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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① 원더스 W의 약속, 패자부활전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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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① 원더스 W의 약속, 패자부활전은 끝나지 않았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9.17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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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전격해체발표 그날 이후... "멈췄을 뿐 우리는 미래 승자가 될 것"

[300자 Tip!] 국내 유일, 최초의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가 지난 11일 전격 해체됐다. 고양 원더스의 해체 이유와 그 원인을 놓고 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팽팽한 의견 줄다리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고양 원더스 해체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것은 바로 선수들이다. 고양 원더스의 해체가 한국 야구의 큰 손실이라는 얘기는 너무 추상적이다. 선수 개개인의 당장 생활이 시급해졌다. 열정이 있고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선수들의 억장은 무너진다. 그러나 정작 원더스 선수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다시 배트를 들고 글러브와 공을 잡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도전에 잠시 브레이크가 걸린 것일 뿐 영원한 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고양 원더스의 해체가 공식 발표된지 닷새가 지났지만 여전히 선수들은 구장에 나와 훈련을 하고 있다. 11월까지 진행되는 훈련을 통해 이번 겨울 프로구단 트라이아웃에 도전하기 위함이다.

[고양=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파이팅! 파이팅!" "어! 좋았어!" "수비훈련 제대로 하자고!" "야, 뭐하고 있어. 왜 거기 있는거야. 더 뒤로 물러나야지!"

고양 원더스의 홈구장인 고양 국가대표 야구 훈련장은 여전히 선수들의 힘찬 목소리로 가득찼다. 팀은 해체됐기 때문에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었다. 물론 구단에서 11월까지 훈련을 지원한다고 했지만 자신들의 직장이 2개월 후면 완전히 없어지기 때문에 야구장에 나오는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구장을 찾았을 때는 김광수(55) 수석코치가 공을 때려주고 이를 처리하는 펑고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야 땅볼 훈련, 외야 플라이 및 중계 플레이 훈련, 포수 앞 땅볼 훈련 등 다양했다. 아직 따가운 가을볕에 금방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혔지만 이는 아무런 장애가 되진 않았다.

다만 마음만큼은 무거워보였다. 조심스럽게 몇몇 선수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죄송하다"는 말 뿐이었다. 사실 인터뷰 요청하기도 미안했기에 더 잡을 수 없었다.

그 때 지나가던 한 선수가 기자에게 귀띔했다. "그래도 인터뷰할 선수는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를 안됐다는 시선이나 동정하는 쪽으로 기사는 쓰지 말아주세요. 힘들긴 하지만 괜찮아요. 이런 일 한두번 겪는 것도 아닌데요."

▲ 김광수 수석코치(왼쪽)가 펑고를 하기 위해 포수로부터 공을 건네받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그라운드에 나와 직접 지시하진 않지만 코칭스태프는 남은 기간 조금이라도 이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Waive & Whip - 프로팀에서 방출됐던 선수들, 원더스에서 스스로 채찍질

고양 원더스의 모든 선수들은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고도 기회를 잡지 못하고 기량도 늘지 않아 방출됐거나 아예 선택조차 받지 못했다. 프로팀에서는 포기한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고양 원더스에서 '패자부활'의 기회를 받았다. '열정에게 기회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11년 출범한 고양 원더스는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었다. 그들은 패자부활의 기회를 얻고 프로 선수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실제로 고양 원더스는 프로팀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40~50명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야구선수라는 직업을 갖지 못한 실업자 40~50명을 구제한 곳이 바로 고양 원더스라는 얘기도 된다. 어떻게 보면 야구계에서는 재활처나 다름없었다.

김성근(75) 고양 원더스 감독은 "팀을 창단한 후 시즌마다 50명 가까이 선수들을 흡수해왔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KBO 등에서는 이 자체에 대한 고마움이나 귀중함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야구를 하게 되면 결국 나중에 갈 곳은 프로야구팀 외엔 없다. 그런데 해마다 졸업을 하고 사회로 나오는 선수들을 프로팀들이 과연 얼마나 소화할 수 있겠느냐"며 "예전에는 실업팀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프로팀 말고는 갈 곳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선수를 받아준 팀이 고양 원더스였다"고 말했다.

▲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인터뷰를 하면서 턱을 괴고 선수들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70대 중반의 노감독은 선수들의 열정에 기회를 줬던 팀의 해체로 주름살이 더 늘었다.

김성근 감독은 훈련 내내 그라운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감독실의 창문 밖으로 선수들의 훈련 모습만을 지켜볼 뿐이었다.

김 감독은 "팀 해체 소식을 선수들에게 전달해줬을 때 더이상 너희들의 감독이 아니라고 했다"며 "감독이면 선수들을 지도하고 이끄는데 주력해야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젠 선수들과 편안하게 얘기해주고 조언도 들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 Weak & Wounded - 약하고 상처받은 그들, 넋 놓고 있을수는 없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에게 직접 팀 해체를 전달하기 일주일 전부터 훈련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지난달 말 고양 원더스가 해체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언질을 들었고 지난 4일 구단으로부터 해체 결정 소식을 들었다.

70대 노(老)감독의 가슴은 쓰리고 아렸다. 열정을 갖고 야구에 전념하면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얘기해왔는데 그 기회가 날아갈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해줄 말을 찾느라 1주일을 고심했다. 때마침 일부 프로팀에서 김성근 감독의 영입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던 터여서 더욱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 감독은 "구단이 언질을 했을 때 내가 팀을 떠나면 미련없이 즉시 팀을 해체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난 남았고 결정이 유보됐다. 그러나 해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 고양 원더스의 훈련은 해체 발표 전과 후가 동일하다. 야수들은 오전 수비훈련, 오후 타격훈련이 이어지고 투수들은 계속 공을 던진다. 포수가 외야에서 날아온 공을 잡고 있다.

