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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소리에서 희망의 빛을 보는 골볼대표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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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소리에서 희망의 빛을 보는 골볼대표 김희진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10.15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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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아시안게임 D-3] 김희진, "뮤지컬배우·선수 모두 포기 안해요"

[이천=스포츠Q 박상현 기자] 장애인 스포츠에서 적지 않은 선수들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업팀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선수를 계속 하려면 직장생활을 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을 별도로 하면서 가정을 꾸려가야만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 선수들은 '투잡족'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여자 골볼 대표팀의 김희진(20·서울시장애인골볼협회)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예술인이다.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뮤지컬 배우로 가수 데뷔 계획도 갖고 있다.

김희진이 골볼 선수와 뮤지컬 배우로 살아가고 가수로 데뷔할 꿈까지 갖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이천=스포츠Q 노민규 기자] 김희진은 하는 일이 많다. 맹학교 진학 후 시작한 골볼로 대표선수가 됐고 음악적 재능을 발휘해 뮤지컬 배우까지 됐다. 곧 앨범을 내고 가수로도 데뷔할 예정이다.

여섯살 때 책을 읽는 모습에서 사시가 심하다고 느낀 김희진의 어머니가 병원에 데려간 결과 녹내장이 진행 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이었다. 녹내장은 시력이 점점 떨어진다. 금지옥엽 딸이 시각장애인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김희진에게 하늘은 무심하거나 가혹하지 않았다. 시력이 나빠진 대신 청력이 발달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자료에 따르면 연주만 들으면 음을 아는 '절대 음감'의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하지만 김희진은 그 내용에 대해 살짝 얼굴을 붉히며 깔깔 웃었다.

"제가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절대 음감'은 약간 과장인 것 같고요. 시력이 나빠지면서 청력이 발달한 것은 맞아요. 조그만 소리도 더 자세히 듣게 되고 음악적인 재능이 발달하게 된 것은 맞는 것 같아요."

◆ 시속 100km로 굴러오는 공, 몸을 던져 막는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와 육상 등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부모님의 권유로 맹학교에 진학한 후 골볼을 시작했다. 골볼을 하게 되면 암흑이 찾아온다. 그의 시력은 빛의 유무나 큼지막한 장애물 정도는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골볼을 하게 되면 완전히 앞을 볼 수 없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암흑을 경험하게 된다.

모두가 동등하게 앞을 볼 수 없도록 눈 앞에 아이패치를 붙이고 아이패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고글까지 쓰기 때문이다.

▲ [이천=스포츠Q 노민규 기자] 김희진은 시력을 잃었지만 '절대 음감'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청각이 발달했다. 그의 뛰어난 청각은 골볼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그 암흑 속에서 그의 청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공이 굴러올 때마다 들리는 방울 소리에 자신의 청력을 모두 집중시켰다. 그리고 운동을 좋아하는 재능까지 살려 힘차게 몸을 던져 막아낸다. 그러나 골볼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많이 다치기도 했다.

"골볼을 하는 선수치고 몸, 특히 얼굴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 없어요. 골볼이 공이 굴러오는 것을 막아내는 단순한 경기처럼 느껴지지만 자신의 온몸을 다해 던지는 공이 시속 100km의 속도로 굴러오기 때문에 이를 막아내려면 다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냥 공이 굴러오는 것을 몸으로 막아내는 쉬운 스포츠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1.25kg의 공이 시속 100km로 굴러온다고 생각해보자. 10kg이 넘는 볼링공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무로 된 단단한 공은 분명 몸에 상처를 주기에 충분하다.

기자도 직접 체험을 하고 싶어 대표팀에 정중히 요청해 직접 골볼을 경험해봤다. 대표팀 코치가 "처음이니까 살살 던집니다"라고 말했지만 기자는 순간 눈이 번쩍거림을 느꼈다. 방울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던진 것까지는 좋았지만 단단한 공이 그대로 눈 주위에 맞았다. 고글을 준비하지 못해 눈만 감고 골볼을 하는 바람에 공에 눈을 맞은 것이다. 이런 공이 눈 뿐 아니라 턱에 맞을 수도 있고 배를 강타할 수 있다.

