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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16] (31) '고교야구 슈퍼스타' 강백호, 프로에서 쓰고픈 만화 같은 스토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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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16] (31) '고교야구 슈퍼스타' 강백호, 프로에서 쓰고픈 만화 같은 스토리는?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6.10.10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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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호리그' 투타 겸업하며 고교무대 접수…'한국의 오타니'로 성장하고픈 강백호의 원대한 꿈

[200자 Tips!] 9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 2016 프로야구 정규시즌 막판에 팬들이 자주 언급한 이름이 있다. 바로 서울고 2년생 포수 강백호(17). 그의 이름을 딴 ‘강백호 리그’가 후반기 ‘핫 키워드’ 중 하나였는데, 올 시즌 9위나 10위를 한 팀이 내년 2차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강백호를 지명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4-5위 경쟁만큼이나 9위를 쟁취(?)할 팀이 어디일지에 관심이 모아진 이유다. 본인의 이름을 딴 리그에 대해 강백호는 “그만큼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뜻이니 기분은 좋지만 나에게 과분한 것 같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스포츠Q(큐) 글 이세영‧사진 이상민 기자] 고교 2년간 타율 0.398(176타수 70안타)에 8홈런 76타점. 181㎝ 90㎏의 당당한 체격에서 뿜어 나오는 괴력. 

▲ 강백호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고 그라운드에서 투구하고 있다.

지난달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홈런 2방을 날리며 현장 관계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은 주인공.

아직 여드름 그득한 얼굴의 열일곱 '대세' 청년을 수식하는 말이다. 프로팀의 부름을 받으려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벌써부터 그를 데려갈 팀이 어디일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백호는 서울고 야구부의 얼굴이자 현재 고교야구를 대표하는 ‘톱 플레이어’다.

1학년이었던 지난해 고교 주말리그 서울-강원권에서 우승을 이끌며 홈런상과 수훈상을 휩쓸었고 청룡기대회에서도 홈런상을 수상했다.

올해도 서울고의 고교 주말리그 전반기(서울B) 우승을 견인하며 타점상을 받은 강백호는 황금사자기대회 타격상과 최다 타점상을 독식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주말리그 후반기(서울A)에서도 타점상을 품에 안았다.

그러나 이수중학교 때부터 승승장구한 강백호에게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오심 하나로 6-12 패배를 당한 지난달 2일 대만과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결선 라운드 1차전은 어린 강백호에게 너무나도 쓰라린 기억이었다.

당시 한국은 2-5로 뒤진 8회말 강백호의 솔로 홈런으로 추격했고 9회말에도 2점을 보태 5-5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연장 10회 승부치기에 돌입한 한국은 무사 1, 2루 위기에서 2사 만루까지 잘 막았는데, 여기서 대만 쪽에 유리한 판정이 나왔다. 한국 투수 고우석이 대만 천후를 2루 땅볼로 유도했다. 2루수 박성한은 1루로 송구했고 공이 살짝 빗나가자 1루수 이정후가 앞으로 나와 공을 잡은 뒤 타자 주자를 태그했다. 그대로 이닝이 끝나는 듯했지만 1루심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TV 중계 슬로비디오로 봤을 때 이정후가 주자의 왼쪽 어깨 뒤를 먼저 태그했지만 심판은 세이프 판정을 내렸다. 무실점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이닝이 1실점 후 만루가 되면서 한국은 완전히 무너졌다.

“다음날 일본과 경기를 앞두고 있었음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면서 당시를 떠올린 강백호는 “너무 억울해서 우는 형들도 있었다. 나 역시 감정이 북받쳐서 힘들었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날 일본전에서도 1-3으로 패한 한국은 3-4위전에서 중국을 14-0으로 대파하며 3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가 강백호에게 준 교훈은 무엇일까. 