이어 김 감독은 "프로팀 영입설이 나돈 때여서 선수들을 모아놓고 얘기를 하려고 했을 때 대부분 선수들은 고양 원더스를 떠나 다른 팀으로 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하지만 이들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고 며칠 전을 회상했다.

그렇게 김 감독의 마음은 상처받았다. 그라운드에서는 한없이 과묵하고 엄한 노감독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도 김 감독은 선수들이 상처받고 한없이 약해졌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선수들은 강했다. 이미 여러 차례 아픔의 경험이 있던 그들이라 팀이 해체됐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포수 김지호(28)는 "이미 삼성에서 방출된 경험이 있다. 팀 해체가 충격이긴 했지만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며 "나이가 많은 선수들은 다른 일을 알아보러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나이가 적거나 아직 희망이 있는 선수들은 나와서 훈련을 한다. 지금 절반 정도인 25명의 선수들이 나와서 훈련하는 것도 겨울에 있을 트라이아웃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한 선수가 오후 배팅훈련을 위해 배팅볼 기계를 끌고 가고 있다. 아직 고양 원더스의 선수들은 야구에 대한 열정과 의지 그리고 절실함이 있다.

◆ Wish & Will - "야구를 원하기에 우리에겐 의지가 남아있어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중요한 덕목만 가지고 살아갈 수 없는 것도 역시 현실이다. 결혼을 하는데 있어서 남녀의 사랑만 갖고는 살 수 없듯 말이다.

어쩌면 이들에게도 열정만 가지고는 야구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열정 외에도 또 다른 무언가가 보탬이 되지 않았기에 고양 원더스의 도전도 3년만에 끝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열정까지 버린다면 이들은 그야말로 끝이다. 그나마 열정이 있기 때문에 이들이 있는 것이다. 사랑만 가지고 살 수 없다고 사랑을 포기할 수 없듯이 열정까지 버린다면 이들은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절실함이 있다. 모두 한번쯤 현실에서 한발짝 물러난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프로에 가겠다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고 그런만큼 야구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프로팀에서 뛰는 선수들보다 더 뜨겁다.

김성근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한번 이상 버림을 받고 실패를 경험했다. 이들이 계속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집념과 열정 없이는 아무 것도 이뤄낼 수 없다. 고양 원더스는 프로에 가겠다는 일념을 가진 선수들이 모인 곳이다. 그 열정이 사라진다면 야구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지호는 "처음 해체 소식을 들었을 때 곧바로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우리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걱정되고 불안한 것은 당연하지만 목표가 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뒤처졌던 부류다. 그런만큼 더 절실하고 열심히 한다. 아픔이 있기 때문에 간절하고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 고양 원더스 훈련에 참가한 김지호가 배트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제 20대 후반에 들어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에게 야구 도전은 진행형이다.

◆ Winner & "WOW" - 승리자로 환호할 수 있는 그 언젠가를 위해

팀은 해체됐지만 그들은 여전히 고양 원더스의 훈련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왼쪽 가슴에 W가 선명했다.

김지호에게 'W'의 의미를 묻자 "최후에는 승리자가 될 것이다. 위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더스의 선수들은 야구 외에도 인생의 모든 지혜를 김성근 감독에게 전수받았다며 팀에서 함께 보낸 시간을 자랑스러워하고 영광으로 생각했다.

김지호는 "김성근 감독님의 훈련 스타일을 잘 알지 않느냐. 정말 힘들었고 단내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며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기술적, 정신적으로 너무나 큰 성장을 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프로에 가지 못하고 실업자가 될 후배들을 걱정했다.

김지호는 "우리는 1년의 기회를 얻고 야구를 했다. 하지만 앞으로 후배들이 계속 나오게 될텐데 그들이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 안타깝다"며 "그래도 우리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감독님께서도 우리의 진로를 위해 애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 안형권이 오후 타격훈련을 하고 있다. 미국 뉴욕 출신의 그는 올 겨울 프로팀의 트라이아웃에 도전하기 위해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또 그는 외국인 선수 통역 등 구단 프런트에 대한 진로도 함께 생각하고 있다.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뒤 야구가 너무 하고 싶어 한국에 들어온 내야수 안형권(25)도 벌써부터 진로를 결정하고 있었다. 물론 목표는 야구다. 하지만 여러 길을 생각해놓고 있었다.

안형권은 "감독님으로부터 거북이와 토끼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선수마다 성공하는 속도는 제각각이지만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성공한다는 것이었다"며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직 성공까지 거리가 멀었다고 생각한다. 트라이아웃을 보고 그래도 안된다면 일단 프로 구단 프런트로 들어가려고 한다. 미국에서 살다왔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 통역도 가능할 것"이라고 계획을 전했다.

김성근 감독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팀 해체 소식을 들은 한 야구 제자가 자신이 일하고 있는 회사에 10명 정도 취업이 가능하니 추천해달라는 것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고양 원더스에서 하루에 배팅 4000, 5000회를 하는 등 열정을 갖고 노력을 기울였던 선수라면 사회에 나가서도 뭐든지 해도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 원더스의 모든 선수들은 승리자가 되어 기쁨의 환호성을 지를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과 확신이었다.

[취재후기] 영화 '군도'에서는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생을 걸어본 자'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들은 바로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성공을 거두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남들은 이들에게 '루저'라고 말한다. 고양 원더스 자체가 '루저의 집단'을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 이들처럼 모든 것을 바쳐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들은 루저가 아니다. 바로 미래의 위너들이다. 이미 고양 원더스 출신의 '미래 위너'들은 프로야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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