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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K-1은 어떻게 쇠락과 부활의 과정을 거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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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K-1은 어떻게 쇠락과 부활의 과정을 거쳤을까
  • 박성환 기자
  • 승인 2014.10.16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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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박성환 기자] K-1은 화려했던 옛 영광을 찾을 수 있을까.

최근 태국 몬티엔 호텔에서 개최된 ‘2014 K-1 맥스 파이널’ 대회 결승전. 태국의 전설적인 강자 쁘아까오 포프라묵이 3라운드 종료 후 연장전 돌입 판정을 거부하고 경기장을 떠나버리는 참사가 일어났다.

대회장을 가득 메운 팬들과 관계자가 경악함은 물론이고, 쁘아카오 같은 초특급 스타가 그런 일탈행동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후끈한 논쟁과 화제를 몰고 왔다.

쁘아카오는 자신의 개인 SNS를 통해 ‘주최사 측이 해외 도박 사이트와 연계되어 있다. 내가 이기는 것을 막고 있다’며 팬들의 이해를 부탁했고, K-1 측은 즉각적인 징계보다는 쁘아카오 측에서 더욱 성실하게 소명해 주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세계 입식타격 스포츠의 최대 브랜드였던 K-1은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부활과 발전을 도모하는 것인가.

국내 토종 입식타격대회 브랜드인 ‘더 칸’을 주최하고 있는 칸 스포테인먼트의 대표 양명규 이사(47)를 만나 K-1의 쇠락과 부활 과정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들어봤다.

▲ 양명규 칸스포테인먼트 대표는 과거 K-1의 국내 대회 주최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 처음 사회생활은 축구선수 안정환의 매니저로 시작했다고 들었다.

▲ 1998년이었을 거다. 이제 막 스포트라이트를 받아가던 안정환의 매니저로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꿰었다. 안정환을 데리고 이탈리아 세리아A 팀인 페루지아 구단에도 진출하는 등 해외 매니지먼트 성과를 내었고,  덕분에 내 집도 한 채 장만할 수 있었다.

- 축구선수 매니지먼트를 하다가 격투기 산업으로 방향을 틀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 국내 스포츠의 인기는 대중들의 관심에 따라 유행 변화가 심한 편이다. 10년 전만 해도 누가 동계 종목인 피겨 스케이팅에 관심을 둘 거라고 믿었겠나.

80년대 초반 프로야구와 축구가 큰 인기를 끌며 대중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고 그 뒤로 농구대잔치 등 대학농구와 실업농구가 인기를 끌었다. 나는 구기 종목의 한계점이 다다르는 시점에 분명히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격투기의 차례가 올 것이라고 예감했다.

그러던 중에 90년대부터 일본을 본거지로 세계적 흥행을 기록하던 K-1이 국내에 상륙했다. 2004년 당시 MBC ESPN 방송사와 K-1 주최사인 일본 FEG는 국내 대회를 주최할 한국인 파트너를 물색 중이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격투기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지닌 인물과 기업이 없던 시절이었다.

FEG가 국내 이벤트 회사와 광고 제작사 등을 상대로 사업계획서를 받으며 심사 중이었는데, 나는 우연히 제출 마감 하루 전에서야 지인을 통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헐레벌떡 FEG 측을 찾아가서 대뜸 “내가 그 한국 파트너 역할을 해보겠다”며 나섰다.

- 일본 FEG 측에서 황당해 했을 것 같은데.

▲ 당연히 저 쪽에서는 황당해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축구선수 매니저 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런 반응이었으니까. 그들은 내부적으로 다른 회사를 파트너로 선정해 놓은 상태였는데 나의 저돌적인 마인드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결국 일이 잘 풀려서 2005년 3월 19일에 최홍만 선수가 데뷔한 무대인 ‘K-1 아시아 그랑프리’ 대회를 올림픽 제1체육관에서 열 수 있었다.

▲ 양명규 칸스포테인먼트 대표는 K-1이 이시이 관장의 탈세 혐의로 불행을 맞이했지만 한국인 기업가 김건일 회장 덕에 부활의 날개짓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그렇게 잘나가던 K-1도 점차 쇠락기를 겪었는데.

▲ 맞다. K-1의 마지막 국내 대회는 2010년 10월에 열었다. 주말 이틀 동안 연달아 개최했는데 토요일에는 알리스타 오브레임, 바다 하리 등 초특급 슈퍼스타들이 포진한 헤비급 라인업을 선보였고 일요일에는 맥스(70kg 경량급) 선수들이 라인업을 구성했다. 그런데 오히려 일요일 맥스 경기에 관중들이 많이 오더라. 경량급에 대한 매니아들의 새로운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는 K-1의 급속한 쇠락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FEG의 대표인 이시이 관장의 탈세 혐의가 컸다. 이시이는 극진가라데 창시자인 고 최영의 선생의 제자이고 K-1 브랜드를 창설한 인물이다.

