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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극배우 강기영 '15초 연기자서 2시간 배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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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극배우 강기영 '15초 연기자서 2시간 배우로'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2.25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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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로맨틱 코미디와 성인용 연극이 범람하는 대학로에서 관객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보석같은 정극 몇 편이 있다. 유명 연예인 캐스팅이 아님에도 관객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 진정성 때문이다. 지난해 시즌1에 이어 시즌2로 다시 간판을 내건 미스터리 스릴러 '퍼즐'(3월 2일까지ㆍ해피씨어터)은 이런 웰메이드 연극 가운데 하나다. 1인3역을 소화하는 강기영(31)은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감초 역할로 주목받고 있다. 잘 나가는 CF모델에서 연극배우로 터닝한 그는 대학로에 연착륙 중이며 이희준, 차태현 같은 색깔 있는 배우가 꿈이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ㆍ사진 이상민기자] 연극 ‘퍼즐’은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 사이먼의 기억 퍼즐을 맞추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해할 듯하다가도 다시 미궁으로 빠지는 게 작품의 묘미다. 원작은 영화 ‘아이덴티티’의 작가 마이클 쿠니의 희곡 ‘더 포인트 오브 데스’. 무거운 공연 중간중간 분위기를 띄어주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앳된 배우가 있다. 그러면서도 극의 키 맨(Key Man)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CF모델에서 연극배우로 터닝한 강기영이다.

 

 

◆미스터리 스릴러 '퍼즐'서 1인3역 도전

‘퍼즐’에서 그는 사이먼의 형인 시한부인생 피터, 유산상속 때문에 형을 죽이려 한 사이먼의 죄의식을 일깨워주는 수다스러운 간호조무사 트레비스, 같은 병실 환자 트레비트 등 1인3역을 소화한다. 배우 원종환과 더블 캐스팅됐다. 원종환이 웃음 포인트를 적절히 짚으며 노련하게 배역 소화를 한다면 강기영은 신인답지 않은 능청스러움과 애드리브, 신선한 분위기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시즌1 때 트레비스를 워낙 많이 봐 머리에 박혀버렸나 봐요. 처음엔 흉내내기 급급했어요. 점차 성격면에서 저를 대입했죠. 제 코드를 들이대니 부담이 사라지더라고요. 반면 피터는 아직까지도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내면에 품은 애증, 복합적 심리를 연기해내기가 만만치 않거든요."

경력이 그리 많지 않은 그에게 복병은 여러군데 있었다. ‘공포감을 줘야해’라며 관객을 의식하던 그가 어느 순간, ‘상대 배우에게 대사를 잘 전달하는데 집중하자’란 생각이 들면서부터 공연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한계에 부딪혔을 때는 선배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전작인 ‘드레싱’에 출연할 때 사전 웜업을 1시간30분 동안 하다가 무대에 올랐는데 금방 지쳤다. 선배로부터 ‘지치면 니가 외워놓은 호흡으로만 연기하게 된다’는 지적을 받고나서 되돌아보니 실재 상대역과 호흡을 주고받지 않은 채 그러고 있음을 깨달았다. 무대에서 노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은 시점이었다.

 

▲ 연극 '퍼즐'의 한 장면[사진=파파프로덕션]

 

◆CF모델, 대형 매니지먼트사 연습생 전전…배우로서 깊이 찾고자 대학로 노크

 

CF에 연달아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이수현을 김수현으로 바꾸라’라는 헤드카피로 유명한 캐논 카메라, 유재석이 출연한 신한은행을 비롯해 KTF, 박카스 등에서 멀쩡하게 생겼는데 ‘개그를 치는’ 캐럭터로 호기심을 유발했다.

“찌질하거나 찐따인 캐릭터를 많이 했어요. 쫄쫄이를 자주 입고 그랬죠. 실제 성격도 그렇거든요. 연기자로서 깊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배고프다는 연극판에 뛰어들게 됐던 것 같아요. 되돌아보니 돈을 포기하고 도전해볼 가치가 충분한 곳이죠. 광고모델 때는 똑같은 이미지를 소비하다보니 제자리 걸음만 했거든요.”

필연은 우연을 가장해 오나보다. 뜻밖의 기회로 2009년 연극 ‘나쁜 자석’에서 친구의 죽음으로 상처입은 채 방항하는 강민호 역을 맡아 무대 맛을 보게 됐다. 그러다가 CF모델들이 선망하는 코스인 대형 연기자 매니지먼트사 소속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많아 연습생 반장을 하며 극단에서 연기과외를 받았다.

“매니지먼트사에서는 본격적인 연기활동을 위해 이런저런 CF를 그만 두자고 종용했고, 미래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없는 연습생 신분이라 조바심이 컸어요. 결국 6개월 만에 소속사를 나오게 됐죠.”

연기과외 당시 극단 대표가 잘 봐줘서 기회를 준 게 2010년 연극 ‘그남자 그여자’다. 2012년 드라마 ‘넝굴째 굴러온 당신’에서는 극중 김남주의 남동생인 씨엔블루 강민혁의 친구로 출연했고, 드라마 ‘마의’에서는 마의로 들어온 조승우를 질투하는 견습 마의로 눈도장을 찍었다. 이어 지난해 연극 ‘드레싱’에 출연했다. 당시 ‘퍼즐’ 제작사 대표가 성장 가능성을 높이 사 ‘퍼즐’에 전격 캐스팅했다.

◆ 유혹 손길에 두려움… CF연기톤 빼는데 1년 걸려

고교시절까지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했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아서 운동을 포기하고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미술, 체육, 연기를 저울질했다. 그러다 대학로를 알게 돼 본격적인 연기 준비에 들어가 수원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는 학과 공부보다는 노는 데 열중했다. 그러다 전공을 살려 돈을 벌려고 했을 때 험한 일을 깨나 겪었다. 매니저를 사칭한 사기꾼, 업계 관계자라 하며 유혹의 손길을 뻗은 게이, 성형수술을 강권하는 사람 등으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 집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기로 한 뒤 분기별로 경제적 어려움까지 겪어야 했다. 무서움에 떨다가 1주일을 고민했다. 이 길을 계속 갈지, 말지를. 결론은 '강행'이었고, 상처가 경험이 됐는지 내면이 단단해졌다.

연극무대 데뷔 초반에는 광고연기가 몸에 배 힘들었다. 공익광고의 선한 눈웃음, 15초 내에 모든 걸 보여줘야만 하는 CF의 특성상 과장된 연기와 큰 액션이 필수였다. 그런데 긴 호흡의 무대에서조차 CF 연기톤이 부지불식간에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이를 빼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인복이 많은 배우다. 매사에 낙천적이고 까불까불한 면모가 ‘에너지’와 ‘긍정의 힘’으로 좋은 평가를 받게 했다. 그는 "되돌아보면 이제까지 배우로서 내 인생이 계획된 게 아니라 운이었다"며 "조급함 대신 느긋하게 기다려 보겠다"고 씨익 웃는다.

관객과 같이 호흡하는 느낌이 들어 절로 흥이 난다는 천상 무대배우 강기영은 연출자의 디렉션 안에서 자신만의 연기 영역을 만들어가야 함에도 틀에 갇혀있다는 답답함에 머리를 쥐어짜는 전형적인 신인이다.

[취재후기] 롤 모델로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한 배우 이희준, 차태현을 꼽았다. 강기영 역시 독보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싶은 게 꿈이다. 배우로서 영감을 어디서 얻느냐는 사뭇 진지한 질문을 하자 쿨하게 날아온 대답. "재밌게 놀고 장난치는 게 다 연기가 되던대요?"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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