기는 이들이 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이들도 본능에 몸을 맡긴다. 거친 물살을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다. 1년에 한 번 이맘때쯤 서울 한강시민공원 뚝섬둔치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수상스키대회가 열린다. 그들은 비장애인도 선뜻 해내기 힘든 수상스키를 타며 물살을 가르고 햇살을 받았다. 마치 장애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더이상 장애물을 없다고 외치는 듯했다. 강한 햇살에 더욱 선명해지는 무지갯빛 물보라에 편견과 장애물들을 씻어내고 자신감을 찾는 그들의 질주를 따라잡았다.

[한강시민공원=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비장애인도 어려운 수상스키를 장애인들이 한다?

지난 23일 서울 광진구 한강시민공원 뚝섬유원지 내 수상스키장에서는 서울특별시장배 장애인수상스키대회가 열렸다.

▲ 앉아서 타는 수상스키를 칸스키라고 한다. 칸스키 부문에 참가한 지체장애 참가자가 물살을 가르고 있다.

원년 대회 때 참가자가 30명 정도 모였던 ‘그들만의 축제’는 어느덧 8회째를 맞아 120여 명이 참가하는 대회로 성장했다. 이기수(47) 서울시장애인수상스키협회장의 노력에 힘입어 많은 장애인들이 수상스키를 접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탄탄한 대회로 기틀을 잡았다.

서울시장애인체육회에서도 곽해곤 사무처장이 참석해 참가자들의 건강과 대회의 발전을 기원했다. 하고 초대가수들도 흥을 돋웠고 무용단의 축하공연이 곁들여지며 축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김지혜(42) 서울시장애인수상스키협회 총무이사는 “장애인 분들께는 축제의 장”이라며 “승부는 중요하지 않다. 수상스키를 즐기고 그걸 바라보는 가족들이 좋아하시는 것만으로도 이 대회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수상스키를 타는 장애인들에게 장애는 장애물일 뿐이다. 다리 한 쪽이 없어도, 지적장애를 앓고 있어도 스포츠활동을 하는데 지장이 없다.

◆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가다 

“더위가 한방에 날아가서 좋아요. 속이 다 시원해요. 수영과 스키가 접목된 종목이라 스피드를 만끽할 수 있고요. 다리가 불편해 수영을 못하더라도 해낼 수 있는 종목입니다.”

소아마비를 갖고 있는 최미정(39) 씨는 활짝 웃으며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초대 대회부터 이번 대회까지 개근 출전이다. 물에 흠뻑 젖은 머리를 털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장애인에게 가장 고난이도 스포츠인 수상스키를 접하며 강한 의지와 자신감이 생겼다”며 “장애인의 스포츠 활동을 위한 여러 가지 혜택들이 있다. 장애인들이 이를 잘 활용해 문을 박차고 나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공현규(17) 군의 엄마 김주연(38) 씨는 “자폐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은 확 트인 공간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며 “아들이 수상스키를 통해 속도감을 즐기더니 이젠 바다와 강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공현규 군과 그의 엄마 김주연 씨. 김 씨는 아들이 수상스키를 한 이후로 트인 공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 이기수 회장, “장애는 장애물일뿐” 

“이 분들은 장애를 장애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애물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1990년대 정상급 씨름선수로 이름을 떨쳤던 이기수 회장은 선수·코치 생활 시절 수상스키를 즐겼다. 특수체육을 전공한 후배를 통해 장애인들의 신체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들이 수상스키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비장애인도 힘든 수상스키를 장애인이 어떻게 타느냐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속도를 낼 수 없는 그들에겐 고꾸라져도 다치지 않는 물이 오히려 안전합니다. 한 다리로 수상스키 타는 분들은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쳐납니다.”

그의 말처럼 참가한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얼른 자신의 차례가 돌아와 물속으로 뛰어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레이스를 마친 선수들에겐 동료들과 가족들, 자원봉사자들이 한데 모여 큰 박수를 보냈다.

▲ 이기수 회장은 "장애인들이 수상스키를 즐기는 것을 보고 많은 분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뜻깊은 일을 하고 있는 이 회장은 자신의 다음 목표를 밝혔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수상스키를 타는 것을 보면서 주저하는 분들이 큰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이 장애인에게 힘이 된다면 사회가 좀 더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장애인도 타는데 내가 못 타겠나’라는 생각으로 수상스키도 좀 더 대중화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장하다 장해”, 이토록 색다른 자원봉사는 처음 

이날 행사를 돕기 위해 광진구 새마을부녀회에서 30명이 자원봉사로 참여했다. 이들은 참가자와 손님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도맡았다.

광진구 새마을부녀회 박공순(65) 대표는 “많은 곳에 자원봉사를 다녀봤지만 이런 행사는 처음이라 색다르다”며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물에서 활동한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또한 “씩씩하고 용감한 그들에게 장하다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며 “장애인 스포츠행사에 봉사를 하러 왔다가 큰 용기를 얻고 간다”는 고마움을 전했다.

▲ 오전 수상스키를 즐긴 비장애인들은 대회 자원봉사자를 자처했다.

LG씨름단에서 이 회장과 함께 운동했던 ‘소년장사’ 백승일(38)은 이날 초대가수로 자리에 함께 했다. 그는 역시 가수로 활동중인 부인 홍주와 함께 세 곡을 부르며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백승일은 “왼팔이 없으신 분과 함께 골프를 친 적이 있다. 오른손으로만 드라이버를 날리는데 기가 막히더라”는 일화를 들려주며 “이후 장애인스포츠에 큰 관심을 가졌다. 축제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에 한 걸음에 달려왔다”고 밝혔다.

매주 이 곳에서 수상스키를 즐기는 회원 10여명과 코치들도 자원봉사를 자처했다. 이들은 팥빙수를 제조해 손님에게 나눠주고 대회 운영 전반에 걸쳐 적극적으로 나서 일손이 부족한 장애인수상스키협회에 힘을 보탰다.

◆ 수상스키가 장애인에게 더욱 매력적인 까닭 

코치 민경환(20) 씨는 “수상스키는 장애인 분들께 언뜻 위험해 보이지만 몸으로 물을 느끼며 타면 된다”며 “한 쪽에 장애가 생기면 다른 쪽 신경이 월등히 발달하는 장애인이 어쩌면 비장애인보다 더욱 잘할 수 있는 운동이란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겨울이 눈이라면 여름은 물 아닙니까. 장애인들에게 수상스키는 쉬운 운동이 아닙니다. 숱한 실패를 딛고 완주해냈을 때 느끼는 그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최상용(47) 대한장애인수상스키협회 부회장도 수상스키의 매력을 역설했다. 한국 장애인수상스키를 이끄는 인물답게 장애인의 스포츠 활동 전반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며 장기적인 바람을 밝혔다.

▲ 최상용 대한장애인수상스키협회 부회장은 미디어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스포츠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희망했다.

“한국의 장애인스포츠는 미국에 60년, 일본에 30년 뒤져 있습니다. 장애인도 이렇게 스포츠활동을 즐긴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분들이 장애인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성원해주시길 바랍니다.”

[취재 후기] 인터뷰를 하다가 “이분들에겐 장애가 장애물일 뿐”라는 이기수 회장의 말에 움찔하며 페이스를 잃었다. 취재를 마치고도 그 구절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수많은 비장애인들은 혹시 장애물을 장애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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