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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아한 거짓말' 김희애 "부끄럽지 않은 작품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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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아한 거짓말' 김희애 "부끄럽지 않은 작품 행복"
  • 이희승 기자
  • 승인 2014.03.05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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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워킹맘, 아내...그리고 CF퀸으로 살기까지 비결은 "항상 마지막인 것처럼"

[300자 Tip!] 데뷔 이후 오롯이 톱스타의 길을 걷기란 쉽지 않다. 비록 드라마이지만 ‘별그대’ 천송이조차 인기를 회복하는데 3년이 걸리지 않던가. 현실 속 김희애는 찬란한 20대, 아내와 엄마로서 안정적인 30대를 보내고, 치열하게 40대를 마무리하고 있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13일 개봉)에서 그는 여배우의 무게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갑작스럽게 죽은 막내딸의 숨겨진 비밀에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엄마 현숙의 모습은 쿨하고, 강단 있다. 김희애스럽다.

[스포츠Q 이희승기자]

◆ "김려령 작가 팬이라 시나리오 먼저 구해 탐독"

영화 ‘완득이’를 보고 반해 김려령 작가의 팬이 됐기에 '우아한 거짓말’의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다. 부모가 된 후 어느 순간부터 '센' 소재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 소설만큼은 빠져들었다. 학교 폭력으로 인한 아이의 자살, 고단한 싱글맘의 삶이 담긴 원작을 읽은 뒤 영화화 소식을 듣고는 시나리오를 구해 일사천리로 읽어 내려갔다.

 

 

“소재가 편하지 만은 않았어요. 그래도 시나리오가 너무 궁금한 거예요. 큰 사건들을 어떻게 표현해낼 지가 궁금했는데 현실감 있으면서도 따듯하고 행복하게 그려졌더라고요. 자식을 잃는다는 슬픔은 정말 상상도 안되는 감정이죠. 게다가 제가 연기한 현숙은 죽은 딸 말고도 지켜야 할 자식이 또 있으니까요. 어떤 슬픔을 당했을 때 24시간 내내 고통스럽다가도 어느 순간 참거나 잊어버리는 순간이 있듯, ‘우아한 거짓말’은 인생을 살며 성숙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작품이라 끌렸어요.”

김희애는 지난달 25일 언론시사회가 끝난 뒤 눈물을 보였다. 완성작을 처음 보는 자리이기도 했고, 시나리오에서 궁금해했던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였다. 영화를 너무 오랜만에 해서인지 객관적으로 보게된 게 눈물의 결정적 이유였다.

“솔직히 말하면 감정적으로 힘든 장면이 많아서 공연하는 어린 배우들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고)아성이를 비롯해서, (김)유정이, (김),향기의 연기를 보니 ‘너나 잘하지 누굴 걱정하니’라며 스스로를 혼내주고 싶을 정도였어요. 세계 어느 영화제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연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밥값을 못한 것 같아 반성을 많이 했어요.(웃음)”

◆ '꽃보다 누나' 통해 결벽증 반성... 인생의 터닝포인트

데뷔 후 지금까지 톱 여배우로 살아온 김희애에게 지난해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해였다. 호기심과 기쁨, 고생과 아픔을 한 편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겪었기 때문이다. tvN ‘꽃보다 누나’를 통해 한결 편해진 이미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제작진이 ‘나를 가지고 노나?’할 정도로 화가 나기도 했다. ‘먹방 여배우’를 만들어놔 충격이었다”며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방송 이후 자신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한결 편해진 걸 느끼고서는 자신의 결벽증을 깊이 반성했다. 그는 “지금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말할 정도로 소중한 경험이라 여긴다. 10대 후반에 데뷔한 뒤 자유롭게 떠난 첫 여행이었다. 전혀 계획되지 않았던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 종편 드라마서 연이어 불륜에 빠진 유부녀 연기 '파격'

지상파 방송사가 아닌 종편 드라마에서 연이어 파격적인 캐릭터를 소화하는 김희애에게 뭔가 특별한 일이 생겼을까?  2012년 JTBC '아내의 자격'에서 같은 동네 유부남 의사(이성재)와 사랑에 빠져드는 순진무구한 대치동 엄마를 연기했다면, 오는 17일부터 방영되는 멜로드라마 '밀회'에서는 20세 연하의 천재 피아니스트(유아인)과 격정적 사랑을 나누는 예술재단 기획실장 오혜원을 연기한다.

단아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김희애가 이런 캐릭터에 도전하는 데 있어 '내 남자의 여자'를 빼트릴 수 없다. 김수현 작가의 이 드라마는 김희애의 연기 인생에 있어 가장 화끈한 몸싸움, 뻔뻔한 연기를 감행하게 한데다 숱한 욕을 먹게 만든 드라마였다.

“그 작품 이후 대한민국의 모든 팜므 파탈은 다 제게 들어왔어요. 안해서 그렇지 최근까지 시청자들이 본 악녀 캐릭터들은 한번쯤 거쳐간 것들이에요. 후후. 똑같은 캐릭터를 할 순 없으니까 피하고, 고르면서 한 역할이 최근의 제 필모그래피가 된 거죠. 지상파 드라마 출연도 보람도 있지만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일하는 걸 우선시하게 돼요. 안판석 PD님과는 이미 여러 번 호흡을 맞췄기에 ‘같이 하자’는 말을 거스를 수 없었죠.”

