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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제-알파고 '세기의 대결', 이제 반상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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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제-알파고 '세기의 대결', 이제 반상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까
  • 정성규 기자
  • 승인 2017.05.2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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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정성규 기자] "바둑의 아름다움, 인간의 아름다움을 컴퓨터가 이해하고 두는 게 아니므로 바둑의 가치는 계속될 것이다."

14개월 전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와 세기의 반상 대결을 펼치면서 '인류대표' 이세돌 9단은 이같이 말했다. 초첨단의 연산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에 질 수도 있다는 뉘앙스가 묻어났지만 인간이 바둑을 통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온전히 지켜내고 싶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은 것이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에서 이세돌 9단은 1승4패로 끝내 패했다. "바둑적으로 여러 가지 경험은 있었으나 이렇게 심한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며 "역시 그걸 이겨내는 데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고 패장은 말했다.

이 9단은 그러면서도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간이 패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인간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 정도로 완벽하지는 않는다는 평이었다.

인류 대 알파고의 세기대결 시즌2.

23일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알파고와 세계랭킹 1위 커제 9단 간의 '바국의 미래 서밋' 3번기가 시작됐다.

이틀에 한 번 벌어지는 이번 대국의 예상 결과는 이미 베팅업체들의 배당률에서 현격히 알파고에 기울어져 있다. 리카이푸 전 구글 부회장은 "커제의 승률은 0%다"고 단언할 정도. 중국의 명기사 구리 9단조차도 커제의 승률을 10% 정도로 내다봤다. 그가 커제의 절대 비세를 점치는 이유는 알파고의 진화 때문이다.

그렇다. 1년 전 그 알파고가 아니다. 이미 지난 겨울 업그레이드 버전의 알파고는 '익명'으로 한중일 정상급 프로그기사들을 상대로 60전 전승을 거뒀다. 연산속도는 더욱 높이고 특유의 자율학습 능력을 끌어올린 하드웨어를 장착했다.

외신들은 소프트웨어에서도 알파고가 광속 진화를 이뤘다고 전했다. 이세돌과 대국 전에는 인간들이 돌을 놓았던 기보들을 몽땅 자가학습해 실력을 키워가는 메커니즘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기보를 보지 않고 스스로 기력을 다지는 한층 진화된 학습능력을 갖춘 것이다.

이세돌이 알파고와 격돌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세돌이 나를 이길 확률은 5% 정도다. 이세돌은 인간 대표가 아니다. 나는 알파고에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던 커제. 알파고가 압도적인 수싸움으로 이세돌을 시종 몰아붙이는 공세를 보고난 뒤에도 커제는 "알파고의 약점을 찾아냈다. 더 좋은 전적을 거둘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막상 지난 1월 알파고와 비공식으로 가진 온라인 대국에서 3전 전패를 당하자 커제는 생애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알파고의 실체에 혼쭐이 난 커제였으니 겸허하게 이번 대국을 맞을 법하다. 알파고의 진화 속에 이제 누구도 인류의 승리를 점치는 인간의 예측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승패가 아니라 한 수를 발견하는 게 인간이 수천년 동안 수담을 나눠온 가치를 지켜내는 길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시즌1에서는 '신의 한 수'로 평가되는 기발한 착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중국 바둑계조차도 알파고의 수는 "신선의 수"로 평가하는 터에 커제는 혼신의 힘을 다해 20주째 세계 1위를 지켜온 인류의 최고수가 둘 수 있는 '인간다운 한 수'에 집중하는 게 더 의미가 있을 듯하다.

공학적인 연산 능력, 머신러닝 외에 이미 뉴럴 트워크라는 기술로 반상의 흑백 이미지를 인간처럼 인식하는 직관능력까지 갖춘 알파고다. 인간의 닮은 직관력으로 포석, 전투, 끝내기까지 완벽한 반상 지배력을 갖춘 것이다.

그렇다면 커제의 어떤 착점에 주목해야 할까.

쉽게 비유해본다면 알파고는 풍수지리를 배우고 스스로 학습한 인공지능 '지관(地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곳이 명당자리인지를 지맥은 물론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그 후손들의 번성 사례를 비교해 축적한 빅데이터에 직관을 더해 판단한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기(氣)가 있다. 직접 땅을 밟아보고 산세, 지세에 물 흐름까지 살피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터전을 찾아내는 그런 통찰력의 기운이 그것이다. 직관적인 감(感)까지 인공지능에 내줬을지언정 그 기운조차 허락할 수는 없다.

그 힘을 살리면 반상에서 국면을 전환할 때의 착점이나 위기를 타개하는 승부수에 창의성을 불어넣을 수 있다. 승부에서는 지더라고 그 한 수의 가치는 위대한 기보에 남을 수 있다. 그래서 알파고-커제 대국 중계에서 승패보다 커제의 한 수 한 수에 착점의 가치를 발견하는 게 더 의미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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