김희진은 골볼에서 센터 역할을 맡고 있다. 한 팀이 6명으로 구성되고 경기에는 레프트와 센터, 라이트 등 3명이 출전하게 된다. 배구처럼 레프트와 라이트는 수비는 물론 공을 굴리는 공격 역할까지 맡고 센터는 주로 수비에 치중하면서 레프트와 라이트의 수비를 지시하고 조율하는 책임을 진다.

그런데 김희진은 '공격형 센터'를 자처한다. 수비에 치중하긴 하지만 페인트의 일환으로 자신이 직접 공을 굴리기도 한다. 수비를 한 뒤 공을 굴리는데 있어서도 다양한 작전이 필요한 것이 골볼이다.

▲ [이천=스포츠Q 노민규 기자] 김희진은 수비에 더욱 치중하는 센터를 맡고 있다. 3명이 경기에 참여하는 골볼에서 김희진은 레프트와 라이트의 수비를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간혹 공격까지 가담하는 '공격형 센터'를 자처한다.

◆ 두번째 맞이하는 아시안게임, 이번엔 메달 따고 싶어요

김희진은 이미 4년 전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을 경험했다. 그의 나이 겨우 16세였다. 당시 한국선수단의 최연소 선수였다.

그러나 아직 초보단계인 한국 여자골볼대표팀은 첫 경기에서 라오스에만 7-3으로 이겼을 뿐 실력차를 절감하며 4연패를 당했다. 중국과 이란에 1-11로 완패한데 이어 일본에도 0-3으로 져 4위에 그쳤다. 남자대표팀이 결승까지 올라 은메달을 따낸 것과 대조된다.

이 때문에 두번째 아시안게임을 경험하는 김희진의 목표는 당연히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내는 것이다. 일본, 중국, 이란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경험도 제법 쌓였다.

이를 위해 김희진은 뮤지컬 배우의 생활과 가수가 되겠다는 꿈도 잠시 미뤘다. 골볼 선수와 뮤지컬 배우 모두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인데 더 열심히 해야 하잖아요. 메달도 당연히 따고 싶죠.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모두 포기할 수 없지만 이번만큼은 골볼 선수로 올인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골볼 선수로서 최선을 다하고 장애인아시안게임이 끝나면 다시 뮤지컬 배우로 돌아가야죠. 또 가수로 데뷔한다는 목표도 이뤄내고요. 아직 노래 연습을 하지 못했지만 음반 앨범을 빨리 내서 제 꿈을 이뤄내고 싶어요."

골볼 선수 하나만으로도 힘들텐데 뮤지컬 배우와 가수까지 너무 욕심이 많은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간단 명료했다.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눈도 안보이는데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뭘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극복을 하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죠. 장애가 있다면 움츠러들지 말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김희진은 언제나 밝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긍정의 에너지가 끊이지 않아 유쾌했다. 그 유쾌함은 앞은 잘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앞(목표)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는 촉매제인 것 같다.

▲ [이천=스포츠Q 노민규 기자] 김희진(왼쪽에서 세번째)등 한국여자골볼대표팀 선수들이 이천종합훈련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 일본, 이란 등에 밀려 4위에 그쳤지만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는 메달 획득을 목표로 한다.

■ 골볼이란

골볼은 시각장애인들의 스포츠로 상대팀 골대에 소리가 나는 공을 굴려 넣는 경기다. 레프트와 센터, 라이트 등 3명의 선수가 경기에 출전하고 각 팀당 최대 3명까지 선수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보통 한 팀은 6명의 선수로 구성된다. 장애등급은 시각장애를 통합등급으로 분류, 등급에 차이가 없도록 모든 선수들이 눈가리개를 착용한채 경기에 나서게 된다.

공격팀은 될 수 있는 한 공이 소리가 나지 않도록 노력해 굴린다. 또 필요할 경우 동료 선수에게 패스하거나 공을 흔들어 소리를 낼 수 있으며 상대팀이 볼의 위치를 혼동하도록 공을 특이하게 굴릴 수도 있다. 수비팀은 팀 에어리어 내에 있는 모든 선수가 자신의 어느 신체부위로 막아낼 수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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