그런데 막대한 금액을 탈세한 혐의로 감옥에 가는 바람에 K-1까지 꼬이고 말았다. 일본에서 세금 탈루가 상징하는 사회적 제도적 비난은 엄청나다. 탈세를 하면 제2 금융권 대출도 막힐 정도로 사회 생활이 막힌다고 보면 된다.

남아 있는 K-1 임직원들은 자신들의 상사가 감옥에 가고 없으니 대출 이자도 못 갚고, 선수들의 파이트머니도 지급 못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고 말았다.

그래도 K-1이라는 브랜드가 지니는 상징성을 믿고 투자하려는 회사들이 몇 군데 있었는데, 감옥에 있는 이시이 관장이 “회사 재정에만 투자하지 말고 내가 안고 있는 빚까지 해결 좀 해달라”고 무리한 부탁을 하는 바람에 투자자들이 죄다 철수해 버렸다.

- 대체 얼마 정도의 빚이 있었길래 그러는 걸까.

▲ 2012년 2월 기준으로 30억엔, 원화로는 약 400억원의 빚이 있다고 알고 있다. 사실 나도 K-1 측으로부터 받아야 할 돈이 밀려 있다.

그런데 FEG와 K-1이 부도나기 직전에 한국인 사업가인 김건일 씨가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 그는 누구인가.

▲ 김건일 씨는 ‘서든 어택’이라는 컴퓨터 게임을 만든 회사의 대표다. 그런데 이 분이 머리를 잘 써서 K-1과 FEG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지 않고 K-1 브랜드 상표권만 구입했다. 400억원의 회사 빚도 승계받지 않고 오직 K-1 상표권만 구입하게 된 것이다.

▲ K-1 국내 흥행몰이의 1등 공신이었던 최홍만과 당대를 풍미했던 슈퍼스타들이 포진한 포스터. [사진=양명규 측 제공]

- 어떻게 그런 방법이 가능했을까.

▲ FEG가 한창 자금 부족에 시달릴 당시에 K-1 상표권을 담보로 일본의 한 부동산 회사에서 5억엔을 빌려가기도 했다. 급한 불부터 끄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자 김건일씨가 그 부동산 회사에 접촉해서 FEG가 빌려간 5억엔, 원화로 약 70억원을 대신 갚아주고 K-1 상표권만 재차 사들인 것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천재적인 발상이었다.

결국 현재 K-1 상표권의 실질적인 주인은 한국인 김건일 씨가 소유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 지역에서 K-1이라는 이름으로 대회를 주최하려는 이들에게 김건일 씨가 라이센스를 빌려주는 것으로 안다.

- 양명규 대표가 ‘더 칸’이라는 토종 입식격투 단체를 설립한 이유가 궁금하다.

▲ 내가 K-1 국내대회를 공동으로 주최할 당시, FEG도 중국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워낙에 사회주의 국가인데다 반일감정도 깊다 보니 섣불리 들어가지 못하고 있더라.

나도 ‘왜색이 짙은 K-1브랜드로는 들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럼 내가 한국 브랜드를 만들어서 진입해 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처음엔 FEG 허락 하에  K-1-칸 이라는 브랜드로 활동했다. 그 때는 김건일 회장이 상표권을 사들이기 전이어서 FEG로부터 양해를 받아 K-1 브랜드를 빌려 쓸 수 있었는데 김건일 회장의 K-1 상표권 매입 뒤에는 K-1 상표는 떼어내고 ‘더 칸’ 이름으로만 주최 중이다.

- 현재 세계 입식격투대회의 무게는 유럽과 미주를 기점으로 한 단체인 ‘글로리’로 좀 더 기운 것 같은데.

▲ 사실 그 전에는 ‘쇼타임’이라는 입식격투브랜드가 잠시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글로리에서 쇼타임을 인수한 뒤에 K-1도 사려고 했지만 불발되었다.

TSA가 입식격투기대회 브랜드인 글로리의 주최사인데 그 곳에는 과거 K-1 헤비급을 주름잡았던 바다 하리, 세미 슐츠, 구칸 사키, 레미 본야스키 등 스타들이 소속되어 있다.

지금도 이시이 관장을 비롯한 FEG 관계자들은 K-1의 부활을 위해 몸부림치는 걸로 알고 있지만  K-1 상표권을 김건일 회장이 소유해 버렸기에 앞으로도 K-1이라는 이름은 못 쓸 것이다.

amazing@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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