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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슴의 눈망울 한 나쁜 여자' 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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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슴의 눈망울 한 나쁜 여자' 정유미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0.10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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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사슴의 눈망울을 한 나쁜 여자’가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표표히 거닐고 있다. 가을색이 짙어진 10월,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단발머리를 한 배우 정유미(31)와 마주했다. 동그란 눈망울의 사랑스러운 소녀가 툭 튀어나왔다가, 먼 곳을 응시하는 강단 있는 여인이 나오기도 했다.

바로 전날 KBS2 월화드라마 ‘연애의 발견’이 종영했다. 인터뷰 날(8일)은 첫 공포영화 ‘맨홀’이 개봉하는 날이다. 공교롭게 하루 간격으로 로맨스 드라마를 보내고 공포영화를 맞이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됐다.

 

◆ 일상의 공포 다룬 '맨홀'서 여동생 구하기 위해 사투 벌이는 연서 연기

정유미는 서울의 한동네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이 의문의 맨홀에서 주검으로 발견되는 ‘맨홀’에서 정체불명의 남자 수철(정경호)의 표적이 된 청각장애 여동생 수정(김새론)을 구하기 위해 맨홀로 뛰어드는 연서 역을 맡았다.

“그동안 공포와는 별 인연이 없었어요 ‘여고괴담’ 오디션을 봤던 정도? 평소 즐겨 보는 편도 아니고요. 물론 배우로서 욕심을 내 다양한 장르를 해보고 싶긴 했죠. 영화를 많이 찍고 싶었던 시기에 시나리오를 받았고, 매력을 느꼈어요. 캐릭터의 변화가 많진 않았어도 이런 장르에 나를 내던져보고 싶었거든요.”

가장 크게 마음을 흔들었던 건 ‘맨홀’의 신재영 감독이 대학(서울예대 영화과) 동기인데다 촬영감독은 후배, 조명감독 역시 동기였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함께 단편영화 작업을 했던 친구들이 10년 시간과 함께 성장해 현장에서 헤드 스태프로 존재하는 게 든든하고 뿌듯하면서 한편으론 신기했다. 과거와 달리 상업영화지만 당시의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졌다. 앞으로 계속 같은 길을 갈 동지애를 느끼며 촬영을 해냈다.

 

“영화를 보면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외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와요. 우리 사회에 좋은 사람들이 많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런 일상의 무관심이 얼마나 큰 공포를 야기할 수 있는지 영화는 말하죠. 복잡하거나 달달한 영화보다 단순한 긴장, 오싹함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제격인 작품이에요.(웃음)”

◆ 동갑내기 친구 정경호, 여동생 같은 김새론과 공연하며 자극

정경호와는 많은 장면을 함께하진 않지만 어둡고 좁은 맨홀을 뛰고 기어가며 대치한다. 필사의 몸싸움과 추격전을 펼친다. 지난 2010년 KBS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 위대한 계춘빈’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 사이다.

“경호와는 동갑내기 친구 중 한 명이에요. 그때 나이가 어린데도 여유가 있어서 배운 게 많았어요. 이번엔 호흡을 맞추기보다(웃음) 일방적으로 던지고, 쫓고 쫓기는 관계였죠. 경호가 새로운 캐릭터를 완성해가는 모습이 부럽고 뿌듯했어요. 굉장히 연기 잘하는 친구인데 기회를 얻어서 좋았고요. 여배우가 할 만한 역할이 많지 않다고 마냥 통탄만 할 순 없는 상황이잖아요. ‘나도 경호처럼 해야지’ 다짐했죠.”

아역 스타 김새론(14)과는 첫 공연이다. ‘맨홀’은 일상의 공포와 함께 자매애가 강조된 영화이기도 하다. 두 여배우는 자매의 정서를 스크린에 섬세하게 풀어낸다. 최근 인터넷상에 김새론과 정유미의 닮은꼴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호흡이 잘 맞았어요. 노력하지 않고도 자매의 분위기에 젖어 들었죠. 특히 연서 캐릭터는 새론에 기대서 만들어지는 부분이 많은데 그런 면에서 새론의 호흡이 도움이 컸죠. 새론이는 평소엔 중2인 그냥 애예요. 동생 같고 아기자기하다가 슛 들어가면 자기 할 일을 똑소리 나게 해내요. 신기하게도. 그래서 자극을 얻기도 했고요.”