그는 “앞으로는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더 압도적으로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그 기억이 평생 갈 것 같아요. 그래도 좋은 형들과 재미있는 경기를 해서 즐거웠어요. 지금도 단체 채팅방에서 이야기를 나눠요. 학교에서는 ‘내가 꼭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는데, 대표팀 구성원은 각 학교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니 부담감도 덜했어요.”

▲ 타격 자세를 취하는 강백호. 그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처음에는 싫은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되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했다.

◆ '고척돔 1호 홈런' 등장부터 만화 같았다

강백호가 처음으로 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가 있었다. 지난해 개장한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역사적인 1호 홈런을 터뜨린 주인공이 바로 강백호였다.

지난해 11월 12일 청룡기대회 경기고전 8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최하늘의 5구째를 밀어 우중월 솔로 홈런을 때렸다. 대회 첫 홈런이자 고척돔 개장 1호 홈런이었다.

강백호는 “누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이지 않나. 개인적으로 영광이고 ‘고척돔 1호 홈런’이라는 수식어가 정말 좋다. 한국 최초 돔구장에서 처음으로 홈런을 쳤으니 가문의 영광이다”라면서도 “그때 홈런볼을 들고 사진을 찍자마자 주최 측에서 가져가서 어디 있는지 모른다. 갖고 싶었는데 안 주시더라”고 아쉬워했다.

세상에 이름을 알릴 때부터 강백호는 동명이인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처럼 남달랐다.

그런데 정작 그의 부모님은 만화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이름을 짓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36세 때 강백호를 낳았는데, 힘들게 세상에 나온 만큼 강하게 자라라는 의미에서 ‘흰 백(白)’에 ‘범 호(虎)’자로 정했단다.

강백호는 “내 기사 댓글에서 ‘빨간 머리로 염색해라’, ‘북산으로 가라’는 말이 많아 웃음이 터졌다”면서 “어릴 때는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되는 것 같아서 좋다”고 웃어보였다.

◆ 한국의 오타니? 떡잎부터 달랐던 재능

이처럼 이름만 봐서는 농구를 즐겨 했을 것 같은 강백호가 배트와 글러브를 들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강백호는 사회인 야구를 즐겨 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어릴 때부터 많이 받았다. 당시 성남고 코치였던 박성균 성남고 감독이 그의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웠는데, 캐치볼을 하는 것을 보고 박 감독이 야구를 시작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그렇게 야구를 시작한 게 서울 도신초등학교에 다닐 때인 2007년, 여덟살이었다.

당시 좌투좌타였던 강백호는 수비 포지션의 제한을 받지 않기 위해 던지는 손을 오른손으로 바꿨고 1루수와 3루수, 포수 등 주로 내야 수비를 소화했다.

중학교 때까지 수차례 전학을 간 끝에 서울고에 입학한 강백호는 투수가 부족한 팀 사정 때문에 마무리로 마운드에 오르는 일이 잦았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투타를 겸업한 그는 투수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지난해 국내대회에서 2승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했고 올해도 2승 1패 평균자책점 1.16으로 수준급 투구를 펼쳤다. 피홈런은 2년을 통틀어 단 한 개도 없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투타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닛폰햄 파이터스)를 떠올리게 한다.

팀 사정 상 투수를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타격만 할 가능성이 높지만 프로에서 마운드에 오르라고 할 경우, 망설이지 않겠다는 강백호다. 그는 “작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때 NC 나성범 선수가 9회에 마운드에 오르는 걸 봤다. 내가 나성범 선수라도 감독님의 말을 따랐을 것”이라며 “팀에 필요한 상황이라면 투수를 할 것이다”라고 힘줘 말했다.

강백호를 지도하는 서울고 김종명 코치 역시 제자의 기량을 높이 평가했다.

김종명 코치는 “타격 기술이 매우 뛰어나고 승부근성이 좋다. 포수로서 리더십도 뛰어나 선수들의 수비 위치를 잡아주는 등 코치들이 해야 할 일을 도맡아서 한다”면서 “20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했지만 지금껏 강백호 같은 선수를 못 봤다. 2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다”라고 칭찬했다.

