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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논점] 슈틸리케 감독 유임 결정, 무엇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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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논점] 슈틸리케 감독 유임 결정, 무엇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 정성규 기자
  • 승인 2017.04.0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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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정성규 기자]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도하의 기적'으로 한국축구는 가까스로 미국행 티켓을 건질 수 있었다. 이라크가 마지막 일본전에서 극장골을 넣어 비겨주지 않았다면 12년 만에 본선행이 좌절되는 상황이었기에 과연 김호 감독 체제로 본선을 꾸릴 것인가 하는 논쟁이 뜨거웠다. 1992년 한국축구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선택한 국가대표팀 1호 전임 감독 체제를 흔들지 말고 목표를 달성했으니 본선행을 맡기자는 유임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슈틸리케 감독. [사진=스포츠Q DB]

2014년 브라질 월드컵 2차 예선 도중에는 최종예선도 못 나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2차 관문 최종전만 남겨놓고 대한축구협회는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고 말을 갈아타는 결단을 내렸다. 국내파인 최강희 전북 감독에게 SOS를 쳐서 급한 불을 껐고 본선진출 목표를 달성했다.

신뢰와 불신. 한국축구가 위기상황에서 대표적으로 엇갈리게 내린 두 가지 선택이다. 전자가 최종예선을 통과한 상태에서 전임감독제의 틀을 흔들지 말자는 명분론에 따른 것이었다면, 후자는 최종예선도 못 오를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선제적인 대처라는 현실론에 의한 것이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에 위기감이 드리워진 2017년 봄. 한국축구는 불신의 여론에도 현실론에 떠밀려 신뢰를 택했다. 3일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겸 부회장은 기술위원회 뒤 기자회견을 통해 경질론이 휩싸였던 울리 슈릴리케 국가대표팀 감독의 유임 결정을 발표했다.

월드컵 최종예선 A조에서 2위를 지키고 있지만 3월 2연전에서 1승1패를 통해 보여준 팀 칼러가 여전히 무색무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팬들과 축구계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믿고 가자는 것이다.

변화는 없었다. 비상사태로 규정하면서도 다른 길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준비가 치열했다는 점도 들었다.

이용수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3일 슈틸리케 감독의 유임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비상사태로 인식하면서도 6~9월 남은 최종예선 3경기만을 맡을 거물급 지도자가 어디 있겠느냐는 자조 섞인 구인난이 슈틸리케 감독을 유임시키는 결정의 실질적인 이유가 됐다. 누가 와도 3경기를 책임질만큼 유능한 감독도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깔려 있다. 다른 5개국의 혼전도 변수가 될 수 있는 만큼 현재 조2위의 성적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 것은 과연 비상사태로 인식하는 지, 되묻게 한다.

물론 아직 본선행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탈락권에 처하지 않았는 데도 내년 월드컵까지 계약 기간이 남은 외국인 감독을 바꾸면 국제축구계에서 한국축구의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비상사태라고 해놓고 이를 바라보는 기술위원회의 시각은 안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용수 위원장이 "지금 상황을 비상사태로 받아들였다"고 하면서도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이 월드컵에 진출해온 저력을 보여왔다는 것을 믿으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대목부터가 그렇다. 긍정의 힘을 기대하자는 것이라면 대책이 아니다. 철저한 반성의 목소리도 부족해 보인다.

이 위원장은 "상대 팀들은 대부분 2~3주 준비하고 경기에 나서지만 우리는 2~3일밖에 훈련 시간이 없다. 변명일 수도 있지만 대표팀의 전술 준비는 일반인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치열하게 진행됐다"고 했다. 대표팀의 잇단 졸전이 외부적인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예전에도 A매치 데이 소집원칙을 지켜왔는데 상대적인  훈련시간 부족을 탓하는 것은 한국축구가 퇴행하고 있다고 자인하는 셈이다. 전술은 잘 준비됐는데 시간이 부족했다는 논리로는 부진을 명확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원칙을 깬 감독의 선수선발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진단이 없다. 적어도 기술위 차원에서 상징적으로 치열하게 개선을 유도해내겠다는 의지라도 비춰야 신뢰라도 줄텐데.   

 

지난달 28일 월드컵 최종예선 시리아와 홈경기에서 답답한 경기력으로 1-0으로 겨우 이긴 뒤 주장 기성용이 대표선수들의 준비 자세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자성론에 기대어 감독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냐는 일부 팬들의 싸늘한 시각이 존재한다.

전술 코치같은 스페셜리스트를 지원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새롭게 검토해보겠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6월 카타르 원정에 앞서 소집기간을 늘리는 것을 협의해보겠다는 선으로 '비상사태'에 대한 대책을 갈무리했다.

그동안 많은 외국인 지도자를 데려오고 바꾸는 과정에서 되풀이해온 축구협회의 '대안부재론'이 다시 살아났다. 적어도 팬들이 납득할 만한 자성의 진단을 내놓지 않으니 불신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을 듯하다. 슈틸리케 감독의 유임 결정을 놓고 팬들로서는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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