◆ 배우와 스타... 딸과 며느리 사이

김희애는 20대 배우들도 1년에 두 번씩 바뀐다는 화장품 업계계에서 자그마치 10년이나 한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비결을 묻자 “점점 좋아지는 포토샵 기술과 카메라 덕분”이라고 밝게 웃는다. 오죽하면 ‘이번 촬영만 하고 짤리겠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많아지는 주름과 모공 때문에 고민이 많다.

“제가 벌써 48세예요. 뷰티에 예민한 타입이 아니고, 현실이 가혹하단 건 이미 예전에 꺠달았기에 ‘이번이 마지막일테니 잘 해드리고 오자’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해요. 그러면 제가 봐도 예쁘게 나와요. 그래서 계속 연장되는 것 같아요.(웃음) 사실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거라 기쁘죠.”

 

 

김희애는 CF모델로 데뷔해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일일 드라마에 투입될 정도로 연기력과 끼가 넘쳤다. 그런데 돈을 벌려고 배우가 됐다는 고백은 의외다.

“솔직히 생계형 아닌 사람이 있어요? 누군 예술만 하나? 하하. 부모님이 재벌이 아닌 이상 제가 잘하는 일로 돈을 버는 건 창피한 게 아니잖아요. 그게 예술이 되면 행복한 거고.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 김희애는 절대 완벽하지 않아요. 시댁에서는 설겆이 담당이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컴퓨터에 빠지면 눈부터 흘기는 엄마죠. 다행히 제가 일찍 사회생활을 했기에 그런 부분을 시소 타듯이 현실적으로 잘 조율한다는거예요. 나이가 주는 현명함이기도 하고요.”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김희애의 파격 변신으로 불릴 만하다. 우아함의 대명사인 그가 두부 판매원으로 생활을 꾸려 나가는 모습은 꽤 신선하다. 두 딸을 키우는 억척 엄마 연기를 한 그에게 실제 집에서는 어떤 딸이었는지 물었다.

“아버님은 몇 년전에 돌아가셨어요. 음...아이는 무조건 잘 해줄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부모가 고생하는 걸 봐야 일찍 철이 들거든요. 저 역시 엄마의 고생을 보고자란 터라 지금은 엄마에게 남편이자, 친구이자 소중한 딸이 아닐까 싶어요.”

◆ 현실과 스크린, 안방극장... 김희애의 남자들

'IT계의 혜성' 이찬진(50)씨와 결혼한 김희애는 아들만 둘을 뒀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은 배우인 엄마를 어렸을 때부터 자랑스러워했다. 요즘 학교에서 듣는 드라마 수업이 유독 재미있다고 하더니, 어느날은 자신에게 “선배님”이라고 불러 어이없어 했단다.

아이가 배우의 길을 가겠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자 “그렇잖아도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아이한테 ‘10년 후 보자. 아무나 되는 거 아니거든?’이라면서 쏴붙여줬어요.(웃음) 솔직히 그냥 취미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배우는 선택받은 직업이지 운이 좋아서 되는 직업은 아닌 것 같아요.”

SBS '힐링캠프‘가 방송된 후 각종 포털의 연관 검색어 1위는 남편이었다. 그런데 남편으로부터 연락은 없었다.

“이래서 우리 부부가 사는구나 싶었어요. 방송에 출연해서 자신의 얘기를 한다고 하면 분명 싫을 텐데 모른 척 해줘요. 함께 오래 사는 비결인가봐요. 어느 날 남편이 트위터를 하기에 한번 들어가 봤더니 ’당신이 보면 위축된다‘며 들어오지 말라고 하더라거요. 오죽하면 제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한 편도 안 봤겠어요. 저희는 서로의 영역을 말없이 지지해줄 뿐이에요. 그런 점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우아한 거짓말’에서 성동일과 유아인은 확실한 존재감을 뽐냈다. 성동일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홀아비로, 유아인은 범접할 수 없는 옆집 괴짜 총각으로 출연한다. 김희애는 “성동일씨는 정말 잘 생겼다. 게다가 유쾌하기까지 해서 다음엔 길게 호흡을 맞춰 보고 싶다”고 소망했다.
 
“제 연차가 되면 망가짐을 불사하고, 그 역할에 빠지는 배우의 연기력이 눈에 보이는데 유아인씨가 바로 그런 타입이에요. 감독님과 전작(완득이)을 함께한 인연으로 출연했다지만 작은 분량임에도 정말 집중해서 하더라고요. '밀회'에서는 같은 인물인가 싶을 정도예요. 원래 여자들은 피아노 치는 남자에 대한 로망이 있잖아요. 동안에다 잘생기고, 게다가 피아노 천재로 나오니 느낌이 180도 틀리죠. 아인씨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후배인데도 자극을 느껴서 제 역할에 더 빠져들게 돼요. 정말 똑똑한 배우예요.”
 
영화 '우아한 거짓말'의 한 장면
 

[취재 후기] 아침에야 드라마 촬영이 끝난 김희애는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5시간의 마라톤 인터뷰를 소화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인터뷰 후 바로 촬영장으로 복귀해야 한다면서도 등은 항상 꼿꼿하게 유지했다. 오랜 시간 다져온 엄격함이 절로 느껴졌다. ‘개그 콘서트’의 유행어 퍼레이드 ‘약발’이 떨어져 안타깝다는 그는 “전 재미있어서 지금도 계속 하는데 주변에서 지겨워하니...새로운 걸 개발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라고 활짝 웃었다. 순수한 소녀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원숙한 중년의 열정으로 작품을 껴안는 그야말로 '여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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