◆ "프로 1년차에 1군에서 뛰고 싶다"

자신의 이름처럼 ‘판타지 스타’의 길을 걷고 있는 강백호. 하지만 그가 스스로 최고가 된 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의 격려와 뒷받침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제 인생에 은인은 참 많아요. 우선 야구를 하기로 결심한 저에게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가라’고 말씀하신 부모님과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기용해주신 서울고 유정민 감독님, 저의 멘탈을 잘 잡아주시는 김종명 코치님, 언제나 ‘할 수 있다’고 기를 불어넣어 주는 동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저를 지지하는 분들 덕분에 즐겁게 야구 하고 있어요.”

이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지금보다 더 좋은 기량으로 향상된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체에 비해 상체 근력이 약해 스쿼트 운동을 하고 있다”고 밝힌 강백호는 “10홈런, 100타점, 100안타를 채우면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 2홈런, 24타점, 30안타를 보태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렇게 성장한 강백호가 프로 무대에서 보여주고픈 이야기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프로 1년차에 1군에서 뛰고 싶다”고 입을 뗐다.

생각보다 소박한 꿈이었다. 서울고 2년 선배인 최원준(KIA 타이거즈)이 루키 시즌인 올해 1군에서 프로 데뷔 홈런을 치는 것을 보면서 팬들의 뇌리에 깊게 박힐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올랐단다.

김종명 코치는 “백호는 멘탈이 좋기 때문에 1군에서도 잘 적응할 것”이라면서 “어느 팀에 가든 대성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프로에 가서 포지션을 변경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포수를 계속 본다면 캐칭이나 블로킹 등 수비에서 조금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한국야구의 '슈퍼스타'가 되기 위한 조건은?

앞으로 입단할 프로팀을 넘어 강백호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하길 바라기 때문에 김종명 코치가 제자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김 코치는 “아직 강백호가 17살이지만 본인이 25살, 30살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미래를 내다보고 목표를 지금보다 크게 잡았으면 좋겠다. 프로에 빨리 적응한다면 한국 야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할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투수로서 자질도 충분하기 때문에 오타니 같은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해 해외에서 한국을 높일 수 있는 선수가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표현했다.

강백호 역시 프로에서 큰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게 꿈이다.

그는 “인성과 실력을 갖춘 슈퍼스타가 되고 싶다.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길 원한다”면서 “돈을 많이 벌어 나를 위해서 지금껏 희생해 오신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 아버지 이름으로 야구장 하나 지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까지 남은 시간 동안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더 좋은 선수가 되겠습니다. 팬들의 기억에 확실히 남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팬들께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프로야구처럼 아마야구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프로는 완벽하지만 아마추어도 아기자기하게 보는 맛이 있거든요. 저 역시 거쳐가는 무대이지만 누군가가 그 자리를 메워야 하기에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합니다.”

■ 강백호 프로필

△ 생년월일 = 1999년 7월 29일
△ 체격 = 181㎝ 90㎏
△ 출신학교 = 서화초-이수중-서울고

△ 주요 경력
- 2016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

△ 수상 경력
- 2015년 고교 주말리그 서울&강원권 수훈상
- 2015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홈런상
- 2015년 고교 주말리그 서울&강원권 홈런상
- 2016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타격상
- 2016년 고교 주말리그 전반기(서울권B) 타점상
- 2016년 고교 주말리그 후반기(서울권A) 타점상
- 2016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타점상

[취재후기] 강백호는 슬램덩크 만화 캐릭터처럼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좌우명이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밝게 하자’일 정도다. 가끔 의욕이 넘치는 성향이 ‘건방지다’는 오해를 부를 때도 있지만 강백호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을 참이다. 그렇다고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 선수도 아니다. 중학교 때부터 자신을 지도한 코치들의 이름을 일일이 꺼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실력도, 인성도 슈퍼스타로 성장할 자질이 충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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