◆ 전형성에 갇히지 않은 여성 캐릭터 연기…여성들이 좋아하는 여배우

2003년 단편영화 ‘사랑하는 소녀’로 시작해 장편 데뷔작인 ‘사랑니’에서 김정은의 여고생 역할로 나왔다. ‘가족의 탄생’에서는 봉태규의 상대역으로 독특한 연기를 펼쳐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깡패같은 애인’ ‘차우’ ‘10억’ ‘도가니’ ‘깡철이’에 출연했고 홍상수 감독과는 ‘우리 선희’ ‘다른 나라에서’ ‘어떤 방문’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연거푸 촬영했다.

“제가 행운아라고 여기는 이유 중 하나가 홍 감독님의 영화와 상업영화에 모두 출연할 수 있다는 거예요. 10년 동안 여러 작품을 해왔는데 익숙해지거나 긴장의 끈을 놓치는 게 제일 무서워요. 홍 감독님 작품에는 고유의 영화적 미학, 정서가 있는데 그걸 경험한 건 굉장한 축복이죠. 촬영 당일에야 대사가 나오는 시스템을 경험했기에 드라마에도 적응할 수 있었고요. 이젠 아침에 대본이 나와도 조바심이 나질 않아요. 후후.”

 

영화 필모그래피보다 수는 적지만 최근 몇 년 새 정유미의 드라마 활약상은 놀라울 정도다. ‘로맨스가 필요해2’의 주열매, ‘직장의 신’의 정주리, ‘연애의 발견’의 한여름은 정형화된 로코 여주인공의 틀을 깨트리고 고유의 개성을 발휘했다. 구질구질한 상황에서조차 한없이 사랑스럽다. 여리여리해 보이지만 따박따박 할 말 다하며 녹록치 않은 내면을 지닌 여자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정유미는 흔치 않게 여성들이 좋아하는 여배우다.

“그때 컨디션과 하고 싶은 의지에 따라 작품을 선택해요. 결정할 때 복잡하게 따지지 않고요. 작품이란 게 공동 작업이라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화면에 어떻게 보여야지, 생각하기보다 상황에 젖어들어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데 주력해요. 아무리 대본을 잘 읽고 간다하더라도 현장 세팅, 카메라 앵글, 상대 배우와의 호흡에 따라 변수가 생기는 경우가 많거든요. 내 연기가 정답이라고 여기진 않지만 만들어가는 것과 탁 풀어버리는 것, 그 사이에서 고민하며 연기해왔던 것 같아요.”

◆ "'연애의 발견' 자연스레 날 반겨준 작품…에릭은 가진 것 많은 배우" 

‘연애의 발견’에서 두 남자와 사랑하고, 헤어지고 결국 첫 사랑 태하(에릭)를 선택하는 한여름 연기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별하게 아름다운 외모가 아님에도 회를 거듭할수록 브라운관 속 그는 예쁘고 빛이 났다.

“정현정 작가의 대사와 가치관이 100% 마음에 드는 건 아니나 작가의 글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어떨 땐 내가 알지 못하고 고민했던 지점을 대사가 해결해주기도 했고요. 그런 걸 기대하며 연기할 수 있었던 게 좋았어요. 이해 못하다가 느껴지는 순간들, 그런 경험이 묘했죠.”

 

정유미는 바로 어제까지 여름의 캐릭터로 말하고 행동했기에 드라마 속 상황이 아직 끝난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여름의 선택에 대해 말하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방전이 돼 체력적으로도 한계상황에 다다랐다는 설명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역 에릭에 대해 물었다. ‘연애의 발견’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정유미와 에릭이니까.

“드라마 ‘케세라 세라’ 때에도 호흡이 좋았는데 이번에 함께 잘 마무리해서 기분 좋아요. 에릭씨는 한결 같고, 많은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대다수 배우들이 의지와 능력은 있는데 그런 기회를 얻기가 힘들 뿐이죠. 저도 마찬가지고요.”

배우 생활 10년을 넘겼다. 20대 파릇파릇했던 여배우는 30대가 됐다. 요즘 그의 심경은 어떨까.

“드라마를 통해 조금씩 대중성을 확장하고 있어서 앞으로 내가 하는 영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동안 팡팡 변해온 게 아니고, 미친 듯이 올라간 것도 아니었어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노출된 걸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취재후기] 작품을 끝내면 늘 여행을 떠난다. 이번엔 충분한 휴식을 취할 계획이다. 마음으로는 ‘난 스물다섯이야’라고 외치나 물리적 나이를 하루하루 느끼므로 30대의 연륜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모든 시나리오와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연애의 발견’ ‘맨홀’처럼 자연스레 자신을 반겨주고, 존중해주고, 만들어줬으면 한다. 이런 말을 순수한 사슴의 눈망울을 한 채 돌직구 날리듯 한다. 머릿속에 비주류, B급, 4차원, 특별한 여배우 등등의 단어들이 널뛰기를 한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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